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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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명도(無名島) / 이생진 


                                                              



무명도(無名島) / 이생진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눈으로 살자

                                                                - 이생진 <무명도>





‘악(惡)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대안 찾아야




  완도타워에서 여섯 번째 희망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유가족은 물론 전 국민의 슬픔이 되고 있는 이때, 참사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완도의 완도타워 2층 전시물에서 우연히 <섬섬시편> 속의 시 여섯 편을 발견하게 되어 이 시를 바탕으로 희망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이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저 나름의 다짐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의 시는 이생진 시인의 <무명도>입니다. 이생진 시인은 ‘섬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섬과 바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을 지닌 시인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시집과 화첩을 들고 수많은 섬으로 돌아다닌 그가 <무명도>(無名島)를 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찌기 도연명(陶淵明)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그렸습니다. 중국 후난 성의 한 어부가 발견하였다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낙원, 가상의 선경(仙境)이지요. 별천지(別天地)나 이상향(理想鄕)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입니다. 무릉도원은 동양인들의 꿈의 낙원이지요.

  또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이니스프리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에서 도시의 소음과 번잡스러움을 떨치고 한적한 자연에 묻혀 홀로 살고 싶은 마음, 그 떨쳐버릴 수 없는 소망을 담담하게 그렸습니다.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쓴 전원서정의 글이었지요.

  이생진이 그리는 ‘저 섬’은 분명히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입니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가 똑같이 세 번 반복되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말을 섞어 넣고 있습니다. “뜬눈으로”를 더하고 나서 다시 “그리운 것이 / 없어질 때까지”를 더했습니다. 시인의 소원은 저 섬에서 한 달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무릉도원, 이니스프리 호수로 표현된 이상향, 즉 유토피아는 과거나 지금이나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반증일 뿐 그저 가상적인 환상(幻想)의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의 소재가 된 섬은 제주도에 딸린 ‘우도’가 분명한데, 이름 있는 섬을 시인이 이름 없는 섬, 무명도(無名島)로 바꿔 부른 것도 유토피아가 실제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무명(無名)'으로 간주한 것이 아닐까요?  

  그건 그렇다치고, 이름 없는 섬에 가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다 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혼자서도 좋고, 둘이서도 좋겠지요. 혼자라면 삐걱거리는 마음을 텅 비울 수 있고, 둘이라면 쌓인 그리움을 마음껏 풀어낼 수도 있겠지요요. 어떻든 시인은 일상이 주는 나른함을 떨쳐내고 온전히 깨어있는 시간을 그리며 이름 없는 한 섬, ‘무명도’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누구나의 가슴에 도사린 꿈을 꺼내어 대신 꾸어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리운 것이 / 없어질 때까지”라고 한정한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왜냐 하면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한 그리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는 애당초  불가능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아니 영원히, 내가 만족하는 이상향, 유토피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좌절한 상태에서 유토피아가 이루어지기를 손 놓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유토피아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는 1516년 영국의 작가 토머스 모어가 당대 유럽 사회를 비판하고 이상적인 사회인 유토피아를 그린 훨씬 이전부터, 아니 인류가 삶을 시작한 무렵부터 있어 온 것이라면,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놓고 살만한 세상, 평화의 세상을 위해서 말입니다.
  
  세월호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 도처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물질만능을 좇다가 기술의 진보를 정신의 깊이가 따라잡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기술 문명을 거부하며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에게는 스위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지적한 대로 현대문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악(惡)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분명한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사회악 - 생명경시 풍조, 도덕적인 해이, 안전불감증, 정경유착의 부정부패, 무관심과 냉소주의, 가족해체와 가족기능의 상실, 퇴폐와 무질서 등 사회 전방위에 걸쳐 대대적인 수술과 처방이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 고유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해 이웃에 대한 사랑, 이해, 배려, 용서가 꽃피는 사회로 바꿔야 할 시급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충격에 빠진 사람을 결코 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를 베풀고, 상처를 보듬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고 하루바삐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완도에서 남상학)



        


        



        <참조> 완도타워에서 근무하시는 이혁진 씨가 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건강의 섬 완도>를
                  지키기에 수고하시는 이혁진 씨에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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