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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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해설 /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 
  

      
  <해설>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    
                                  - 시집 "그리움 불꽃이 되어"를 읽고 나서 -
  

                              
                            
                                                           우남일(禹南一) (評論, 崇義女高 敎師)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격정(激情)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 / 결별을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 할 때 //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 머지 않아 열매 맺는 / 가을을 향하여' (이형기 '낙화'에서)


  선생님의 다섯 번째 사화집(詞華集)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무도회의 수첩'이 떠올랐습니다. 처녀 시절 함께 춤추던 파트너의 주소가 적힌 빛 바랜 수첩을 꺼내 추억을 찾아가듯이, 아니면 컴퓨터의 하드에 내장되어 있는 파일에 조각 모으기를 시도하며 정리해 나가듯이 말입니다.
  제4시집 "저만치 그리움이 보이네" 이후 선생님의 시적 관심과 주제는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하겠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과 여로, 고단한 삶에 휴지부를 찍어주는 고향과 바다, 그리고 추호도 흔들림이 없는 심연과 같은 신앙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층 심화된 깊이와 시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넓이는, 이를테면 노년기에 접어든 알파치노나 로버트 레드포드의 중후한 연기를 보듯이 말입니다.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처럼.
  36년 간 외딴 길을 걸어왔던 노정이 이제 끝나는 2002년 8월 이 시첩(詩帖)을 내 놓았습니다.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당신은 정년 퇴직합니다.
  이 사화집(詞華集)은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오순도순 앉아 차나 한 잔 들며 잔잔히 들려주는 삶의 사색, 추억의 잔물결 같은 것입니다. 아마도 이 시첩들을 펼치는 사람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산과 바다와 고향 산하를 그려내는 낯익은 필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남산 교정은 '나의 청춘이 꽃을 피워낸 곳', 그 곳에서 '웅지(雄志)의 나래를 펴던 수많은 날들'을 보내기 서른 다섯 해 동안 이 예장동 층계를 한결같이 오르내리신 것입니다.
그 동안 남산에는 벚꽃과 개나리꽃이 얼마나 피고 졌으며, 곱게 물든 단풍나무는 얼마나 나이테를 더했을까요. 다람쥐 동산에 돌멩이 한 개, 씀바귀 한 포기라도 선생님의 눈길이 스쳐가지 않은 곳이 없고, 교실 한 모서리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쓰레기통 하나도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첩엔 당신이 머`무르고 싶었던 장면들이 인화지처럼 차츰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대 위하여 / 목놓아 울던 청춘이 꽃이 되어 / 아자랑이 언덕에
   이처럼 피었나니 / 그 날 한 소절로 꺾이던 내 젊은 절규는 /
   불붙는 열정으로 뽑아낸 진액처럼 / 해마다 이 남산 언덕에 /
   노랗게 노랗게 겹겹이 피기로 / 그대 위해선 /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
   아아, 나의 청춘이 피워낸 꽃!'
                              
                                                           ('개나리' 전문)

   '그대와 걷던 길 / 일시에 팝콘처럼 터지던 울음이 / 환한 꽃으로 피었지요 //
   그대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 수많은 말들이 눈물로 그렁그렁 / 가지마다
   꽃망울로 맺혔지요/

                                                            ('남산의 벚꽃을 아시나요'에서)


   '어둠이 슬금슬금 떠나고 / 별들도 빛을 거두는 시간 / 막 잠에서 깨어난
   목멱(木覓)이 /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뜰 때 // 가쁜 숨 몰아쉬며 / 우린 함께
   산길을 올랐지 / 산정에 올라 높은 음정으로 / 웅지의 나래 펴던 수많은 날들'

                                                           (사랑하는 나의 사람'에서)



  페이터의 산문처럼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습니다. 때로는 현존(現存)하는 것, 또는 인제 막 나타나려 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속히 지나가는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들의 실체는 끊임없는 물의 흐름, 영속(永續)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노장(老莊)으로 말하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이요, 이법(理法)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며, 신앙인으로서는 신의 섭리(攝理)에 복종하는 삶일 것입니다.


   '사라지는 것은 / 언제나 아름다운 것 / 더러 그만 그만한 기대와 아쉬움 섞여 /
   다 떠나고 난 빈 하늘일 때 / 외로움 절로 깊어가도'

                                                             ('낙조대에서')

   '사라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 / 한 평생 당신을 향한 젖은 눈으로 /
   그리움 찾아 유유히 사라지는 / 배 한 척, 그 돛대 위에 빛날 /
   내일의 깃발이 있기 때문이다'

                                                            ('떠남의 미학(美學)'에서)

    '아침저녁으로 / 짐을 정리하면서 / 버리는 연습을 한다 / 낡은 옷가지와 신발,
   사진과 때묻은 수첩까지 / 한 가지씩 버리면서 버리면서 / 가벼워지는 연습을 한다'

                                                            ('가벼워지는 연습'에서)



  왜 글을 쓰는가? 하는 물음에 김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생님은 고독한 행위, 객관적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섬세한 취향, 그리고 삶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신의 심판의 명료성, 낭비와 사치를 스스로 금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깊게 침윤(浸潤)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딱 잡아 말하기는 힘들지만 뭐 고독의 충일감(充溢感), 내성(內省)과 같은 어휘가 선생님의 시세계에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깐깐하고 완벽성을 추구하는 성격처럼 시의 육질은 단단합니다. 다음 시구들이 그렇습니다.


    '속절없이 바람 불고 / 온 몸 휩싸고 도는 성난 물결에 / 잠길 듯 잠길 듯 하다가도 /
    다시 떠오르는 몸짓'

                                                           ('물수제비'에서)

    '질경이 토끼풀 나싱개 억새 잎새에 매달린 / 화사하고 영롱한 방울마다 /
    빛 고운 하늘이 들어 있다'

                                                           ('아침 산책길'에서)

    '두 산이 마침내 / 애틋하게 물든 가슴에 / 꽃사태로 무너지고 / 그리움으로
    피어난 꽃술 흔들며 / 가슴이 화들짝 얼얼하여'

                                                            ('이런 사랑 하나 있다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 잔잔한 숨 고르다가 / 순백(純白)의 가슴 언저리에 /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가'

                                                             ('안개꽃'에서)


  자칫하면 메시지가 되기 십상인 신앙시편들도 소담스럽게 정교한 시적 감성으로 아래와 같이 다듬어 내 놓습니다.

    '봄 아지랑이 흐르는 / 산허리께 / 사월 햇살 같은 따스함으로 /
    화안한 미소 안고 오십니다 // 내 안에 빛으로 오시어 / 어둠을 몰아내고 /
    사랑을 물들이는 진달래 꽃물로 / 주님은 그렇게 오십니다'

                                                          ('부활절 아침에'에서)

    '지는 해의 아름다움처럼 / 당신 손안에 / 아주 깊이 / 잠들고 싶습니다'

                                                           ('살아 있는 날은'에서)


  이제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때 '하늘 변두리 한가롭게 맴도는 / 바람 한 소절(小節)에 감격하다가 / 때가 되면 지구 밖으로 유유히 / 유영(遊泳)을 떠나는 저 자유' (꽃을 보며'에서)를 누리게 되는 역설을 깨닫게 될 것이지요. 그리고 지난날의 삶은 '가끔 눈물겨웠어도 / 그것은 아름다웠노라 여기며 / 저 낙조의 황홀함까지 / 그것은 사랑이었노라 속삭이며 // 빈손일지언정 평화롭게 잠기는 노을 벗삼아 / 이제는 떠나야' ('떠나야 할 시간')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필자는 압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젊은이 못지 않은 강고(强固)한 체질과 왕성한 활동력, 끊임없는 촉수(觸手)의 감수성으로 조로(早老)에 빠진 장년의 우리들을 성찰케 하고 있음을, 그런 면에서 단순히 나이로만 커트라인을 삼는 이 천박한 사회적 풍토는 서글픈 것입니다. 도전을 기피하는 정체(停滯)의 속성을 지닌 애늙은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한국 산천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백발 성성한 정일성씨나, 올리브 숲 사이로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포착해내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볼 때, 이렇게 칠순 가까이 저마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활의 자리가 정말 부러운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한 숟가락 더 들고 싶을 때 식탁을 물리치는 사람은 성숙한 인격을 지녀야만 가능한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한 역할을 마감하면서, 빈손 들고 미련을 접고 떠나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더군다나 곱상하게 늙을 줄 안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노년기의 집착과 야욕과 시류적(時流的)인 탐닉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자가 어떻고, 장자가 어떻고 / 침 마르게 긴긴 사설을 읊어봐도 /
   석구네 횟집 한 접시 횟감 정도도 안 되는 / 덜 익은 인생뿐이라고 /
   파도가 우릴 쳐다보고 웃는다 / 거추장스런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살자고 /
   파도가 속삭이며 웃는다'
                                                          ('다시 제부도에 와서'에서)


  시를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를 대하듯 여행 중에 얻은 기억의 편린(片鱗)들과 단상(斷想)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학교장으로서의 직책이 삶에 있어 긴장의 연속이라면 여행은 긴장을 풀어주는 이완의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컨대 낯선 곳에서 익명(匿名)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단잠 같은 것이지요. 섬진강, 산동골, 제주, 해인사, 월정사, 수락산, 점봉산, 설악산, 희방사, 영흥도, 청량산, 영흥도, 만리포 등등 수많은 시편들에 부제(副題)로 달려 있는 지명들이 그렇습니다. 특히 곤고(困苦)한 육신과 영혼이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서울 가까이 강화도를 선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석모도, 적석사, 화도마을 등이 그것이지요. 여행은 인생의 여로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이는 '가을, 저녁, 황혼, 바다, 낙조'와 같은 소멸과 별리(別離)의 이미지들로 연결됩니다.


   '텅 빈 모래사장 위로 / 길게 버려진 추억이 / 희미한 흔적으로 남아 /
   하얀 슬픔으로 빛나고 // 붉은 낙조가 / 그리움에 잠긴 바다를 하염없이 /
   빗질하고 있는데 // 바닷새는 왜 그리 슬피 울어쌓든지.

                                                       ('바다의 추억'에서)

   '낡은 조명 하나 덜 꺼진 채 / 텅 빈 무대를 지키고 있다 /
   잠시 후 하늘이 밝아지면서 / 수줍은 밤고양이처럼 몰래 보름달이 떴다.
   - (중략) -  순간 파도가 덮치듯 신열(身熱)이 올라 /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데'

                                                           ('그래, 이게 겨울바다야'에서)

   '맨발의 바닷새는 빠른 걸음으로 / 선명한 흔적을 갯벌 위에 새겨놓고 /
   마지막 정열의 불꽃 살라 태우는 / 저녁 노을 속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
   지는 해 눈부신 화포(畵布) 위에 / 지우고 다시 덧칠한들 무엇하리 /
   곱게 채색한 눈부신 노을도 / 이내 지고 나면 그 뿐'

                                                         ('노을'에서)


  계곡의 물이 흘러 지류를 이루고 지류가 다시 간류(幹流)로 합쳐져서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는 흔히 인간의 삶과 비유되기도 하지요. 천상병의 '귀천(歸天)' 이나 '새'를 대하듯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관조와 숙명적 고독을 읽게 됩니다. 섭리를 소중히 여긴다면 바다는 삶의 끝일 수만은 없습니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다시 빗방울로 환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삶은 가끔 눈물겨웠어도 / 그것은 아름다웠노라 여기며 / 저 낙조의 황홀함까지 /
   그것은 사랑이었노라 속삭이며/
                                                   ('떠나야 할 시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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