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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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1세기, 다시 읽는 이상]<4> 분열, 자아의 불안을 응시하다 
                                      
                                         [21세기, 다시 읽는 이상]<4>

                        분열, 자아의 불안을 응시하다


                  '거울 속 나’에서 벗어나듯 ‘김해경’을 벗다



  《누이 김옥희의 증언에 따르면 학창시절 해경은 유난히 거울을 좋아하여 방에 엎드려 무엇을 쓰고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을 그리곤 했다. ‘거울’은 이상 문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물이자 나르시시즘의 표상이고 자아분열의 도구였고 이상은 ‘거울 애호자’이자 ‘거울 공포자’이기도 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시 ‘거울’ 중)》



                        악수할 수 없는 ‘두 개의 나’, 詩 ‘오감도’ 등서 그려내


  시인은 이렇게 거울의 깨끗하고 조용한 매끄러운 세계에 매혹된다. 거울은 나르키소스의 호수처럼 아름다운 나르시시즘의 매혹적 도구이다. 세상에 거울만, 거울 같은 반영적 존재(어머니)만 나를 에워싸고 있다면 유아적 나르시시즘의 충만, 오인(誤認) 속에서 행복한 착각을 이루고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시인은 거울 속의 나는 실제의 나와는 다른 왼손잡이이며,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전도(顚倒)된 영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거울 속의 나’가 나의 이상적 자아이자 나르시시즘적 자아라면 그 두 개의 나는 그렇게 불일치하며 분열적이며 불화하는 존재이다. 김해경/이상은 그렇게 악수할 수 없는 불화의, 분열의, 불일치의 관계였다.

  ‘오감도시제15호’에서 시인은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라고 거울 속의 나에게 총탄을 발사하여 살해하고자 한다.

  그것만이 자아분열의 괴로움을 끝장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를 죽이는 데도 실패하고 만다. 거울 속의 나를 살해할 수도 없고 거울을 피해 도망칠 수도 없는 나의 삶이란 거울의 지옥이 상영되는 분열의 극장이 된다.

  그 거울이 쓰는 시나리오가 자아분열의 질병이다. 거꾸로 된 숫자판이 거울을 통해 보이고 그것을 환자의 용태로 진단하고 있는 시 ‘오감도시제4호’는 바로 ‘환자 김해경/책임의사 이상’의 분열증적 공생관계를 잘 보여주는 ‘카르테-시’이다. 책임의사 이상은 환자의 용태를 0:1로 진단한다. 비합리주의자(뒤집혀진 숫자판)로서의 환자의 용태를 합리주의자인 책임의사 이상이 진단을 내리고 있는, 자아 분열과 그 대립을 보여주는 시각시이다.


                        ‘李箱’으로의 변신은 고통 아닌 해방의 희열


      
        *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여자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상이다. 이상은 이 사진에
         ‘이것은 누구던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것은 이상의 분열된 삶을 지배하는 물음이
         기도 했다. 사진 제공 소명출판


  
  그렇게 이상은 김해경의 질병을 앓고 그 질병을 노래한다. 또 가문의 아버지들이 있다. 그의 첫 발표작이자 장편소설인 ‘12월 12일’은 이상의 인생을 차압한 것으로 암시되는 백부의 시점으로 쓰인, 친부, 친모, 천재소년 업(業)이의 욕망들이 뒤얽힌 가족 비극이다. 이목구비가 수려한 천재소년 업이는 바로 가문의 업둥이인 해경 자신을 가리킨다. 유교의 가부장적 욕망과 근대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처절하게 결탁된 이 작품에서 화가가 되고자 하는 천재 미소년 업이는 자기 가족에게 돈을 대주는 백부의 파시즘적 억압으로 정신분열을 일으켜 미쳐서 죽게 된다. 업이야말로 바로 해경 자신이었으며 장손인 김해경 자신에게 내리꽂히는 가족 욕망의 편집증적 압력에 그는 괴로워하였다.

   “분총에계신백골까지가내게혈청의원가상환을강청하고 있다”(시 ‘문벌’)처럼 무덤 속에 계신 조상들의 빚독촉과 부채의식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극한을걸커미는어머니-기적이다.기침약처럼따끈따끈한화로를한아름담아가지고내체온위에올라서면독서는겁이나서곤두박질을친다”와 같이 불쌍한 어머니의 희생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슬퍼하기도 한다.

  마침내 가부장들이 지어준 이름 김해경을 버리고 이상이 된 순간 이상(李箱)은 이상(理想)이거나 리상이거나 이상(異常)이거나 그리고 이상(以上)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나의 나’라는 절대성을 버린 순간 ‘하나 이상의 나’는 분열의 고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해방의 희열이었다. 그는 몇 년간 이상으로서 다다와 초현실주의적 언어의 극치의 퍼포먼스를 화려하게 펼쳤다.

  그리고 피난하듯 도쿄로 떠난 그는 1936년 12월 19일 미명에 한국 최고의 명수필인 ‘권태’에서 이렇게 쓴다. “불나비가 날아들어 불을 끈다. 불나비는 죽었든지 화상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불나비라는 놈은 사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불을 보면 뛰어들 줄을 알고-평상에 불을 초조히 찾아다닐 줄도 아는 정열의 생물이니 말이다.” 그렇다. 이 부나비처럼 그는 자신의 파멸을 걸고 죽을힘을 다하여 도쿄의 누추한 한 다다미 방에서 ‘종생기’ ‘권태’ ‘슬픈 이야기’ 등 한국문학 최고의 명편들을 써댔다. 드디어 인간 김해경은 귀재 이상의 불멸의 제단에 바쳐진 불쌍한 먹이, 희생자, 제물이 되었고 하얀 데드마스크가 와서 그 잔혹한 자아분열은 끝을 맺게 되었다.


- 김승희 시인·서강대 교수



<출처> 2010. 4. 21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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