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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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애송시 100편 - 제 91편]


            
             ▲ 일러스트 권신아
                  

                                     거짓말을 타전하다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
          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
          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
          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
          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
          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
          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
          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
          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2006년>



<해설> -정끝별·시인
  
   "저질러라, 닥치면 겪는다, 긍게 긍갑다"를 인생의 3계명으로 삼고 사는 여성 시인이 있다. 실제로도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에서 살았으며, "치사량과 열정과 눈물 한 방울만큼의 광기와 고독/ 개미의 페로몬 같은 상상력"(〈짜가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재료로 '시 같은 거짓말'을 제조하고 '거짓말 같은 시'를 타전하여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씩씩하고 싹싹한 안현미(36) 시인의 얘기다.

   2006년에 엮어낸 그의 첫시집 《곰곰》은 이렇게 소개되었다. "활짝 핀 착란의 찰나에서 건져 올린 생짜의 시, 시라니!"라고.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던 내 아버지"(〈고장난 심장〉)"까치밥처럼 눈물겨운 엄마"(〈우리 엄마 통장 속에는 까치가 산다〉)의 틈바구니에서 '생짜'로 캐낸, 캄캄한 그러나 반짝이는, 검은 조개탄을 들여다보는 일만 같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비망록'은 있는 것이어서, 그 비망록이 어둡고 고통스러울수록 그 젊음은 젊었음이 틀림없다. 이 시는 시인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여상, 산동네, 등록금, 비키니 옷장, 순대국밥, 번개탄, 연탄가스 중독, 헌책방 따위로 그려지는 90년대면서도 '여전히 70년대적인' 풍경이다.

   거기에는 짐작되는 아픔이 있고 헤아려지는 가난과 고독이 있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할 때, '~이었지만'을 경계로 앞 문장은 뒤 문장에 의해 뒤집힌다. 경계는 해체된다.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라고 말할 때,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라고 말할 때도 앞 문장은 뒤 문장에서 무참히 무너진다. 이렇게 앞과 뒤는 가파르게 반전하지만 사실은 동어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리듬감은 여기서 살아난다.

   시인에게 '거짓말'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진실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타전하다'라는 말은 "목마른 시인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팔리지 않는 위독한 모국어로 시(詩)를 쓰고 있었다"(〈그해 여름〉)의 다른 표현이며, 그의 시에서는 거짓말을 제조하다, 환을 연주하다(보다), 몽유병에 꽂히다, 착란에 휩싸이다 등으로 변주된다.

   그런데, 나를 울게 하고 결국은 가족이 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란 무엇에 대한 은유일까? 야행성의 창녀들일까, 사내들일까, 불안이나 공포일까, 죽음일까…… 어쨌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거짓말을 제조하다〉). 그것은 진행형이다.

<출처> 2008. 4. 24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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