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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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반사우(詩伴四友)의 강릉 나들이, 옛 시인들의 자취를 따라가며 진한 감흥에 젖다 



시반사우(詩伴四友)의 강릉 나들이


옛 시인들의 자취를 따라가며 진한 감흥에 젖다


글과 사진 : 남상학




* 강릉 카페거리가 있는 안목항 해변에 설치한 커피 열매 조형물



  지난 10월 25일, 가을 햇볕이 따스한 날, 시반사우(詩伴四友)들이 강릉 나들이에 나섰다. 강릉에 머물고 있는 향산 유화웅(向山 劉和雄)의 초청으로 부암 이충섭(富岩 李忠燮), 성포 최복현(星浦 崔福鉉), 혜강 남상학(惠江 南相鶴) 세 사람이 11시 경 KTX를 타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본래는 10시에 출발하려 했으나 좌석이 없어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열차를 겨우 탈 수 있었다. 시 쓰는 사람들이 대체로 규모가 없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라 해도, 가을 한 철 성수기를 감안하여 미리 예약을 했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강릉 친구에게 한 시간 늦게 도착한다는 전화를 해놓고 차에서 보려고 신문을 사들고 열차에 올랐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열차 내부가 깨끗하고 무엇보다 좌석이 널찍하고 달릴 때의 소음이나 진동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떠났던 때의 몹시 덜컹거리던 열차와는 사뭇 달랐다. 신문의 큰 제목과 소제목을 일별(一瞥)하고, 관심이 가는 기사 몇 개를 읽으니 벌써 강릉역이다. 대강 두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향산(向山)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게 만나 인사하고 그의 승용차에 올랐다. 정오가 지났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許曄)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초당(草堂) 마을의 자랑거리 초당두부전골로 점심을 들고 해송이 우거진 길을 따라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항으로 이동하여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커피점 ‘coffee CUPPER’ 2층에선 널브러진 동해의 푸른 바다가 훤히 보였다.  



* 강릉 초당동에서 해변을 따라 카페거리까지 이어진 해송 숲



* 커피점 ‘coffee CUPPER’ 2층에서는 푸른 바다가 환히 보인다.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리는 동안 오세영 시인의 시 ‘바닷가에서’를 생각하며 짙푸른 동해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라도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 준 친구가 어찌 그리 고마웠던지.        

  그러고 나서 먼저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을 찾았다. 이 공원은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두 남매의 예술혼과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허난설헌 생가 터,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전통차 체험관 등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공원 안에는 ‘난설헌 시비’ 옆에 ‘허 씨 가족 5문장가’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허난설헌, 허균(許筠)의 집안은 아버지 허엽을 비롯하여 자녀 모두가 내로라하는 문장가 집안이었다. 그 중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1563~1589, 본명 초이)은 여덟 살부터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하여 당대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평가받았다.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에 있어 / 문 앞의 강물에 비단옷을 빨았어요./ 아침이면 한가롭게 목란 배 매놓고 / 짝지어 나는 원앙을 부럽게 바라봤지요.”(家住江陵積石磯 門前流水浣羅衣 朝來閑繫木蘭棹 貪看鴛鴦相伴飛)

  허난설헌은 강릉 땅 초당에 살면서 경포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탐승하며 시를 읊고 문학성을 키워 나갔다. 허난설헌의 <竹枝詞(죽지사)>는 강릉에서의 삶의 풍경을 아름답게 읊은 글이다.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은 열 살 무렵부터 천재로 일컬어졌고 유불선(儒佛仙)에 두루 통달한 학자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썼다. 그러나 불같은 의지로 현실을 뜯어 고치려던 개혁사상은 시대의 반역자요 이단자로 낙인 찍혀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그가 그토록 꿈꿨던 이상향(율도국)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절실한 것이 아닐까?







  다음 행선지는 강릉 경포대, 경포대는 주변의 경치가 운치가 있어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글을 남겼다. “비 개인 강 언덕에 가을 기운 가득하여라. / 한 척의 조각배 띄우고 자연의 정취 누리네. / 술병 속같이 들어간 호수에 어찌 티끌이 미치겠는가. / 하늘이 거울 속에 노니는 사람을 그려내기는 어려워라” (雨晴秋氣滿江城 來泛扁舟放野情 地入壺中塵不到 天遊鏡裏畵難城)

  이 시는 고려 시대 안축의 작품이다. 어디 이뿐인가? 경포호의 달밤에는 하늘과 바다, 호수와 술잔, 그리고 임의 눈동자 등 다섯 개의 달이 뜬다 하였다. 고려 말 강원도순찰사로 이곳에 머물렀던 박신(朴信)은 이 고장출신인 기생 홍장과 이 경포 호에 배를 띄우고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다 하지 않던가?  







  오래 머물 수 없는 우리 시반들은 발길을 돌려 선교장(船橋莊)으로 향했다. 이곳은 효령대군(태종의 둘째아들)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졌고, 10대에 이르도록 증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예전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라 명명되었다. 99칸의 사대부가 살았던 집이라 그런지 엄청난 규모였다. 호숫가에 지은 활내정, 사랑채인 열화당, 그 뒤로 우거진 노송이 감싸 안은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시 발길을 돌려 찾은 곳은 조선시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와 연관이 있는 오죽헌을 찾았다. 마침 율곡 이이(李珥)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제57회 대현율곡이선생제'가 있는 날이라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문성사) 앞에는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는 몽룡실, 사랑채, 어제각, 율곡기념관 등을 둘러보았다.

  경내의 검은 대숲(오죽), 해묵은 배롱나무, 붉게 물든 단풍이 완연한 정원을 돌아 나오며 나는 이 이가 어렸을 때 지은 시를 되뇌어 보았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어라. / 멀리 강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향해 붉구나. /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 강은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 울음소리 석양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이 시는 율곡 선생이 여덟 살 때 지은 것으로, 파주 임진강가 화석정에서 바라본 늦가을 풍경의 정취를 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송강 정철이 밟고 지나간 강릉 땅, 시반사우가 그 자취를 밟아본 시간은 너무 짧았다. 겨우 다섯 시간 남짓, 그나마 향산 유화웅 시백 덕분에 가능했던 일, 크게 보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삼교리동치미막국수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귀경했다. 아무리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열호(不亦樂乎)아”라지만 하루해를 우리와 벗 해준 우리의 영원한 시벗 향산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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