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박용철(朴龍喆:1904~1938)

전남 송정리 출생. 호는 용아(龍兒). 동경 외국어 학교 독문과와 연희 전문에서 수학. '시문학', '문예 월간', '문학' 등의 문예지를 발간함. 시문학파 동인. 시인이자 비평가로서 순수 서정시 운동을 전개함. 유고집으로 1940년 '박용철 전집'이 있음.


 
   박용래(朴龍來:1925~1980)

충남 강경 출생. 강경 상고 졸업. 제7회 한국 문학 작가상 수상. 1956년 '현대문학'지 추천으로 등단.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시어구사와 향토적 서정으로 독자적 시 세계를 구축함. 정치 의식을 탈색시켰다는 의미에서의 대표적 순수 시인. 시집으로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 대공'(1979)을 간행함.


 
   박성룡(朴成龍:1934~)

전남 해남 출생. 1955년 '문학 예술'을 통해 등단. 60년대 사화집 동인. 시집으로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1969), '춘하추동'(1970), '동백꽃'(1976), '휘파람새'(1982), '꽃 상여'(1987)를 출간함.


 
   박목월(朴木月:1917~1978)

경북 경주에서 출생. 본명은 영종(泳鐘). 제3회 자유 문학상 수상. 1939년 '문장'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가 추천되어 등단한 청록파. 시집에 합동 시집 '청록집'(1946)과 '산도화'(1954), '난 기타'(1959), '청담(晴曇)'(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등이 있음.


 
   박두진(朴斗鎭:1916~)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연세대 교수 역임. 아시아 자유 문학상, 대한 민국 예술원상 수상. 1939년 '문장'에 '향현(香峴)', '묘지송'으로 등단한 청록파. 시집으로 합동 시집 '청록집'(1946)과 '해'(1949), '오도(午禱)'(1953), '거미와 성좌'(1961), '수석 열전'(1973) 등이 있음.


 
   박남수(朴南秀:1918~)

평양 출생. 일본 쥬오 대학 법학부 졸업. 아시아 자유 문학상 수상. 1939년 '문장'에 '초롱불'이 추천되어 등단. 초기에는 회화적 감각으로 묘사된 서경시를 썼으나 1958년에 제2시집 '갈매기의 소묘'를 내고부터 시의 조형적 이미지에 관심을 둔 즉물적인 서정을 모색함. 시집 '초롱불'(1940), '새의 암장(暗葬)'(1970) 등이 있음.


 
   민 영(閔暎:1934~)

강원도 철원 출생. 유년 시절을 만주에서 보냄. 제6회 만해 문학상 수상. 1959년 '현대 문학'추천으로 문단에 나옴. 부두 노동자, 인쇄소 조판공, 출판사 편집자 등의 여러 경험이 시 세계의 기반을 이루었는데, 시집으로 '단장(斷章)'(1972), '용인 지나는 길에'(1977), '냉이를 캐며'(1983), '엉겅퀴꽃(1987), '바람 부는 날'(1991) 등이 있음. 간결하게 응축된 단시가 주조를 이룸.


 
   문덕수(文德守:1928~)

제주도 출생. '현대 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나옴. 이미지의 조형에 의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입장에서 감정도 사상도 배제된 순수를 지향하는 것이 그의 시적 특징이다. 현대 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에 '황홀'(1956), 저서에 '문학 개론' 등이 있음. 시 전문지 '시문학'주재, 홍익 대학교 교수.


 
   도종환(都鍾煥:1954~)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 교육과 졸업. 1984년 동인지 '분단 시대' 제 1집에 '고두미 마을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 1989년 전교조 결성 관련으로 해직, 투옥됨.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1985), '접시꽃 당신'(1986),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등이 있음.


 
   노천명(盧天命:1912~1957)

황해도 장연 출생. 진명 여고보를 거쳐 이화 여전 영문과 졸업. 조선 중앙 일보 기자 역임. 극 예술 연구회에 참가하여 연극에 출연하기도 함. 여성으로서의 감수성이 드러난 절제된 내성의 시로 개성적인 세계를 구축함. 시집으로 '산호림(珊瑚林)'(1938), '창변(窓邊)'(1945), '별을 쳐다보며'(1953), '사슴의 노래'(1959) 등이 있음.


 
   김현승(金顯承:1913~1975)

평양 출생. 호는 다형(茶兄). 숭실 전문 문과 졸업. 조선대, 숭실대 교수 역임. 3살 때 부친을 따라 광주로 이주. 1934년 숭실 전문 교지에 발표한 시가 양주동의 눈에 띄어 '동아일보'에 발표됨으로써 등단. 초기시에는 젊음에 넘친 서사적인 면이 있으나 해방 후에는 자연 예찬과 크리스트 교적 내면 탐구로 기울음. 시집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등이 있음.


 
   김춘수(金春洙:1922~)

경남 충무 출생. 일본 니흔 대학 중퇴. 경북대, 영남대 교수 역임. 한국 시인 협회상 수상. 아시아 자유 문학상 수상. 1946년 사화집 '날개'에 '애가(哀歌)'를 발표함으로써 등단. 초기시에서는 릴케와 미당의 영향이 엿보였으나 시집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1959)으로 현실 인식의 시풍으로 들어섰다가 '타령조 기타'(1969) 이후부터 시의 이미지 구상에 집착하는 '무의미의 시'의 늪으로 빠져들음. 시집 '늪'(1949), '기(旗)'(1951), '꽃의 소묘', '처용 단장' 등이 있음.


 
   김지하(金芝河:1941~)

전남 목포 출생, 서울대 미학과 졸업. 로터스(Lotus)상, 위대한 시인상, 브르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등 수상.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 담시 '오적(五賊)'(1970), '앵적가(櫻賊歌)'(1971), '비어(蜚語)'(1972) 등을 발표함. '오적' 사건과 민청 학련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됨. 시집으로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986), '이 가문 날의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등과 대설(大說) '남(南)' 1·2·3(1982~85), 담시 모음집 '오적'(1985)이 있음.


 
   김종한(金鐘漢:1916~1944)

함북 명천에서 출생. 1937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으로 등단. 1939년 '문장'에 '귀로'로 추천됨. 명암이 분명한 감각적인 시를 썼음.


 
   김종길(金宗吉:1926~)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고려대 영문과 교수 역임. 1947년 경향 신문 신춘 문예를 통해 등단. 고전적 품격을 지닌 이미지즘 시풍. 시집으로 '성탄제'(1969), '황산 현상'(1986)이 있고 시론집 '시론'(1965), '진실과 언어'(1974), '시에 대하여'(1986)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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