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허영자(許英子 : 1938~)

경남 함양 출생. 숙명 여대 국문과 졸업. '청미회(靑眉會)' 동인. 1962년 '현대 문학'에 '사모곡' 등으로 추천 와료되어 등단함. 억눌린 감성의 치열한 반란을 섬세한 언어로 형상하는 대표적인 여류 시인의 한 사람. 시집으로는 '가슴엔 듯 눈엔 듯'(1966), '친전(親展)'(1971),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1977) 등이 있음.


 
   함형수(咸亨洙 : 1916~1946)

함북 경성 출생. 중앙 불교 전문 학교에서 수학. 1936 년 '시인 부락'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함. 1939년 동아 일보 신춘 문예에 시 '마음' 이 당선됨.


 
   한하운(韓何雲 : 1920~1957)

함남 함주에서 출생. 중국 북경 대학 졸업. 1949년 '신천지'에 '전라도 길' 등 12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나병 환자 시인. 시집에 '한하운 시초'(1949)와 '보리피리'(1955)가 있음.


 
   한용운(韓龍雲 : 1879~1944)

충남 흥성 출생. 호는 만해(萬海). 어렸을 때 한학을 배우고 동학과 의병 활동에 가담한 후 불문에 들어가 중이 됨. 1919년 3·1 운동 때는 민족 대표 33인의 하나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했으며, 옥고를 치르면서 항일 독립 운동의투사로 활약함. 연 구분이 거의 없는 사설조의 서정성 짙은 노래로 철학적·종교적이면서도 연가풍의 특징을 지닌 시가 많음. 시집 '님의 침묵'(1926) 과 소설 '흑풍' 등이 있음.


 
   천상병(千祥炳 : 1930~1993)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상대 중퇴. 1952년 '문예'에 '강물'이 추천되어 등단. 데뷔 초기부터 가난과 주벽, 해학과 기행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고, 한때는 정신과 육체의 쇠약으로 행방을 감춘 적도 있었음. 역경에 주눅들지 않은 낙관적인 서정으로 인생의 이모저모를 노래함 시집으로 '새'(1971), '주막에서'(1979) 등이 있음.


 
   주요한(朱耀翰 : 1900~1979)

평양 출생. 호는 송아(頌兒). 상해 호강 대학 졸업. 김동인과 함께 한국 최초의 문예 동인지 '창조' 발간. 3·1 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 정보 기관지 '독립 신문' 편집을 맡기도 함. 1919년 '창조'에 발표된 시 '불놀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자유시로 평가되고 있음.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4) 등이 있음.


 
   조태일(趙泰一 : 1941~)

전남 곡성 출생. 호는 죽형(竹兄).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광주대 교수. 1964년 경향 신문 신춘 문예에 '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등단. '신춘시' 동인. 1969년부터 1년간 '시인'의 주간을 역임하는 한편 강렬한 저항시를 생산하여 70년대 사회시를 주도한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 시집으로 '아침 선박'(1965),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자유가 시인더러'(1987), '산속에서 꽃속에서'(1991) 등이 있음.


 
   조지훈(趙芝薰 : 1920~1968)

경북 영양에서 출생. 본명은 동탁(東卓). 혜화 전문 졸업. 고대 교수, 한국 시인 협회 회장 역임. 1939년 '문장'에 '고풍 의상'으로 등단한 청록파. 합동 시집으로 '청록집'(1946)과 개인 시집에 '풀잎 단장'(1952), '조지훈 시선'(1956), '역사 앞에서'(1959) 등이 있음.


 
   조병화(趙炳華 : 1921~)

경기도 안성 출생. 호는 편운(片雲). 일본 동경 고등 사범 졸업. 한국 시인 협회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 수상. 1949년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 이후 '하루만의 위안'(1950), '사랑이 가기 전에'(1955), '가숙(假宿)의 램프'(1968) 등을 내면서 도시인의 고독과 애상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서 발표함. 이외에도 '오산 인터체인지'(1971), '먼지와 바람 사이'(1972) 등의 시집이 있음.


 
   정희성(鄭喜成 : 1945~)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 일보 신춘 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엄숙한 선비의 목소리와 구체적 현실에 몸담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시인이란 평을 받을 만큼 폭 넓은 시를 tm고 있음. 시집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가 있음.


 
   정 훈(丁 薰 : 1911~1992)

시조 시인. 충남 대전 출생. 일본 메이지 대학 문과 중퇴, 1940년 시조 '머들령'이 '카톨릭 청년'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나옴. 민족적 서정을 직유적 방법으로 노래한 것이 특색임. 시조 '난', '춘일' 등을 발표.


 
   정한모(鄭漢摸 : 1923~1991)

충남 부여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한국 시인 협회 회장, 예술원 정회원, 문공부 장관 역임. 한국 시인 협회상 수상. 생명에 대한 긍정 혹은 인간성의 옹호를 시적 주제로 삼음. '카오스의 사족'(1958), '여백을 위한 서정'(1959), '아가의 방'(1970), '새벽'(1975) 등의 시집 간행.


 
   정지용(鄭芝溶 : 1902~미상)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생. 휘문 고보를 거쳐 1929년 일본 도오시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화 여전 교수를 지냄. 6·25때 납북되어 생사를 모름.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됨.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시풍이 바뀌어서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많이 다룸.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1935),'백록담'(1941)과 산문집 '산문'(1949)이 있음.


 
   전봉건(全鳳健 : 1928~1988)

평남 안주 출생. 평양 승인 중학 졸업. '현대 시학' 주간. 1950년 '문예'에 '원(願)' 이 추천되어 등단. 초기에는 초현실주의 수법에 의거하여 신선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작품을 썼으나, 후기에는 한국적인 고전을 현대화하려는 작업에 주력함. 시집으로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춘향연가'(1967) 등이 있음.


 
   장만영(張萬榮 : 1914~1975)

황해도 연백 출생. 동경 미자끼 영어 학교 졸업. 광복 후 '신천지'를 주재했고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함. 전원적 세계를 현대적 감성으로 그려 낸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 시집으로 '양'(1937), '축제'(1939), '유년송(幼年頌)'(1947)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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