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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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청간정(淸澗亭)의 멋진 풍광에 반하다 


청간정(淸澗亭)의 멋진 풍광에 반하다  




  청간정은 나에게 동해안 탐방의 일 순위가 된 지 오래다. 그 풍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 때문일 것이다. 청간정을 방문하지 않고는 동해 여행에서 중요한 일부분이 빠진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청간정은 속초에서 고성 방면으로 7번 국도를 타고 약 15분 정도 이동하다 보면 고성군(高城郡) 토성면(土城面) 청간리 우측 바닷가의 야트막하게 솟은 산봉우리에서 얼굴을 살짝 내민다. 노송 우거진 틈새로 드러내는 의연한 모습이 언제나 예사롭지 않다. 설악산과 신선봉에서 발원하여 화암사와 신평을 거쳐 청간리로 흘러든 청간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하구 언저리에 있어서 그 매력은 한층 더한다. 청간정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는 관동팔경 중 가장 빼어나서 일찍이 문인 화가들이 시로 읊고 화폭에 담았던 곳으로, 강원도는 1971년 12월 16일 유형문화재 32호로 지정했다.



            

            

            



  일찍이 청간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가사문학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송강 정철은 45세 되던 해인 1580년(선조 13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후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쓴 《관동별곡(關東八景)》에서 고성의 삼일포, 통천의 총석정, 간성(고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울진)의 월송정 등 여덟 곳을 관동의 팔경으로 꼽았다. 북녘땅에 있는 고성 삼일포와 통천 총석정을 제외한다면 청간정은 남한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관동팔경이다.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영랑도 남석행(영랑의 무리가 남석으로 갔다)’은 붉은 글씨는 뚜렷하게 남아있는데, 이곳을 유람한 사선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사흘을 머무른 후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는가? 선유담, 영랑호 거기에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 등 몇 군데에 앉아서 놀았던가?”
                              
                                                                           - 송강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여기에 나오는 신라의 전설적인 네 화랑인 사선(영랑, 남랑, 술랑, 안상)은 금강산과 그 주변을 유람하면서 많은 전설과 흔적을 남겼다.  삼일포의 단서와 사선봉이라고 불리는 총석정의 돌기둥, 그리고 속초 시내에 있는 영랑호 등 관동팔경 주변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관동별곡에는 청간정과 그 주변 만경대의 아름다움이 스치듯이 잠깐 나올 뿐이다. 하지만 송강은 이 대목에서 네 화랑이 청간정에서도 놀지 않았을까 추측하면서 우회적으로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송강은 청간정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노래했다. 청간정과 함께 등장하는 만경대는 청간정에서 약 200m 북쪽, 현재 군부대 내에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 1774∼1851)의 「청간정기(淸澗亭記)」는 청간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청간정은 간성군 남쪽 45리에 있다. 천후산(天吼山)의 한 자락이 비스듬하게 뻗어 내려와 바닷물에 잠겨 있다. 작은 언덕 앞에는 돌 봉우리가 있는데 층(層)으로 솟아올라 대(臺)를 이루었는데 만경대라고 부른다. 높이는 능히 수십 길이 됨직하여, 위에는 어지러운 소나무가 서로 휘어져 있고, 삼면이 바닷물에 둘러싸여 있고, 예전에는 누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

  대(臺)가 남쪽 2리쯤에 있으며, 간수(澗水;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에 임해 있어 역(驛)의 정자로 지어 청간정이라 하였다. 만경루가 허물어지자 역의 정자를 대 곁으로 옮겨옴에 만경루 편액을 걸어 청간에 의해 승지(勝地)가 되었다. 정자가 바닷물과 떨어진 것이 겨우 수십 보(步)이나 만경대 모퉁이로 삼고 물속의 험준한 섬이 먼저 물결과 싸우는 까닭에 예부터 수해를 입지 않았다. 정우(亭宇)는 구부리고 탁 트여 큰 바다를 누르고 해와 달은 나왔다가 들어가니 물새들은 날아와 모였다가 한다.

  어촌에는 밥 짓는 연기가 다다르고 하늘과 물은 넓고 아득하여 모두가 궤(책상) 안같이 평평하게 있다. 물이 돌아 흘러 정자 아래에 있는데 맑아서 바닥이 보이며, 머리칼까지 비춘다. 바닷바람에 밀리는 파도가 대(臺)에 부딪혀 흩날리는 서리와 눈처럼 사방으로 날린다. 호수, 산, 연못, 폭포 사이에 일출과 월출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좋다. 밤에는 방과 마루에 누우면 바람과 파도소리가 들리며, 창문을 뒤흔들어 마치 항해하는 배 속에서 물 잠자는 듯하다,

  정자는 일리에 채 이르지 못하고, 바닷가에는 자마석(自磨石:위와 아래에 마치 이제 막 작게 쪼아 낸 것 같은 돌)이 있다. 자마석이라고 하는 것이 어지럽게 돌 가운데 쌓여 있는데, 한 개의 커다란 돌은 소와 같고, 또 한 개의 커다란 돌을 밟으면 사이가 얼굴이나 주먹만 하다. 위아래로 돌들이 가운데 위치하여 갈아낸 자국이 함께 있다고 한다. 토착민들은 기이한 일이라고 하는데, 지나가는 나그네 모두가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래는 네모져서 세 개의 모서리가 모두가 그러하다. 파도만 바위틈으로 왔다 갔다 하며, 바람과 물결이 심하게 치는 때에는 돌이 크게 그곳에서 씻기고 파도와 함께 서로 삼켰다 토했다 한다. 예로부터 때리고 부딪치는 일은 늘 그러하였다. 그 이치로 보아 괴이쩍을 것도 없을 것이다.”




            



  청간정의 창건연대와 건립한 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조 중종 15년(1520)에 간성 군수 최청(崔淸)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측된다. 이후 현종 3년(1662)에 최태계(崔泰繼)가 중수하였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당시 좌상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금강산에 머물다가 이곳에 들려 '淸澗亭'이란 현판을 걸으나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에 화재로 전소한 채 방치되었다가 그 후 1928년 토성면장 김용집(金鎔集) 등의 발의로 정자를 다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렇게 복원된 청간정은 다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지시로 1955년 재건립되었다. 그 후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청간정은 훼손되고 퇴색한 채로 있었던 것을 1980년 8월 1일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동해안 순시 중 훼손된 청간정의 모습을 보고 보수하도록 지시함에 따라 그 이듬해인 1981년 4월에 준공하여 명실공히 문화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동해안에 산불로 청간정 정자 난간이 훼손되어 2002년 일부 보수작업을 했으나 10년가량 지난 후 문화재 안전점검에서 상부 구조물이 기울어지고 들보에 균열이 생긴 것이 발견되어 2012년 다시 해제·복원하였다. 복원할 당시 보존 가치가 높은 기초석과 목재는 30% 정도 재활용하였다고 한다.

  그 뒤로 청간정 주변의 정화 작업이 진행되어 주차장 옆의 낡은 휴게소를 철거하고 2014년  관광 안내소를 겸한 자료전시관과 화장실을 전통 한식구조로 새로 건립하였다. 자료전시관에는 청간정과 관련된 시와 회화 자료 등을 전시하여 방문객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자료전시관에서 청간정의 각종 자료를 둘러보고 계단을 따라 푸른 노송이 우거진 길을 잠시 오르면 소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진 언덕 끝에 2층 정자가 보이는 데 이것이 청간정이다.



            

            

            

            



  현재의 청간정은 12개의 돌기둥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을 받치고 있는 모습인데, 정자는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초석은 민흘림이 있는 8각 석주로써 전·후면 8개의 높이는 220㎝가 되어 마루 귀틀을 받치는 1층 기둥으로 되어 있고, 중앙부의 높이 1.2m 초석 위에 팔각형의 동자기둥을 세워 누마루형식의 아래층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다.

  2층은 8개의 기둥이 모두 원주이며 기둥 중심에서 외측으로 60㎝ 정도 띄어 사면을 모두 단층 궁판을 평난간으로 둘렀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지붕 측면 첫째와 둘째 기둥 사이에 정자 위로 올라오는 목조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굵직한 글씨의 ‘淸澗亭’이라는 현판(청파 김형윤의 친필)을 바라보며 정자에 올라서면, 우선 앞으로 드넓은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해안가 백사장과 맞닿아 있는 너른 바위와 바다 가운데 있는 죽도(竹島)는 동해안의 절경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푸른 물결이 시원하게 펼쳐진 백사장을 향해 하얗게 물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해안에는 해조(海鳥)들이 군집해 있다가 일시에 날개 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바다로 흘러드는 청간천의 밀물과 만나는 곳이어서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인 풍경과 더불어 특히 아침의 해돋이 광경과 낙조(落照)의 정취는 동해안에서 제일로 알려져 있다.



            

            

            



  또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군부대 너머 한적한 청간리(淸澗里)와 아야진(我也津) 어촌마을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송림이 우거진 해안선과 어촌 마을 그리고 천진해수욕장 뒤로 멀리 길게 뻗은 동해안 해안선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눈을 내륙으로 돌리면 소나무 가지 사이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합수머리 너머 청간천을 따라 펼쳐진 신평(新坪) 들녘의 풍요로운 농경지가 들어온다. 그리고 눈을 들어 멀리 서남쪽으로는 울산바위를 비롯하여 설악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아름다운 풍치를 이만큼 두루 갖춘 곳이 어디 또 있으랴! 아름다운 풍경의 종합세트 같은 것에 반해 일찍이 선인들이 청간정을 가리켜 관동팔경 중 수일경(秀逸景)이라 손꼽았을 것이다.  



            

            

            



  청간정 위에서 주변 풍광에 취해 있다가 정자 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청간정과 관련된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淸澗亭’ 현판은 두 개가 있는데 바깥에 걸려 있는 굵직하게 쓴 현판은 서예가 청파(청坡) 김형윤(金亨胤, 1895~1975)의 친필이고, 누마루에 걸린 날렵한 글씨의 현판은 1953년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친필 휘호다. 앞서 말한 대로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에서 소실된 청간정을 1955년 재건립한 장본인이다.



            

            



  청간정에 걸려 있는, 청파 김형윤이 병서(竝書)로 쓴 '청간정중수기(淸澗亭重修記)' 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청간정을 중수한 경위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서예가인 청파 김형윤의 ‘청간정중수기(淸澗亭重修記)'는 단기 4286년(1953) 5월 10일 작성한 것이다.

  

  “청간정은 관동팔경 중의 하나다. 바람에 닳고 비에 씻겨 부식된 지 이미 오래되어 오더니 대통령(이승만)이 동해 순유 중 제1군단장 이형근 장군이 맞이한 자리에서 중수할 것을 명하니 군 민정관 박종승과 면 민정관 윤태병, 함요근 씨가 즉각 호응하여 토성·죽왕 두 면민의 찬조가 답지하였다. 유지 이정길 씨 및 전임 김두경 씨가 협조하였으며, 부군단장 김병휘 장군 감독하에 헌병대장 김정채 ·병기대장 최병혁·첩보대장 김동석·58헌병대장 이종원 씨 등이 협조하여 3일 기한하고 공사를 했는데 5일 걸려 완수했다. 옛것과 비교하니 늘려 지은 새 정자 더욱 절경일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민과 군이 일사불란하게 협력하여 불과 5일 안에 청간정을 중수했다는 내용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으나 한국전쟁 중에 소실된 청간정을 다시 재건립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와 마주하여 1980년 여름 청간정을 찾은 최규하 대통령이 쓴 '嶽海相調古樓上 果是關東秀逸景(악해상조고루상 과시관동수일경)'이라는 시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설악과 동해가 마주하는 고루(古樓)에 오르니 과연 이곳이 관동의 빼어난 경치로구나!” 로 풀이될 수 있다. 최규하 대통령이 1년도 채 안 되는 재임 기간 중 이곳을 방문하여 청간정의 보수를 지시하고 시를 남긴 것을 보면 강원도 출신으로서 청간정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청간정 주차장 옆에는 최규하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식수 한 그루가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2014년 청간정 자료전시관 건립 때 전시관 뒤로 밀려나 푸대접을 받고 있었는데, 이곳을 방문한 문화재위원들의 지적에 따라 전면으로 옮겼다.(실은 내가 방문했을 당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청간정에는 소재(素齊) 이창석(李昌石)이 판각한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시도 걸려 있다. 그는 청간정을 노래한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청간정의 멋진 풍광을 묘사했다.


             天敎滄海無潮汐 (천교창해무조석)    
             亭似方舟在渚涯 (정사방주재저애)    
             紅旭欲昇先射牗 (홍욱욕승선사유)   
             碧波纔動已吹衣 (벽파재동기취의)   
             童男樓艓遭風引 (동남누접조풍인)    
             王母蟠桃着子遲 (왕모반도착자지)    
             怊悵仙蹤不可接 (초장선종불가접)    
             倚闌空望白鷗飛 (의란공망백구비) 
  
             하늘의 뜻이런가 밀물 썰물 없는 바다
             방주마냥 정자 하나 모래톱에 멈춰 섰네
             아침 해 솟기 전에 붉은 노을 창을 쏘고
             푸른 바다 일렁이자 옷자락 벌써 나부끼네
             동남동녀 실은 배 순풍을 탄다 해도
             왕모의 선도(仙桃) 열매 언제야 따먹으리
             선인의 자취 못 만나는 아쉬움 속에
             난간에 기대 부질없이 오가는 백구만 바라보네
   
                                               -《택당집(澤堂集)》5권  




            



  조선 중기 장유, 신흠, 이정구와 함께 한문 4대 가로 불리는 이식(李植, 1584~1647)은 1631년 간성 현감을 지냈다. 조선 인조 때 군수로 부임해온 이식은 “정자 위에 앉아 물과 바위가 서로 부딪쳐 산이 무너지고 눈을 뿜어내는 듯한 형상과 갈매기 수백 마리가 아래위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그 사이로 일출과 월출을 바라보는 매력에 도취하기도 하고, 밤에 현청에 드러누우면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창문을 뒤흔들어 마치 배에서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한시는 무수히 많다.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알려진 것은 고려 때의 문신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 1150~1204)의 것이다. 여기서 김극기의 글 한 편을 더 소개하면,



          雲端落日欹玉幢   구름 끝으로 해는 떨어지고 수레를 멈췄는데     
          海上驚濤倒銀玉   바다에는 놀란 파도가 은색 물결을 뒤집네.       
          閑搔蓬鬢倚朱闌   한가로이 흰 귀밑털 긁으며 붉은 난간 의지해 서니    
          白鳥去邊千里目   백조 날아가는 저 멀리 천 리나 바라보이네.

                                          — 김극기 〈간성군 역원〉 《신증동국여지승람》 45권



  이 시는 청간역이 간성의 바닷가에 인접해 있고 거기 정자가 있어 바다를 조망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데 이 정자는 청간정을 가리킨다. 희게 부서지는 파도와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인은 귀밑 머리털 그리고 무수히 나는 갈매기까지 모두가 흰색으로 통하고 있다. 푸른 바다와 그 흰색의 대비가 시와 청간역 이미지를 모두 청아하게 하고 있다. 김극기의 시 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시 외에도 〈간성군 역원〉두 수가 더 소개되어 있다.

  청간정을 소재로 한 시는 조선 초기의 이석형(李石亨),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 임억령(林億齡), 심수경(沈守慶), 양사언(楊士彦), 이달(李達), 스님인 부휴당대사(浮休堂大師), 유몽인(柳夢寅), 이식(李植)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청간정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서화가 풍미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 많은 화가들이 청간정을 화첩에 남겼는데,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명편이 적지 않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관동명승첩》에 그려진 청간정은 경물의 중요한 요소를 강조한 구도가 특징인데, 높다란 만경대 배 위 절벽과 송림을 배경으로 만경루와 청간정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만경루 꼭대기에서 두 사람의 선비가 아이를 데리고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를 감상하는 모습이 보인다.



            



허필(許佖, 1709~1761)의 《관동팔경도병에 들어 있는 〈청간정도〉는 청간정이 어촌의 민가와 어우러진 평지에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상단에는 김극기의 7언절구가 적혀 있다.



            



  또 김홍도(金弘道,1745∼?)의 『金剛四郡帖』「청간정도」에서는 청간정, 만경루 위에 청간역사에 관해 매우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청간역사의 규모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청간역사는 네모난 형태이며, 지붕은 초가로 추정되면, 역사 주변으로는 민가가 그려져 있어 청간역사 인근의 밀집된 주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청간정과 만경루 앞쪽의 경관은 창해의 동해바다와 바다 가운데 있는 무로도(죽도)와 해안가의 바위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만경대의 주변의 우수한 자연경관을 살필 수 있다.


            


  내가 청간정을 찾는 이유도 일찍이 선인들이 감탄했던 그 풍광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싶어서다. 바로 이런 감정이 나를 동해의 청간정으로 이끌어가는 ‘끌림’의 원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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