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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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김지향 / 가끔은 나도 증발되고 싶다 
가끔은 나도 증발되고 싶다

                                      


열손가락을 부채살처럼 펴고
컴퓨터 키보드를 한꺼번에 눌렀다

잠시 엷은 주름 사이
그림자뿐인 유리집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녀는 들어갈까 말까 망설임도 없이
습관적으로 머리 꼭지를 드밀어 넣었다
유리집에 잠입한 그녀는
간첩처럼 귀를 세우고 몰래 벽에 걸려 엿본다

정물 하나 없는 움직임들이 무리 무리 지나간다
나뭇잎 널브러진 키 낮은 산들이 지나가고
머리 훤한 집들이 지나가고
강아지떼가 돼지떼가 고양이떼가 지나가고
먼지가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해묵은 미해결 건수가 지나가고

지나가는 건수들은 모두 줄을 서듯 입에
앞의 꼬리를 물고 물고 물고
초고속으로 지나간다

형상을 가진 사물들은
모두 발도 없이 유리집 사이버 속으로 들어간다
인터넷 A가 인터넷 B와 인터넷 B가 인터넷 C와 불똥을 퉁기며
번개처럼 접속된다

온 우주가 인터넷 속에서 한 개
점이 되어 그녀 두뇌 속으로 도랑물처럼
기어들어간다
나는 삐걱거리는 두뇌로
가끔은 형이상 속으로 증발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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