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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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1세기, 다시 읽는 이상]<1>소설같은 시, 시같은 수필, 李箱의 이상(理想)은 무엇이었나 
                      
                      
                                    [21세기, 다시 읽는 이상]

                             <1>혼종, 경계를 넘나들다


           소설같은 시, 시같은 수필, 李箱의 理想은 무엇이었나




                                        김승희 시인·서강대 교수


                          
                        *  1920년대 말 경성고교 재학 당시 교내 화실에서의 이상 * 
                                        

                                   시인-소설가 - 수필가 - 화가…
                            혼종성 텍스트, 지금까지 충격
                            시대 아픔 온몸으로 느꼈지만
                            초 현실주의 등 시대 앞서가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이상은 원래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시인이 된 이후에도 유화를 비롯해 삽화, 표지디자인 등을 계속했으며 시 속에 회화적인 측면을 반영시키기도 했다.

  《올해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1910. 9. 23∼1937. 4. 17)의 탄생 100주년이다. 과학 기하학 숫자와 기호를 끌어들였던 전위적인 문학, 문인인 동시에 미술가 건축가로 경계를 넘나들었던 혼종적인 면모, 근대기 자본주의 도시풍경을 온몸으로 체득하며 살았던 낭만적 자유주의자. 근대를 살았지만 탈근대를 지향한 이상은 시공의 경계가 허물어진 21세기에도 여전히 문제적이다. 이상을 새롭게 읽어내는 ‘21세기, 다시 읽는 이상’을 5회 연재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천재 시인 이상의 유명한 소설 ‘날개’의 첫 구절이다. 독자들이 가진 시인 이상에 대한 기괴한 이미지는 대개 이 ‘날개’의 첫 장면에서 유래한 것이다. 절망뿐인 암울한 식민지 시대, 경성 모더니즘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모던 뽀이’ 이상, 동굴 같은 방, 창백한 얼굴, 봉두난발의 머리, 장대같이 뻗친 수염, ‘꿋바이’라고 외치는 유서를 닮은 음색, 난수표같이 난해한 시, 폐결핵과 각혈, 보헤미안 넥타이, 파이프 담배, 황색의 멜랑콜리가 흘러넘치는 이상하게도 노랑이 범벅된 노랑퉁이 자화상, 현란하게 매혹적인 위트와 패러독스, 자유연애와 더불어 살다가 아무렇게나 살고 떠날 것 같은 표표한 다다이스트의 포즈…. 이것이 시인 이상이 남긴 그의 개인 신화다. 이상만큼 개인 신화에 매몰된 시인도 드물고 이상만큼 스캔들로 치장된 작가도 드물다.

  이상 탄생 100주년. 시간이 흘렀고 시대가 변했지만 이상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상’이고 이상은 여전히 ‘오늘의 문학’이다. 이제 그 개인 신화와 스캔들로 가득 찬 ‘모던 뽀이’의 미망을 걷고 그가 한국 문학과 한국 문화에 남긴 상처 같은 이슈들을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 이상은 과연 예술지상파 구본웅 등과 함께 흰 양복에 백단화에 스틱을 휘두르며 경성 뒷골목을 뚫던 모더니스트 이상이기만 할까.

  그는 누구보다도 시대를 앞선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입체파, 미래파 등 근대성의 총아였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근대의 고뇌를, 근대의 슬픔을, 근대의 우울증을 앓았던 근대성의 환자이기도 했다. 맏아들로서 가난한 부모님께 생활비를 충분히 못 드리는 괴로움에 고통 받고, 정조가 의심되는 신여성 아내의 비밀에 괴로워하던 19세기적 이상의 모습도 작품 속에 엄연히 드러난다. “나는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이라고 자신 속에 남아 있는 19세기적인 것과 근대 사이의 갈등에 괴로워하던 그였다.

  이상은 이렇게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잡종적 면모를 보여준다.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이자 화가, 삽화가이자 미술평론가였다. 요즘 말로 하면 ‘하이브리드 예술가’이자 언제나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지적 노마드’였다. 그는 소설을 시처럼, 수필을 시처럼, 시를 의료 진단서처럼 썼고, 시에 그림을, 기하학적 도형을, 숫자판을, 인쇄기호 등을 도입해 타이포그래피 등을 실험했다.

  이상의 예술이 난해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언어와 회화, 언어와 기하학, 언어와 물리학, 언어와 숫자, 고유어와 외래어 등이 혼합된 잡종성의 하이브리드 텍스트를 만들었고 그 결과로 새로운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혼합의 텍스트가 당대 독자들은 물론이고 21세기 독자들에게도 미적 충격을 주는 것이다.

  문학은 하나의 개인적 카르테(진료기록)요, 그러면서도 사회역사적 카르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상은 그 시대 최고의 지적 노마드, 야수적 자본주의의 비판자, 공적 근대성과 식민지 교육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청년 백수, 시대의 조롱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실업과 적빈의 아픈 상징으로 오늘날 우리의 문제 속에 홀연히 나타난다. 오늘도 현대의 진단서를 쓰고 있는 ‘살아 있는 이상’이다.

  시인 이상, 아니 김해경은 그런 개인 신화를 남겼다. 망국과 더불어 태어난 그의 본명은 바다같이 큰 벼슬을 하라는 뜻으로 ‘해경(海卿)’으로 지어졌다. 세 살 먹어 친부모 슬하를 떠나 백부 김연필의 집에 양자로 가게 된다. 백부의 집에서 그는 조부와 조모, 백부와 백모 슬하에서 살게 되었는데 소년기에 조부가 사망한 후 조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백부의 보호 아래 성장하게 됐다. ‘너무 많은 아버지와 너무 많은 나’는 이상 문학의 주요 모티프다. 유교적 아버지들의 장손에 대한 너무 많은 꿈이 어린 해경에게 질식감을 주었다. 그러한 가부장적 억압을 완화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상상계적 타자, 즉 모성적 존재가 적었다. 이게 이상 분열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아버지가나의겨테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작고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웨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웨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시 ‘오감도·烏瞰圖 시제 2호’)


  이렇게나 많은 아버지의 사랑의 억압 속에서 조상과의 동일시는 근대성에 막 눈뜬 어린 영혼에 많은 중압과 상처를 준다. 이 어조의 아이러니에서 우리는 근대적 자아, 주체적 자아의 목소리를 읽을 수가 있다. 이 문장에서 띄어쓰기가 없는 것은 가부장적 혈통주의 안에서 아들이라는 피의 사슬이 하나라도 끊어지면 큰일 나는 혈육의 지속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보여준다. 어쨌든 조부, 조모, 백부, (새)백모, 친부, 친모로 이루어진 유교적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얼굴이 유난히 희고 머리가 비범하고 잘생긴 미소년은 성장한다.

  보성고보에 진학한 이상은 교내 미술 전람회에서 ‘풍경’이란 유화로 우등상을 받았다. 이어 경성고등공업학교(현 서울대 공대) 건축과에 진학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당시 사진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경성고공에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던 듯하다.

  그는 이상이란 이름으로 변성명(變姓名)한다. 경성고공의 졸업 앨범(1929년)에 이미 이상이라는 서명이 나온 것으로 보아 변성명 행위는 자신의 선택이었다. 이상은 여러 작품 속에서 자신의 필명을 가지고 언어유희를 벌이고 있는데 ‘이상(理想), 이상(異狀), 이상(異常), 이상(異相), 이상(異象), 이상(以上)’ 등의 동음이의어로 기표들의 유희를 보여준다. 즉 이름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인간 본질과 상관이 없고 인간 주체란 상대적인 우연의 조합일 뿐 결국 본질은 없다는 포스트모던적 행위라고나 할까.


                

                                                        - 김승희 시인·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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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디자인-건축… ‘영감의 원천’
              분야 따로 없는 연구대상, 연극-영화 소재로도 부각



                                     
                                 * 이상의 시를 모티브로 삼았던 유상욱 감독의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9년)의 포스터.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시대를 앞서간 전방위 예술가, 경성을 누비던 모던보이, 불행하게 요절한 천재 시인….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복잡다단한 삶과 문학은 한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짧은 삶은 현재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나 창작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

  문인뿐 아니라 미술가, 건축가로서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연구도 문학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져왔다. 한글 디자이너인 안상수 홍익대 미대 교수는 숫자, 기하학, 도형 등을 끌어들였던 이상의 문학을 바탕으로 ‘타이포그라피적 관점에서 본 이상 시에 대한 연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했다. 목원대 김정동 교수는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로 근무했던 이상의 건축가로서의 면모를 연구했다.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김윤식 권영민 씨, 시인 고은 이승훈 김승희 씨 등 여러 문인들은 이상의 일생과 문학을 연구한 평전과 전집 등을 출간했다.

  무엇보다 이상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스캔들과 기괴한 이미지를 가진 암호 같은 텍스트들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이 되고 있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이상의 유실된 데드마스크와 가상의 시를 토대로 장편소설 ‘굳빠이, 이상’을 썼다. 소설가 장용민 씨가 이상의 시를 모티브로 썼던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은 유상욱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이상의 시에 얽힌 살인 사건을 추적하면서 일제의 음모를 밝혀가는 과정을 그려낸 미스터리물이다.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는 이상의 연인이었던 금홍과의 스캔들에 초점을 맞춘 영화.

  연극으로는 ‘날개’ ‘오감도’ 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리 브루어 씨 연출의 실험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 ‘날개’를 중심으로 그의 내면세계와 사랑을 그려낸 채윤일 씨 연출의 ‘이상의 날개’ 등이 공연됐다.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이상문학상’(문학사상사 주관)도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올해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조명하는 다양한 학술대회와 심포지엄, 문학그림전 등이 열릴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출처> 2010. 4, 1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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