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김용호(金容浩:1912~1973)

경남 마산 출생. 호는 학산(鶴山) 또는 야돈(野豚).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 졸업. 단국대 국문과 교수 역임. 자유 문학상 수상. 1938년 장시 '낙동강'을 냄으로써 시단의 주목을 끌음. 첫 시집 '향연(響宴)'(1941)과 제2시집 '부동항(不凍港)'(1943)에서 일제하의 암울한 시대상을 감상적인 언어로 노래함. 그 밖에 '해마다 피는 꽃'(1948), '푸른 별'(1952), '남해 찬가'(1952), '날개'(1956), '의상 세례(衣裳洗禮)'(1962), '혼선'(1974) 등의 시집이 있음.


 
   김영랑(金永郞:1903~1950)

전남 강진 출생. 본명은 윤식(允植). 호는 영랑(永郞). 휘문 학교를 거쳐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수학함. 대지주 출신으로 을유 해방 후에는 우익 보수 진영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고 6·25 전쟁의 와중에 작고함. 1930년 '시문학'에 '동백잎이 빛나는 마음' 등을 발표함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함. 시문학파 동인. 일제 강점기에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의 순수시를 쓴 대표적 시인. 사회 의식을 지우고 개인적 정서를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는데 주력함. 시집으로 '영랑 시집'(1935)과 '영랑 시선'(1949)이 있음.


 
   김 억(金億:1893~미상)

평북 곽산 출생. 호는 안서(岸曙). 6·25 때 납북됨. 1914년 '학지광'에 시 '이별'을 발표함으로써 등단. 신문학 초기에 '태서 문예 신보'에 서유럽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 소개한느 한편 7·5조의 정형률에 의한 창작시를 발표함으로써 '민요 시인'이란 평을 받음.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 외에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 '안서 시집'(1929) 등이 있음.


 
   김수영(金洙暎:1921~1968)

서울 출생. 연회 전문 영문과 중퇴. 북괴 의용군에 강제 징집,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석방됨. 1945년 '예술 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함으로써 등단. 1948년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 출발함. 그러나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8), 유고 시집에 '거대한 뿌리'(1974), '사랑의 변주곡'(1988) 등이 있음.


 
   김소월(金素月:1902~1934)

평북 곽산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배재 고보 졸업. 1922년 스승 김억의 주선으로 '개벽'에 '먼 후일', '진달래꽃' 등 4편의 시가 발표된 후 천재적인 재주를 보임. 그의 시는 민요적 가락과 소박하고 향토색 짙은 서정, 반복적 운율을 살린 점이 특징임. 1934년 12월 사업의 실패와 세상에 대한 실의로 고민하다 음독 자살. 시집으로는 '진달래꽃'(1925), '소월 시초'(1939) 등이 있음.


 
   김상용(金尙鎔:1902~1950)

경기도 연천 출생. 호는 월파(月坡). 일본 릿꼬(立敎) 대학 수학. 이화 여전 교수. 강원도 지사, 코리아 타임즈 사장을 등을 역임. 월파의 시 세계는 전원적이고, 자연파적 경향. 시집으로 '망향'(1939)이 있음.


 
   김동환(金東煥:1901~미상)

함북 경성 출생. 호는 파인(巴人). 일본 동양 대학 영문과 수학. 6·25때 납북됨. 1924년 첫 시집 '국경의 밤'을 발간하여 향토색 짙은 민족 정서의 시풍을 보여 주었다. 특히, 이 시집을 신문학 이후 최초의 서사시집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밀수차 두만강을 건너간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애타는 심정을 노래함으로써 민족의 비애를 표출함.


 
   김동명(金東鳴:1901~1968)

강원도 강릉 출생. 호는 초허(超虛). 일본 도쿄 청산 학원 신학과 졸업. 이화여대 교수, 초대 참의원 역임. 자유 문학상 수상. 1923년 '개벽'에 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을 발표함으로써 등단. 일제 때는 시골에 묻혀 살면서 겨레의 슬픔과 조국에 대한 향수를 고전적인 서정으로 노래했고, 또 전원과 자연을 예찬하는 은둔자의 심경을 노래하기도 함. 시집 '나의 거문고'(1930), '파초'(1938), '삼팔선'(1947), '목격자'(1957) 등이 있고 수필집으로는 '세대의 대화'(1959), '적과 동지'(1965) 등이 있음.


 
   김남주(金南柱:1946~1994)

전남 해남 출생. 전남대 영문과 수학.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잿더미'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옴. 1979~88년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함. 시집으로 '진혼가'(1984), '나의 칼 나의 피'(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솔직히 말하자'(1989), '사상의 거처'(1991), '이 좋은 세상에'(1992) 등과 옥중 시전집 '저 창살에 햇살이' 1,2(1992)가 있음.


 
   김남조(金南祚: 1927~)

대구 출생. 서울대 사대 국어과 졸업. 숙명 여대 교수. 1951년 첫 시집 '목숨'으로 등단. 종교적인 심성으로 인간의 사랑과 인내, 신의 은총 등을 노래. 40년대 노천명의 뒤를 이은 50년대의 여류 시인. 시집 '풍림(楓林)의 음악'(1963), '사랑 초서'(1974), '동행'(1980), '바람 세례'(1988) 등이 있음.


 
   김기림(金起林:1908~미상)

함북 성진 출생. 호는 편석촌(片石村). 일본 니흔(日本) 대학 문학 예술과를 거쳐 도후꾸(東北) 제국 대학 영문과 졸업.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교수 역임. 6·25때 납북됨. 구인회 회원. 조선 일보 기자 역임. 1930년대 모더니즘 시론을 실제 창작에 실험함. 8·15 후 조선 문학가 동맹에서 활동하면서 사회 의식을 짙게 드러내는 시를 썼음. 시집으로 '기상도'(1935),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 노래'(1935) 등과 '시론', '문학 개론', '문장론 신강' 등이 있음.


 
   김규동(金奎東:1923~)

함북 경성 출생. 연변 외대 수료. 1948년 '예술 조선'에 '강'이 당선되어 등단. 초기에는 '후반기' 동인으로 모더니즘 시를 발표하여 '나비와 광장'(1955), '현대의 신화'(1958) 같은 시집을 선보였으나, 70년대 후반부터 사회성이 짙은 민중 지향적 서정시로 돌아섰다. 시집으로 '죽음 속의 영웅'(1977), '깨끗한 희망'(1985), '오늘밤 기러기떼는'(1989), '생명의 노래'(1991)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새로운 시론'(1959)과 '현대시의 연구'(1972)가 있음.


 
   김광섭(金珖燮:1905~1977)

함북 경성 출생. 호는 이산(怡山).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공보처장, 대통령 비서 역임. 서울시 문화상 수상. 일제 말에 창씨 개명을 반대하다 옥고를 치렀다. 1927년 '해외 문학'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신민지 지식인의 고뇌가 담긴 시집 '동경(憧憬)'(1938)을 냈다. 행방 후에는 민족 문학 건설의 기치를 내걸고 정치에도 참여, '자유 문학' 발행인을 역임했다. 시집으로는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6) 등이 있음.


 
   김광림(金光林:1929~)

함남 원산 출생. 국학 대학 졸업. 1955년 '전시 문학선'에 '장마', '내력', '진달래'를 발표. 시집으로 '상심하는 접목'(1959), '학의 추락'(1971), '천상의 꽃'(1985), '곧이 곧대로'(1993) 등 11권이 있으며, 시론집 '존재에의 향수'(1974), '오늘의 시학'(1976)이 있음. 1973년 한국 시인 협회상 및 1985년에 대한 민국 문학상 수상.


 
   김광균(金光均:1913~1993)

개성 출생. 송도 상업 학교 졸업. 1950년대 이후에는 실업계에 투신, 한국 경제인 연합회 이사, 한국 무역 협회 이사 역임. '자오선', '시인 부락' 동인. 1926년 중외 일보에 '가는 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소시민의 시점에서 도시적 풍물을 이미지즘으로 그려 내는 회화적인 시풍을 보임. 이미지즘 계열의 모더니즘 시인. 시집으로 '와사등'(1939), '기항지'(1947), '황혼가(黃昏歌)'(1957)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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