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유치환(柳致環 : 1908~1967)

경남 충무 출생. 호는 청마(靑馬). 연회 전문 문과 수학. 1946년 이래 우익 문인 단체인 청년 문학가 협회 회장 역임. 6·25 때는 문총 구국대를 조직하여 종군. 이후 중등학교 교장 역임. 아시아 자유 문학상, 예술원상 수상. 1931년 '문예 월간'에 '정적'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 시작. 세련된 언어를 피하고 호방한 시풍으로 일가를 이룸. 시집으로 '청마 시초'(1939), '생명의 서'(書)(1947), '울릉도'(1948), '청령일기(  日記)'(1949), '보병과 더불어',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등이 있음.


 
   오장환(吳章煥:1918~미상)

충북 보은 출생. 휘문 고보 중퇴. 1933년 '조선 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작품 활동 시작. '시인 부락', '자오선' 동인. 조숙한 시인으로 다채로운 시적 편력을 통해 풍요로운 시세계를 펼쳐 보임. 일제 말기에도 꾸준히 시를 썼으며 을유 해방 직후의 격동기에는 현실 문제에 민감히 대응하는 시를 썼음. 조선 문학가 동맹에서 활동하다 월북함. 시집으로는 '성벽'(1937), '헌사'(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등이 있음.


 
   오상순(吳相淳:1894~1963)

서울 출생. 호는 공초(空超). 일본 도오시샤 대학 철학과 졸업. 1920년 '폐허' 동인으로 참가하여 '시대고(時代苦)와 그 희생'이란 글을 발표한 이후에 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1922)을 써서 문명을 올림. 그의 시에는 동양적인 허무 정신이 짙게 깔려 있는데,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승 속을 초월한 유랑 생활을 거듭함. '공초 오상순 시집'(1963)이 있음.


 
   양성우(梁性佑:1943~)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1970년 '시인'지에 '발상법'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 1975년 시 '겨울 공화국'(1977), '북치는 앉은뱅이'(1980),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1981), '넋이라도 있고 없고'(1983), '낙화'(1984), '노예 수첩'(1985), '그대의 하늘 길'(1987) 등이 있음.


 
   심 훈(沈熏:1901~!1936)

본명은 대섭(大燮). 서울 출생. 소설가, 언론인, 시인.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된 후 상해로 망명. 1923년에 귀국하여 동아 일보 · 중앙 일보 등의 기자로 있으면서 소설 창작에 전념, '영원의 미소'(1933), '상록수'(1935) 등을 발표했다. 브나로드 운동에 의해 고양된 민족 의식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민족의 삶을 주로 그림. 시집 '그날이 오면'(1949)은 항일 저항 시집임.


 
   신석초(申石艸:1909~1975)

충남 서천 출생. 본명은 응식(應植). 호는 유인(維仁), 석초(石艸). 경성 제일 고보를 거쳐 일본 호오세이(法政) 대학 철학과 수학. 한국 시인 협회 회장 역임. 신유인(申維仁)이라는 필명으로 카프 진영의 비평가로 활동하다 전향함. 1935년 자신이 편집에 관여했던 잡지 '신조선'에 '비취 단장(翡翠斷章)'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함. 동양적 신비와 허무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함. 시집으로 '석초 시집'(1946), '바라춤'(1959), '폭풍의 노래'(1970), '처용은 말한다'(1974), '수유동운(水踰洞韻)'(1974) 등이 있음.


 
   신석정(辛夕汀:1907~1974)

전북 부안 출생. 본명은 석정(錫正). 1924년 조선 일보에 습작시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그의 시가 활자화되기 시작함. '시문학' 동인. 사회적 관심을 드러내는 시도 있으나 주로 전원 지향의 목가적 서정시를 씀. 시집으로 '촛불'(1939), '슬픈 목가(牧歌)'(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 등이 있음.


 
   신동집(申瞳集:1924~)

신동집(申瞳集:1924~)


대구 출생. 호는 현당(玄堂). 서울대 정치과 졸업. 미주 인디애나 대학 수학. 영남대 교수 역임. 예술원 회원. 아시아 자유 문학상 수상. 대한 민국 예술원상 수상. 대학 재학 때 첫 시집 '대낮'(1948)으로 등단. 그의 시는 휴머니즘을 바탕에 둔 인간의 존재 의식의 추구와 즉물적인 발견을 특징으로 함. 시집으로는 '서정의 유형(流刑)'(1954), '모순의 눈물'(1963), '들끓는 모음'(1965), '빈 콜라 병'(1968), '송신(送信)'(1973), '행인'(1975), '세사람의 바다'(1979), '백조의 노래'(1990) 등이 있음.


 
   신동엽(申東曄:1930~1969)

충남 부여 출생. 단국대 사학과 졸업. 명성 여고 교사 역임. 1959년 조선 일보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 민족 모순에 대한 자각과 반외세 민족 해방의 사상으로 충만한 시를 선구적으로 발표함으로써 1960년대 민족 문학의 거봉이 됨. 시집으로 '아사녀'(1963)가 있고 독보적인 서사시 '금강'(1967)과 유고작으로는 '신동엽 전집'(1975)이 있음.


 
   신경림(申庚林:1935~)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민족 예술인 총연합회 회장 역임. 제1회 만해 문학상 수상. 1956년 '문학 예술'을 통해 등단. 민중적 노래와 이야기를 통합시켜 민중시의 새 경지를 연 시인. 민요시와 농민시 차원에서도 돋보이는 시인. 시집으로 '농무'(1973), '달넘세'(1985), '남한강'(1987), '가난한 사랑 노래'(1988), '길'(1990) 등이 있음.


 
   서정주(徐廷柱:1915~2002)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堂). 중앙 불교 전문학교에서 수학. 동아 일보 문화부장, 중앙대 교수 역임. 1936년 동아 일보 신춘 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 '시인 부락' 동인. 억눌린 정신의 아픔을 노래하던 관능적인 초기시에서부터 불교적 달관의 정신주의 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적 편력을 거친 시인. 시집으로 '화사'(1938), '귀촉도'(1946), '신라조'(1960), '동천'(1968), '질마재신화'(1975), '떠돌이의 시'(1976),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팔할이 바람'(1988), '산시'(1991) 등이 있음.


 
   변영로(卞榮魯:1898~1961)

서울 출생. 호는 수주(樹州). 서울 중앙 학교 졸업. 중앙 고보 영어 교사.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대학 수학. 성균관대 교수, 대한공론사 이사장, 국제 펜 클럽 한국 본부 초대 위원장 역임. 1920년 '폐허' 동인이 되어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였다. 1924년 발간된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순화에 기여한 높은 시 정신과 민족적 저항 시인의 소산으로 평가받았다. 두주불사의 주호(酒豪)로서 '명정(酩酊) 40년'이란 수필집도 있음.


 
   백 석(白石:1912~미상)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기행(夔行).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졸업. 조선 일보 기자와 함흥 영생 여고보 교원 등을 역임함. 일제 말에는 만주에서 거주하다 분단 고착화 과정에서 북에 남음. 1935년 조선 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옴. 궁벽한 방언 구사와 서사 지향성이 그의 시의 표현상의 특징. 식민지인의 전형적 감성으로서의 고향 상실감에 대한 창작적 대응이라는 면에서 돋보이는 시인. 시집으로는 '사슴'(1936)과 '백석시선집'(1987)이 있음.


 
   박재삼(朴在森:1933~)

일본 동경 출생. 고려대 국문과 수학. 제2회 현대 문학사 신인상 수상. 1955년 '현대 문학'을 통해 등단. 한(恨)을 주조로 한 전래적 정서를 유려한 시어로 가다듬어 노래함으로써 독자적 시세계를 구축함. 문학사적으로는 김영랑, 서정주의 맥을 잇는 시인임. 60년대 사화집 동인. '춘향이 마음'(1962),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뜨거운 달'(1979), '비듣는 가을 나무'(1981), '대관령 근처'(1985), '해와 달의 궤적'(1990), '꽃의 푸른 빛을 피하고'(1991) 등 다수의 시집과 시조집, 수필집 등이 있음.


 
   박인환(朴寅煥:1926~1956)

1926년(1세)

강원도 인제 출생. 평양 의전 중퇴. 경향 신문 기자 역임. 1946년 시 '거리'를 발표함으로써 등단. 해방과 함께 서울에 온 그는 '마리서사(茉莉書舍)'를 경영하며 사귀며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 간행에 참여함. 1951년에는 '후반기' 동인이 되어 도시적인 비애와 시대고를 노래함. '박인환 시선집'(1955)이 있음.

<작가연보>

1926년(1세)

8월15일,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 159번지에서 아버지 박광선과 어머니 함숙형 사이의 4남 2녀중 맏이로 출생. 본관은 밀양

1933년(8세)

고향의 인제공립보통학교 입학.

1936년(11세)

서울로 이사 종로구 내수동에서 잠시 거주한 뒤 종로구 원서동 134번지로 이주.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 편입.

1937년(12세)

보통학교 5학년때 우등상 및 개근상 받음.

1939년(14세)

3월18일 덕수공립소학교 졸업. 학교장의 소견은 최적으로 되어 있음.
4월2일 경기중학교(5년제)입학

1940년(15세)

원서동 134번지에서 215번지로 이사. 시와 영화에 관심.

1941년(16세)

3월 16일자로 경기중학교 자퇴. 한성학교 야학으로 전학.

1942년(17세)

친척이 있는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기독교 재단)4학년에 편입

1944년(19세)

명신 중학교 졸업.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 입학.

1945년(20세)

8.15광복후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옮김. 종로 3가 2번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를 개업

1947년(22세)

시<남풍> 발표

1948년(23세)

입춘 무렵 <마리서사>폐업. 봄에 1세 아래인 이정숙과 덕수궁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종로구 세종로 135번지 (현교보빌딩) 신혼살림을 차림. 자유신문사에 입사하여 문화부 기자가 됨. 12월8일 장남 세형 출생. 시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 <세계일보><지하실><민성><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시>등을 발표하여 활발한 문단 활동을 함.
4월 동인지<신시론> 창간

1949년(24세)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등과 함께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 여기에 <장미의 온도> <열차> <지하철> 등 5편의 시 발표. 4월 민성지에서 시 <정신의 행방을 찾아> 발표. 경향신문사에 입사. 문학동인 후반기 발족 준비

1950년(25세)

1월 동인 후반기 결성. 6월25일 전쟁으로 동인지<후반기> 출간이 유산됨. 피난가지 못하고 9월28일 수복때까지 서울에서 지하생활을 함. 9월28일 딸 세화 출생.
12월 8일 맏아들 생일날 가족과 함께 열차편으로 대구로 피난. 대구 동인동에 거주

1951년(26세)

경향신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 대구에서 전선판 경향신문 발간에 종사.
5월 육군 종군 작가단에 참여하여 종군 기자로 활동. 가을 부산으로 가족 이주.
시<신호탄> <고향에 가서> <벽> <문제되는 것> 등 씀.

1952년(27세)

경향신문사를 퇴사하고 대한 해운공사로 이직. <주간국제>에 후반기 문예특집의 하나로 <현대시의 불행한 단면>을 기고. 6월16일 시<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날까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 할 때> 발표.

1953년(28세)

5월31일 차남 세곤 출생. 7월 중순 서울 옛집으로 이주. 부산에서 후반기 해체 논의됨.

1955년(30세)

3월 5일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미국여행. 5월 귀국후 <조선일보>에 미국 기행문<19일간의 아메리카> 발표. 대한 해운공사 퇴사. 10월15일 <박인환 선시집>출간.

1956년(31세)

시<세월이 가면> <죽은 아포롱> <옛날의 사람들에게> 발표. 3월20일 오후 9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영면. 9월19일 추석에 문인들이 망우리 묘소에 시비 세움.

1976년(20주기)

시집<목마와 숙녀>가 장남 세형에 의해 출간됨. 2만부 팔림

1982년(26주기)

평전<아! 박인환> <지금 그사람 이름은잊었지만> 발간.

1986년(30주기)

박인환 평전<목마와 숙녀와 별과 사랑> <박인환 전집>등이 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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