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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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 



 찬란하게 비상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




        
          1


주님, 어둠 속에 새벽이 동터옵니다.
주님 안에서의 시간은 늘 새롭습니다.
오늘도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데 감사하며 또 하루를 허락하신 깊은 뜻을 헤아려 봅니다.
어둠을 사르고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을 받아 동트는 아침의 새벽 이슬 같은 이 정결한 시간들을 주님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2


새벽 창가에서 기도를 드리고 나면 마음은 차츰 투명해 집니다.
깨끗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 가까이 다가가야 할 시간입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가득 채워지는 사랑인 것을 새삼 깨달으며, 유난히 공복인 지금 이 시간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습니다.



           3


타오르는 촛불은 당신을 향하여 태우는 나의 열정입니다.
오래오래 마음 속 어둠을 사르면서 당신을 향하여 불타고 싶은 마음, 촛농이 소리 없이 흐르듯 흔적 없이 나를 태우면서 빛으로 태어나는 일이 당신께 드리는 작은 사랑의 행위라면, 녹아 내리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4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끝없이 기다리는 생활에 익숙해진다는 것입니다.
외로운 바닷가 섬 아이들은 기다림의 속성을 타고 납니다.
나도 섬 아이들처럼 목을 늘이며 영원의 바다 앞에서 꿈꾸며 살아가겠습니다.
때로 폭풍일어 무서운 파도가 입을 벌리고 달려들지라도 저 멀리 수평선 위에 흰 돛의 목선을 기다리듯이 그 어느 날 바다를 잠재우며 늠름한 모습으로 걸어 오실 당신을 끝없이 기다리며 살아가겠습니다.






         5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신 앞에 서면 그냥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활활 타오릅니다.
당신을 우러러 보는 눈길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출렁거리는 바다처럼 열리고 있습니다.
늘 거기 팔 벌리고 서 계신 당신을 향하여 내가 썰물이 되어 달려갈 수 있다면 기적 같은 만남은 쉽게 이루어 질 수 있겠지요.
이런 감격이 내 생애 언제쯤 가능할 수 있을까요.




          6


오늘은 당신 앞에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입은 열리지 않고 달삭거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간신히 연 입으로는 마음 속에 사려 둔 간절한 사연들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눌한 말씨, 더듬거리는 눌변에 스스로 분통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당신은 나에게 너무나 큰 존재입니다.
그 크신 당신 앞에 서면 나는 나이가 들어도 말문이 막히는 철부지입니다.



          7


목 마른 갈증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웬지 끈적거리고 짜증나는 기분으로 온종일을 보냈습니다.
요즘 부쩍 땀을 흘리며 질척거리는 기분인 것은 분명 날씨 탓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세상 욕심과 이기심으로 시야가 가리워져 당신을 향한 문이 활짝 열리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뉘우치지 않았을 때의 곤혹스러움이라 할까요?
당신을 향한 창문을 곧 닦아야 하겠습니다.



          8


오늘은 하루 종일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일시에 휩쓸려 나갔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퍼붓는 빗줄기 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열리고, 갈증이 해소되고, 축 늘어지던 몸에 생기가 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나를 위한 하늘의 세례의식이었습니다.



         9


당신의 말씀은 청아한 바람입니다.
여름 대낯의 고갯길을 올라 정상에 설 때 갑자기 불어와 땀을 식혀 주는 바람처럼 당신의 말씀은 무덥고 긴 사막길을 가는 순례자에게는 청량제와 같습니다.
영혼이 지쳐서 넘어지고 쓰러질 때 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는 이여, 무거운 짐을 진 내 곁에 늘 청아한 바람으로 머물러 주십시오.




          10


계곡에 밤 이슬이 내립니다.
여름 밤 깊은 골짜기의 밤 이슬은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는 구실을 합니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도 오늘 따라 나의 정신을 새롭게 합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기도의 문이 열리려나 봅니다.
나 이대로 바위에 엎드려 그 날의 당신처럼 겟세마네의 피땀어린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11


산은 늘 우리를 침묵하게 합니다.
우람하게 솟아 안개속에 눈뜨는 산, 자연의 신비와 전설을 그 가슴에 품고 영원을 향하여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서 침묵의 지혜를 배웁니다.
돌아 보면 인간은 얼마나 많은 다변(多辯)과 허언(虛言)으로 남에게 괴로움을 주고, 또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경박하기 그지없었던 나의 지난 날 잘못들을 저 무언의 산 앞에서 통회합니다.




           12


나는 바다 앞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남의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가 되어 저토록 깊은 상처를 남길 줄을 몰랐습니다.
죄 없는 당신의 옆구리에 창을 찌르던 병정들과 무엇이 다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남긴 무수한 상처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치며 달려드는 것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바다 끝으로 쫓기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악몽을 깬 잠자리는 흥건하게 땀으로 젖었습니다.



             13


남을 용서한다는 말이 사치스러운 것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남의 작은 실수에는 그처럼 인색하면 서도 나의 허물과 잘못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했던 이기적인 마음, 모두가 나의 탓인데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했던 뻔뻔스러움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고서야 어찌 관용으로 남을 용서한다는 말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14


나의 짧은 생각으로 당신을 논(論)하고, 나의 얕은 지식으로 당신을 판단했던 어리석음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인간의 본질(本質)과 나의 존재(存在)에 대하여 무지하면서도 나의 편견과 독단으로 당신의 가슴에 마구 못질하는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또 나의 필요에 따라 당신을 이용하려 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 교만은 또 어찌해야 합니까?
오늘도 나는 무수히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당신을 봅니다.



             15


밤마다 당신을 향해 칼을 가는 사람들이 유다와 함께 횃불 들고 달려드는 세상입니다.
당신을 따르며 수제자라 불리면서 끝내 ‘나는 당신을 모르노라’고개를 젓던 베드로와 악수를 나누는 형국입니다.
골고다 언덕으로 쫓기는 당신을 눈물 없이는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내가 죽어 당신을 구해낼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16


요즘처럼 감각이 무디어진 때는 없었습니다.
웬만한 자연의 변화나 사회 문제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내 영적 심령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둔감(鈍感)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무디어 못 쓰게 된 쇠붙이는 벼려야만 다시 쓸 수 있듯이 달구어진 시련의 풀무 속이나 펄펄 끓는 용광로 속에 구워 쓸모 있는 도구로 재창조되기를 원합니다.







               17


오늘 다시 바다에 가 보았습니다.
바다는 모든 허물을 덮고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맞아주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얼마 동안 잊었다가 한참만에 찾아가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우리들 모두의 고향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몸으로 찾아갈 때 두 팔 벌려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바다는 내게 출렁이는 영원한 쉼터, 당신의 마음입니다.




              18


바다 앞에 서면 나는 으례 한 마리 갈매기가 됩니다.
저녁 노을 한 점 찍어다가 바위 틈에 둥지 틀고, 먼 바다 끝을 조망하며 영원을 기웃거리는 습성으로 살아갑니다.
온종일 그리운 소식에 가슴 조이며 날개를 퍼득이며 오르내리다가 노을이 내리면 바위 끝 꼭대기에 다시 날개를 접는 외로운 새. 고독을 훌훌 털고 영원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19


높고 투명한 가을 하늘, 그 아래 우람한 산이 오늘은 선명하게 보입니다.
시야에는 수직과 수평으로 텅 빈 공간이 들어 옵니다.
이것은 분명 계절이 주는 ‘가을의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력은 채우기 위함보다 비우기 위하여 촛점이 맞추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하신 말씀이 진리이듯이, 빈 그릇일 때의 넉넉함, 부요함을 위하여 이 가을에는 무한히 확대되는 공간 속에 빈 그릇으로 남아 있게 해 주십시오.




              20


풍요의 계절에 나는 나 자신을 잘 익은 열매로 당신께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쭉정이 아닌 알곡이 되어야 함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불충한 날들을 살아왔습니다.
내적 충실을 이루지 못한 삶, 성실한 농부이기를 저버린 나의 무능함으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성찰의 계절을 부족함 뉘우치는 겸허한 슬픔으로 보내게 해 주십시오.



              21


어느 늦가을, 서산의 한 농장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낸적이 있습니다.
통나무를 다듬어 지은 아담한 집의 창 밖으로 빨갛게 익은 감나무가 가지를 뻗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늦가을 단풍이 엊저녁 내린 비에 젖어 빤짝이고 있었습니다.
과수지기는 열심히 사과나무에서 잘 익은 사과를 따고 있었습니다.
좋은 열매로 열리지 못한 죄스러움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22


위대한 구도자는 밤에 깨어 있어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바깥의 현상(現象)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두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어느 소리도 알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였습니다.
이 깊은 밤 적막 속에 앉아 내면의 소리, 세미하게 속삭이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십시오.
그래서 겸손히 그 음성에 순응하는 지혜의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



               23


세상 죄를 대신하여 지신 당신의 십자가는 나에겐 엄청난 멍에입니다.
죽어서야 다시 사는 당신의 법(法)은 범상한 인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입니다.
어찌 이 벗어날 수 없는 멍에와 험난한 고통의 길을 나에게 주십니까?
당신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이 고난이듯이, 내가 따라야 할 제자의 길 또한 힘겹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승리의 길인 것을 믿고 묵묵히 따르렵니다.




               24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이 주신 땅에서 가시덤불 헤치며 피흘리는 당신을 닮아가는 일 입니다.
한 송이 붉은 장미로 피어나는 일입니다.
내 몸의 뽀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이 되지 않도록 간구하면서 고뇌 속에 자신을 더욱 아름답게 성숙시키는 것만이 당신을 위한 나의 바른 삶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25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그렇습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구습에 젖은 옛 것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욕심의 포로가 되어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미련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심령이 새롭게 되기를 소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거듭난다는 말은 실은 말뿐임을 용서하소서.




             26


들끓는 여름 바다는 나를 생동하게 합니다.
일체의 것을 잠재우고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와 넙죽 엎드리는 절대의 복종, 절대의 신앙을 배우게 합니다.
또 모래밭과 바위덩이를 뜨겁게 달구어 내는 이글거리는 태양은 당신을 향한 열정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여름 해변의 바닷가에 붉에 핀 해당화는 당신을 향한 내 믿음의 표상(表象)입니다.
한동안 세상을 잊고 여름 바다에서 살고 싶습니다.







              27


나는 때로 학(鶴)의 꿈을 꿈니다.
힘찬 날개짓으로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떠오르다 번번이 찢긴 나래로 제 자리에 내립니다.
속세에 살면서도 창공을 꿈꾸는 천성(天性), 날개가 하얀 학은 바로 나의 자화상입니다.
오늘도 목을 길게 늘이며 물빛 눈매를 닮은 눈은 하늘을 응시합니다.
푸른 하늘로 당신을 향해 찬란하게 비상(飛翔)할 수 있는 날을 주십시오.




                28


일방적으로 베풀기보다 서로 나누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의 공간 안에서 대화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는 것, 부족을 채워 주고 뜨거운 신뢰의 벽돌로 평화의 집을 짓는 것. 그러므로 내가 거하는 곳은 어디나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거룩한 공간입니다.
춥고 떨리는 결핍의 시대에 서로 사랑을 공유(共有)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29


이제는 입술과 말로 꾸미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핏줄로 토해내는 깊은 영혼의 소리를 담아 한 편의 시를 쓰고 싶습니다.
마구 깎아낸 원목(原木) 같은 생명감, 그래서 생목의 풋풋한 향기를 풍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의 글벗이여, 진솔한 한 편의 글을 위하여 내 머리맡의 등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0


살아 있는 날은 당신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 향내 나는 연필로 긴 사랑의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주고도 아깝지 않은 넉넉함으로 황홀한 사랑의 기쁨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아픔 속에 잉태하는 반짝이는 진주를 당신의 손가락에 끼워드리겠습니다.
몇 번을 지우고 다시 쓰는, 사랑의 편지 쓰기는 나의 자랑스런 일과입니다.



             31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쯤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당신과의 거리는 늘 멉니다.
숨가쁘게 달려가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마냥 그 자리인 것을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당신을 위하여 흘린 나의 땀과 눈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를 드리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나에게 허락된 눈물 한 방울까지 거두어 가셔도 좋습니다.




             32


이 세상의 저녁 시간, 우리에게 돌아가야 할 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보내신 이가 있다면 맞이해 줄 분이 있다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내 존재(存在)의 끝인 당신이여, 기적소리 울리며 귀향의 열차가 당도하는 날 나는 당신 나라에서 이 남루한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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