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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박인환(朴寅煥)의 시세계 
<시인 박인환>

박인환(朴寅煥)의 시세계(詩世界)




■연보

1926 강원도 인제 출생
1944 황해도 재령 명신중학교 졸업. 관립 평양의학전문학교 3년제 입학
1945 광복 후 학교를 중단하고 상경. 종로 3가 2번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서사를 개업
1946 12월,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데뷔
1948 입춘을 전후하여 마리서사를 폐업. 김 경린, 양 병식, 김 수영, 임 호권, 김 병욱 등과동인지 <신시론> 제1집을 발간. 자유신문사에 입사
1949 김 경린, 김 수영, 임 호권, 양 병식 등과 5인 합동시집 {새로운 都市와 市民들의 合唱} 발간. 경향신문사에 입사. 동인 그룹 <후반기> 발족
1951 경향신문사 본사가 있는 부산과 대구를 왕래 종군 기자로 활동
1952 경향신문사를 그만두고 대한해운공사에 취직
1953 환도 직전. 부산에서 <후반기>의 해산이 결정됨
1955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으로 미국을 여행. 귀국 후 <조선일보>에 [19일간의 아메리카]를 기고. 대한해운공사 퇴사. {박인환 선시집} 간행
1956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사망
1986 시집 {木馬와 淑女} 간행

  강원도 인제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 중퇴(1945).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면서 등단. 1959년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기수로 각광을 받았다. 1940년대의 모더니스트로 알려진 이들의 모더니즘 운동은 김기림이 제창한 반자연(反自然), 반서정(反抒情)의 기치에 1940년대 후반의 시대고(苦)가 덧붙여진 것으로 확대되었다. 『후반기』 동인으로 모더니즘 운동을 계속하면서도 도시적인 동시에 인생파적인 비애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기타 동인의 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집으로는 『박인환선시집』(산호장, 1955), 『목마와 숙녀』(근역서재, 1982)

             박인환의 시세계에 대하여

                                     - 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 )

  한국의 근대 시사 가운데서 1945년의 해방으로부터 1960년의 4.19에까지 이르는 시기의 시는 가장 덜 알려지고, 가장 덜 논의된 부분에 속한다. 그 이전의 시, 즉 20년대에 나온 시나 30년대에 나온 시들은 학계와 비평계 양쪽에서 거듭거듭 다루어졌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모은 앤솔러지도 심심찮게 발간되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시인들은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나 일반 독자들에게나 똑같이 친숙한 존재가 되어 있다. 그리고 4.19 이후의 시들 역시, 전문적인 연구자들에게나 일반 독자들에게나 똑같이 친숙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20년대 혹은 30년대의 시와 다를 바 없다. 이 시기의 시들은 아직 학술적인 연구의 대상으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지만, 비평계의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아왔다는 점, 그리고 신작시집이나 시선집의 형태로 일반 독자들에게 거듭거듭 소개되어왔다는 점으로 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친숙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해방에서 4.19에까지 이르는 시기의 시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 해방 이전에 이미 등단했던 시인들과 김수영, 김 춘수, 신 동엽 등 몇몇 <스타 시인>의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이 시기의 시들은 전문적인 연구자들에 의해서나 일반 대중에 의해서나 거의 외면되어 오다시피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 결과 이 시기의 많은 시와 시인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객관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풍문들만이 막연하게 흘러 다니는 사태가 빚어지게 되었다.

  왜 이 모양이 되고 말았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해방에서 4.19에 이르는 시기 자체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모호한 위치에 놓인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보수적인 학계의 시각에서 보면, 이 시기는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너무 가깝기 때문에 학술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그런가 하면, 비평계나 일반 독자층의 시각으로 볼 때는, 이 시기는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너무 멀기 때문에 동시대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또 너무 멀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 이 시대의 시는 놓여 있는 셈이다.

  둘째, 해방 이전에 이미 등단했던 시인들이나 해방 이후에 등단했다 하더라도 예외적인 위치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던 몇몇 시인들(여기에는 앞서 이름을 들었던 김 수영, 김 춘수, 신 동엽뿐 아니라 그 밖에도 몇 명이 더 추가되어야 마땅하다)의 경우를 제외하고 보면, 이 시기에 나온 시작품들은 오늘날의 전문적 연구자나 일반 독자를 끌어당길 만한 매력을 결여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물론 하필 그 시대에 재주 없는 사람들이 시단으로 많이 몰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 활동한 시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어로 교육을 받고 자라난 까닭에 우리말을 다루는 데는 지극히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성년의 문턱으로 접어들거나 청년기를 끝내갈 무렵에 4.19의 대지진을 만나 심각한 혼란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바로 진정한 이유인 것이다.

  셋째, 아무리 위에서 말한 시기상의 모호성과 이 시대 시 자체의 매력 없음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역시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는 또 한 가지 원인으로서, 우리 시대 비평가들의 지나친 편식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지금까지 언급한 두 가지 이유란 학계와 일반 독자층을 위한 변명으로는 성립이 가능한 것이지만 비평계를 위한 변명으로는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동시대적인 관심을 촉발하지 않더라도, 또 별다른 매력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일단은 성실하게, 폭넓게 읽고서 올바른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것이 비평가의 직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시기에 활동한 시인들 중 해방 전에 등단한 사람들과 김 수영, 김 춘수, 신 동엽 등 소수만을 주목하고 나머지는 내몰라라 방치해온 대다수 비평가들의 자세는 결코 정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는 해방에서부터 4.19까지에 이르는 시기의 우리 시가 다른 시기의 우리 시에 비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밖에 모아오지 못했으며, 그 결과 별다른 객관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풍문들만이 막연하게 부유하는 사태가 현출되었음을 말하고 그렇게 된 이유를 내 나름대로 분석해본 셈이거니와, 박 인환(1926-56)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예증해주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그와 같은 판단이 가능하다.

  첫째, 박 인환이 시작 활동을 전개한 시기는 [거리]라는 작품을 {국제신보}에 발표하여 데뷔한 1946년 12월부터 [죽은 아포롱]을 발표한 1956년 3월까지에 걸쳐 있으며, [죽은 아포롱]이 발표된 지 3일 후에는 그 자신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거니와, 이로써 볼 때 그의 시적 생애 전체가 해방에서 4.19까지에 이르는 시기 안에 포함됨을 알 수 있다.즉, 그는 이 시기를 떠나서는 전혀 논의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둘째, 그의 시세계에 대한 본격적 접근이 지금껏 전혀 행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특히 일관된 프로그램에 근거하여 다수의 시인론을 기획, 청탁, 수록한 논문집 혹은 평론집이 만들어지는 바람에 덩달아 언급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 순전히 그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자발적 관심에 기초하여 논문이나 평론이 씌어진 경우는 극히 희소하다.

  셋째, 그의 시세계에 대한 본격적 접근이 이처럼 희소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에 대한 가십 차원의 풍문은 대단히 풍부하고 또 화려한 편이다. 박 인환은 아마 이 점에 있어서는 1950년대의 많은 시인들 가운데서도 1.2위를 다투는 존재일 것이다. 마리서사 시절의 낭만과 관련된 풍문들, 후반기 동인회를 둘러싼 얘기들, 환도 후 감상적 실존주의와 폐허의식의 물결에 휩싸인 명동을 누비고 다닌 이른바 명동백작 시절의 에피소드들, 박 인환이 시를 쓰고 이진섭이 곡을 붙인 작품 [세월이 가면]에 얽힌 얘기들, 영화광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얘기들, 그리고 그의 불행한 요절에 관련된 얘기들, 이런 풍문 차원의 얘기들이 그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정작 그의 시작품 자체는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인 것이다.

  넷째, 그가 남긴 시작품들 가운데 대부분에는 오늘날의 전문적 연구자나 일반 독자를 끌어당길 만한 매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여기서 내가 <전부>라 하지 않고 <대부분>이라한 것은, 예컨대 [木馬와 淑女] 같은 예외적 존재가 있음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木馬와 淑女]는 전문적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작품이지만, 일반 독자들로부터는 의심할 바 없이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존재이다. [木馬와 淑女]나 이진섭에 의해 작곡되어 널리 불리고 있는 [세월이 가면] 정도를 제외하면, 박 인환의 시 가운데서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다섯째, 박 인환이 이처럼 상당히 한정된 수준의 성과밖에 남기지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일부로서 우리는 그가 일본어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에 속하며 또한 청년기에 4.19를 겪고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가 일본어로 교육받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가 살아 있는 우리말을 다루는 데 서툴렀다는 사실과 직결되는데, 이것은 사실 시인으로서는 커다란 불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가 청년기에 4.19를 겪고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은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가 세계를 침착하게,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애쓰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고 추상적인 울분과 센티멘털리즘으로 시종했다는 사실과 직결되는데, 이것 역시 시인으로서는 커다란 불행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에서 정리한 다섯 가지 항목을 잘 음미해보면, 박 인환이야말로 해방에서 4.19까지의 시기에 이루어진 우리 시의 전개과정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전형성에 도달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으리라. 물론 앞으로 이 시기의 우리 시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꾸준히 이루어질 경우, 어쩌면 이 시기의 우리 시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며, 그때에는 지금 내가 박인환에게 붙인 전형성의 패찰을 도로 떼어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결론이 가능한 것이다.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시선집, 산호장, 1955>

▶ 6·25 직후의 상실감(喪失感)과 허무주의를 짙게 띤 작품. 모든 것이 부서지고 퇴색하며 떠나가는 데 대한 절망감과 애상(哀傷)이 작품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박인환은 김수영, 김경린, 조향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 의식을 중시하고 전위적 기법을 실험하며 문명 비판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는 지적(知的)인 요소와 서구적 기풍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 박인환은 가장 주정적(主情的)인 기질을 가진 인물로서 비애,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했고, 흔히 감상주의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기질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lf, 1882∼1914)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로서 의식의 흐름에 중점을 둔 내면 묘사의 소설을 주로 썼는데 세계 제2차 대전기의 허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한 인물이다. 이러한 비극적 생애의 인물을 비롯하여 목마, 보이지 않는 별, 늙어 버리는 소녀,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등대, 술병, 상심, 작별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는 `퇴색하고 부서지며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비탄(悲嘆)의 노래'가 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다는 구절은 이러한 절망감 속에서 나오는 쓰라린 독백이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생이 실제로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황량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딘가에 호소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역설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마침내 작품은 `내 쓰러진 술병'으로 끝을 맺는데, 이 마지막 행은 삶의 의미에 대한 그의 비관적 태도가 집약된 귀착점이라 하겠다. [해설: 김흥규]

   김수영, 김경린 등과 함께 5인 공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한 박인환은 30년대의 김기림, 김광균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을 계승한 50년대 후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시인이다. 후기 모더니즘은 김수영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이념적 중심이나 이론 체계가 없어 30년대 모더니즘의 발전적 계승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50년대라는 전후(戰後)의 황폐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록파적 경향에 반발하여 전통적 서정 세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모색을 꾀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시는 시어나 시구가 지니는 각각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그것들의 의미 상황을 추적하면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데, 그것은 초현실주의적 방법인 우연성에 의한 시어의 자유 분방한 표현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인환의 이러한 언어 감각이 이 작품을 '분위기'로 느끼게 하는 주된 요인이며, 허무적이고 감상적인 정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후문학은 6·25의 비극적 체험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 가치의 전도(顚倒)와 혼란, 문명화, 도시화에 따른 비인간화 현상의 심화 등으로 인해 개인주의적, 감상적, 허무적 경향을 띠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 나타난 허무 의식과 센티멘탈리즘 역시 전후의 정신적 황폐함과 불안 의식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哀想)을 노래하고 있다. 1행에서 11행까지 계속 '떠났다'·'떨어진다'·'부서진다'·'죽고'·'버릴 때'·'보이지 않는다'가 연속되는 것에서 시적 자아가 마주 선 허무와 절망을 읽을 수 있다. '목마'는 내면 세계를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으로 철저히 추구한 영국 여류 소설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와 불안과 절망의 시대적 슬픔을 표상하는 것이며, '숙녀'는 바로 '버지니아 울프'를 가리킨다.

  12행부터 25행까지 서정적 자아는 작별해야 한다는 등 무엇을 '해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단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절망적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 가깝다. 26행에서 끝 행까지는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임으로써 체념적 상황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지만, 그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애상적 태도를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절망적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 안주함으로써 삶의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허무주의자의 나약한 모습일 뿐이다.

  '정원 옆에서 자라던 소녀'에서 '목마를 탄 숙녀'로, 다시 '늙은 여류 작가'로 변모하면서 허무와 불안 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템즈강'에 투신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의 비극적 생애처럼 인생 항로의 좌표를 잃고 살아가던 박인환은 '상심(傷心)한 별'과 '불이 보이지 않는 등대'와 같은 절망과 비애 속에서 '한 잔의 술을 마시며' 고통을 극복하려 했지만, 결국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비극적 정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애를 통해 문학과 술을 벗하며 끈기있게 현대 문명의 위기와 불안 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높은 지성으로 노래한 그는 '우수(憂愁)의 시인'으로 불리우며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 <목마와 숙녀>와 함께 박인환의 대표적 작품으로, 샹송 스타일의 곡을 붙여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낭만적 시의 정수라 할 만하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인환이 불안한 시대 의식과 위기감,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한 잔의 술과 이 같은 낭만적 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우수 어린 시인으로 만든 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감상적 성품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운명일 것이며, 그에게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는 커다란 정신적 위안제가 되었을 것이다.

  3년간이나 계속된 전쟁 속에서 도시는 온통 폐허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철저하게 상호 무관심한 개인 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황폐한 분위기에서 시인은 따스한 인간애에 목이 말랐을 것이고, 세월에 따라 흘러간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며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던 '유리창 밖 가로등 / 그늘의 밤'과 '여름날의 호숫가'와 '가을의 공원 / 벤취'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 수록 더욱 황폐해 가는 전후(戰後) 도시적 분위기에서 그의 가슴은 점점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람 이름이 잊혀지고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눈동자와 입술은 언제나 서늘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애뜻한 이 사랑 노래는, 영원히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감동과 가을비 같은 촉촉한 서정성을 전해 주며 길이 남아 있기에 충분할 것이다.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학교공부는 뒷전...영화.문학 심취'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출생했다.
부친 박광선(朴光善)은 중등교육을 마친 사람으로 면사무소에 다니고 있었는데,토지도 어느 정도 소유한 시골 살림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인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박인환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여,부친은 아들 교육을 위해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서울로 생활터전을 옮기며 산판업을 시작한다. 가족들이 인제에서 서울 종로구 원서동 언덕배기로 이사를 하고,그는 덕수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편입한다.

  박인환은 경기공립중학교로 진학하는데,이 무렵 영화와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어공부 대신에 일어로 번역된 세계문학전집과 일본 상징파시인들의 시집을 열독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결국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중학을 중퇴한 그는한성학교 야간부를 거쳐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한다. 부친의 강요로 3년제 관립학교인 평양의전에 진학하지만,해방이 되자마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내려온다.

  "사실 안된 말이지만 나는 아들이 죽기 전까지 문학을 하는지 뭘 하는지 몰랐다. 나는 그 애가 의사나 교사 같은 직업을 갖기를 바랬고,강요하기도 했다. 1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평양의전에 들어간 것도 내 강권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명이 짧아 애석하더니 세월이 약이다. 자식이지만 청렴하고 의리가 있었던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박광선은 살아 있을 때 아들의 이른 죽음을 몹시도 애석해 했다.


'댄디 보이' 시인 박인환

  박인환은 통속적인 것을 혐오하고,원고 쓸 때는 구두점 하나에도 신경질적으로 까다롭게 굴고,싫어하는 사람과는 차도 한 잔 함께 마시지 않는 결벽증을 드러냈다.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가 금주를 선언하자 그를 찾아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사람은 선배 자격이 없다며 앞으로는 "선생"자를 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번은 수도극장(뒷날 스카라 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그레엄 그린 원작의 "제3의 사나이"라는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문단 선후배들이 모여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던 도중에 박인환이 벌떡 일어나 선배 평론가 백철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백철 씨 저걸 알아야 돼.저걸 모르고 무슨 평론을 한단 말이오!" 그것은그야말로 느닷없는 일갈이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백철이 박인환에게 또 당했군!"하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이미 문단에서 대가로 대접받고 있던 백철로서는 난데없는 봉변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 나고 환도할 때까지 박인환은 대구 부산 등지에서 피난생활을 하며,경향신문사의 사회부 기자로 활동한다. 그는 다소 경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재기 넘치는 사람이고,사람을 끄는 특별한친화력 같은 것이 있어 주변엔 문인뿐만 아니라 각계의 친구들이 많았다.  그의 친구들 중에 그보다 십여 년 연장자들이 많은데,이는 그가 자신의 실제 나이를 숨기고 사,오세 많게 부풀린 탓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박인환의 정확한 나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다가 돌아오면 암울한 시대를 증언하는 시들을 써내려 갔다. 박인환은 그렇게 "검은 준열(峻烈)의 시대"를 가로질러 갔던 것이다.

  그는 시를 쓰고,영화평론을 쓰고,경향신문과 평화신문 등에서 사회부,문화부기자 노릇을 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는 수중엔 돈도 없고,집엔 쌀도 없는 가난한 시인이었다. 그것들은 "생활적인 직업(職業)"이 못되었던 것이다.

  1955년 그는 대한해운공사(大韓海運公社)에 취직을 하더니 "아무 계획(計劃)도기대(期待)도 없이" 남해호(南海號)라는 외항선을 타고 외국으로 나갔다. 석달 뒤에 귀환한 그는 "아메리카 시초(詩抄)"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생애 동안 가장 사랑했던 것 중의 하나가 책이다. "그는 보기 드문 애서가(愛書家)였다.

  양으로는 대단치 않았으나 책을 다루는 폼이 이만저만한 애서가가 아니었다. 이 회고담이 실릴 "현대문학"만 하더라도 손때가 묻지 않도록 유산지나 셀로판지에 씌워 가지고 다녔다고 나중에 장만영은 회고했다.

  당시 한국일보에 다니던 시인 김규동의 사무실에 가끔 나타나 "오석천(吳昔泉)선생을 만나야 한다"고 우물쭈물 앉아 있다가 김규동이 자리를 비우면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경제나 정치서적까지 슬쩍 집어들고 가기도 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목마와 숙녀"는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박인환의 대표작이다. 그는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인 인생의 무엇을 끝까지 응시하려고 했던 것일까.

  전화(戰禍)의 황량한 명동 거리를 누비며 거침없는 언설과 재치를 뽐내며 시대를 가로질러 가던 시인 박인환은 1956년 3월 20일 밤 9시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명동의 "경상도집"에서 송지영 김광주 이봉구 등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며 "세월이 가면"을 써낸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이상(李箱)을 유난히 좋아한 그는 이상의 기일(忌日)인 3월 17일 오후부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상을 추모하며 폭음을 한다(이상이 실제로 죽은 것은 1937년 4월 17일이다).박인환의 기억의 착오였다.

  그 날 박인환은 옆자리에 있던 이진섭에게 "인생은 소모품.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라고 메모한 것을 주었다. "누가 알아? 이걸로 절필을 하게 될지..." 무슨 예감이라도 있었던지 박인환은씩 웃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밤 9시에 만취상태로 세종로의 집에 돌아온 그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답답해! 답답해!"를 연발했다. 그러다가 자정 무렵 "생명수를 달라!"는 부르짖음을 마지막 말로 남기고 눈을감았다. 갑작스런 심장마비였다. 그의 나이 불과 삼십세였다.

  그의 갑작스런 부음에 놀라 21일 새벽 그의 집으로 모여든 친구들은 차디찬방에 꼿꼿이 누워 천장을 향해 눈을 치뜨고 있는 그의 시신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 치뜬 눈을 감겨 준 것은 송지영이다.

  또 다른 친구가 그의 시신에 조니 워커를 따라주었다. 그의 시신이 시인장으로 망우리에 묻힐 때 지인들은 그가 좋아했던 조니 워커와카멜 담배를 함께 묻었다.

헌 책방 '마리서사'

  해방을 맞아 평양의학전문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돌아온 박인환은 부친과 이모로부터 차입한 돈 5만원으로 뒷날 월북한 시인 오장환(吳章煥)이 낙원동에서경영하던 스무평 남짓한 서점을 인수한다.

  얼마 뒤 초현실주의 화가 박일영(朴一英)의 도움으로 간판을 새로 달고 다시 문을 여는데,이것이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했던 헌 책방 마리서사(茉莉書肆)이다.

  서점 이름은 일본 현대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船衛)의 시집 "군함 마리(軍艦茉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을땄다는 설로 나뉘어져 있다.  어느 게 정확한 것인지 확인은 불가능하다.

"마리서사"의 서가에 진열된 책들 대부분은 박인환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인데,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을 위한 전문 서점이었다. 앙드레 브르통,폴 엘뤼아르,마리 로랑생,장 콕토와 같은 외국 현대시인들의 시집,"오르페온"
"판테온""신영토""황지"와 같은 일본의 유명한 시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리서사"에는 하루도 시인이나 소설가,화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김광균(金光均) 이봉구 김기림(金起林) 오장환 장만영(張萬榮) 정지용(鄭芝溶)김광주 등 시인 소설가들,"신시론(新詩論)"동인 김수영(金洙暎) 양병식(梁秉植) 김병욱(金秉旭) 김경린(金璟麟)등,조향 이봉래 등의 "후반기"동인들,화가 최재덕 길영주 등이 "마리서사"의 단골손님이었다.

  특히 김수영은 박인환과 동년배로 동인활동을 함께 하며 "새로운 도시(都市)와 시민(市民)들의 합창(合唱)"이라는 앤솔로지를 내기도 하는 등 두터운 교분을 가졌다. 그러나 나중에 둘 사이는 소원해졌다.

  김수영은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박인환의 취향을 경박하며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몰아부치며 경멸하고,박인환은 또 그대로 김수영이 세속적인 눈치만 보는속물이라고 비난했다.

                                           <장석주 / 시인.문학평론가 >

[문학이 머문 풍경] 시인 박인환의 고향 ‘인제’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중략)…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는 하늘에 있고/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가을 바람 소리는/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

  펑펑 눈이라도 내리는 겨울날, 찻집에 앉아 애잔한 음악과 함께 낭송되던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는 대학가 감상적 낭만의 대명사였다.20∼30년전까지만 해도 찻집마다 단골메뉴로 들려주던 ‘목마와 숙녀’는 그렇게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한국전쟁이 가져다 준 허무와 절망, 시대적 불안과 애상을 노래한 전후의 대표적 모더니즘 작품인 ‘목마와 숙녀’는 애절한 한국인의 한(恨)풀이이기도 했다.

  전쟁의 상처를 보듬은 31세 요절 시인 박인환(朴寅煥)은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슬픔을 인간의 비극으로 승화시켜 상처받은 시대적 감성을 달래주었다. 젊은 나이로 요절한 시인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세월이 흐를수록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지금도 애송되고 있다.

  박인환 시인은 1926년 8월15일 강원도 인제군 상동리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했다. 이후 서울로 유학해 서점을 경영하며 모더니즘 시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서점을 통해 문단의 주요인사와 교분을 넓혔고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상실과 자조의 풍조가 지배적이었던 당대의 시풍을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등으로 담아내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한때 외항선을 타기도 했던 박인환 시인은 당대 문인들 가운데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입고 다닌 양복은 외국 고급천에 일류 양복점의 라벨이 붙어 있을만큼 지나칠 정도로 정장과 외투를 선호했다는 후일담이다.

  시 쓰기에 몰두하던 박인환은 공교롭게도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 추모의 밤 행사때 술을 마시고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친구들은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에 그가 평소에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 마음껏 먹지 못한 조니워커를 쏟아 부어주며 그의 시 ‘목마와 숙녀’처럼 살다간 시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전략)/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후략)”

  그는 해방후 혼란의 소용돌이와 6·25 전란의 황폐 가운데서 70여편의 시를 남겨 한국현대시의 맹아를 키워 냈으며, 모더니즘 시인으로서 현대시의 토착화에 기여하였고 문학사에 큰획을 그어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인환 시인 시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수십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 시인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88년 남북리 아미산공원에 시비를 건립했다가 이후 도로공사로 현재의 합강정 소공원에 이전·건립했다.

  해마다 10월이면 시인의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박인환 문학제’도 열린다. 문학제는 추모 백일장과 문학상 시상식, 시낭송대회, 문인초청 세미나, 동화구연대회 등 다채롭게 개최된다.

  인제군 문화재 담당 윤형준씨는 “생가터 복원을 위한 자료조사를 마치고 산촌박물관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2006년까지 생가터에 15억원을 들여 상징물과 동상, 시비 이전사업을 펼쳐 문학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후략).”

  시인이 남긴 시 가운데 ‘세월이 가면’도 지금까지 세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애송되고 있다.

                                            - 인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서울신문] 2004-12-16



얼굴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행복

노인은 육지에서 살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시들은 풀잎에 앉아
손금도 보았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정사한 여자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을 때
비둘기는 지붕 위에서 훨훨 날았다.

노인은 한숨도 쉬지 않고
더욱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성서를 외우고 불을 끈다.

그는 행복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잠드는 것이다.
노인은 꿈을 꾼다.

여러 친구와 술을 나누고
그들이 죽음의 길을 바라보던 전날을.
노인은 입술에 미소를 띠우고
쓰디쓴 감정을 억제할 수가 있다.

그는 지금의 어떠한 순간도
증오할 수가 없었다.

노인은 죽음을 원하기 전에
옛날이 더욱 영원한 것처럼 생각되며

자기와 가까이 있는 것이
멀어져 가는 것을
분간할 수가 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나는 언제나 샘물처럼 흐르는
그러한 인생의 복판에 서서
전쟁이나 금전이나 나를 괴롭히는 물상(物象)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한줄기 소낙비는 나의 얼굴을 적신다.

진정코 내가 바라던 하늘과 그 계절은
푸르고 맑은 내 가슴을 눈물로 스치고
한때 청춘과 바꾼 반항도
이젠 서적처럼 불타버렸다.

가고 오는 그러한 제상(諸相)과 평범 속에서
술과 어지러움을 한(恨)하는 나는
어느 해 여름처럼 공포에 시달려
지금은 하염없이 죽는다.

사라진 일체의 나의 애욕아
지금 형태도 없이 정신을 잃고
이 쓸쓸한 들판
아니 이즈러진 길목 처마 끝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들
우리들 또다시 살아 나갈 것인가.

정막처럼 잔잔한
그러한 인생의 복판에 서서
여러 남녀와 군인과 또는 학생과
이처럼 쇠퇴한 철없는 시인이
불안이다 또는 황폐롭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한들
광막한 나와 그대들의 기나긴 종말의 노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노라.



오 난해한 세계

복잡한 생활 속에서
이처럼 알기 쉬운 몇 줄의 시와
말라 버린 나의 쓰디쓴 기억을 위하여
전쟁이나 사나운 애정을 잊고
넓고도 간혹 좁은 인간의 단상에 서서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서로 만난 것을 탓할 것인가
우리는 서로 헤어질 것을 원할 것인가.


검은 강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의 노정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 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폭음과 초연이 가득 찬
생과 사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정막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성채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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