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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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의 용광로 - ‘뜨레스 디아스’, 데꼴로레스의 합창과 함께 [1]
File1 : TD03.jpg (63.7 KB), down : 21




                     사랑의 용광로 - ‘뜨레스 디아스’

                          - 데꼴로레스의 합창과 함께
          



   2004년 10월 나를 태운 버스는 가을 색으로 물드는 덕동계곡을 오르고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엠마우스 워크(Emmaus Walk) 뜨레스 디아스( Tres Dias, 약칭 T.D) 과정에 입소하기 위해서였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최형자 권사님의 권유도 있고, 세속에 물들어 나태해진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 재충전을 해보리라 생각한 탓인지 계곡 주변의 울창한 숲이 더욱 신선해 보였다. 같이 동승한 교우들도 새롭게 경험할 훈련을 떠올리며 많은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안내자는 앞으로 목적지까지 20분 정도 남았다는 설명과 함께 각자에게 서류봉투를 나누어 주고 휴대전화와 시계, 그리고 귀중품을 봉투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의아해 하는 눈치를 보이자 잘 보관했다가 귀가할 때 전달해 주겠다는 것이다. 젊은 날 수많은 수련회에 참여한 경험을 가진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우리는 환영을 받으며 등록하는 장소까지 안내되었다. 우리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꽤 긴 거리에 도열하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환영의 시간, 목사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뜨레스 디아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뜨레스 디아스는 스페인어로 ‘3일’이란 뜻의 스페인어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범적인 사흘’이란 뜻이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슬픔과 증오와 고통으로 사회의 구석구석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과 미움, 그리고 다툼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참신한 그리스도의 정신을 심고자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본래 뜨레스 디아스는 가톨릭의 영성 운동이었던 꾸르실료(Roman Catholic Cursillo : 스페인어로 '기독교 세미나'라는 뜻)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데 1940년대에 스페인에서 탄생된 이후 신앙적 열정을 회복하기 위한 영성훈련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어 미국 전역에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보급되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되는 훈련은 일단 외부 세계와 차단된 공간에서 실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극히 한정된 생활공간, 전화나 TV 등은 아예 설치되어 있지도 않고, 시계도 없어 시간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훈련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세속과 연결되는 끈을 붙잡고 있는 한 깊은 영적 세계에 도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사용하는 용어가 스페인어여서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했다. 훈련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캔디데이트(Candidate)’라고 부르며 극진히 섬겼다. 그들은 3박 4일의 T.D과정을 경험하고 캔디데이트를 돕기 위해 조직된 자원봉사 팀 멤버로서 자신을 ‘페스카도르(Pescadore)’라고 했다. 문자적으로는 ‘어부’라는 뜻이다. 그리고 뜨레스 디아스에서 행해지는 강의는 ‘로요(Rollo)’, 강의를 하는 사람은 ‘로이스타(Rollista)’라고 했다. 로요는 문자적으로는 통나무를 뜻하는데, 통나무가 굴러가는 듯한 길고 지루한 강의를 풍자한 것이었다. 그리고 뜨레스 디아스에서 자기희생과 헌신을 통해 표현되는 사랑의 편지나 선물을 일컬어 ‘팔랑카 (Palanca)’라고 했다. 이런 생소함은 우리를 환영하여 불러준 ‘데꼴로레스(de colores)’ 노래를 부를 때 극에 달했다. 마치 이방인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


          봄철 들녘에 어우러진 색깔 색깔들
          멀리서 날아드는 작은 새들의 알록달록한
          색깔 색깔들 멀리 보이는 아치형 무지개의 색깔 색깔들
          그래 나는 무척 좋아해 이 아름다운 색깔들을
          수탉은 끼리끼리 끼리 노래 부르고 암탉은 까라까라 노래 부르며
          병아리는 삐오삐오 노래 부르네 그래 나는 …



   이 노래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지난 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자 농장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새롭게 느끼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내용의 스페인 민요로서 매우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였다. 그런데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앙 훈련에 사용됨으로서 ‘데꼴로레스’는 ‘빛과 함께’라는 의미에서 ‘Rejoice' 혹은 ’Greeting'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프로그램의 진행 방법과 내용은 예고도 없고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었다. 효과의 극대화라는 차원에서였을 것이다. 이러한 보안은 다음 참가자들을 위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나중에 경험하게 되는 분들의 온전한 체험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생소한 환경에서 다소 당황스러움 속에서 훈련을 시작한 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은혜의 숲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의는 주제별로 틈틈이 이어졌고, 그 사이사이 찬양이 보태졌다. 강의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경청했고, 찬양 시간에는 즐겁게 따라 불렀다. 찬양은 때로 회개의 찬양이기도 했고, 감사의 찬양이기도 했다. 진실한 회개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의 찬양은 그대로 눈물로 이어졌다. 이곳에 와서 내가 그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그룹토의, 묵상기도, 성찬식, 기도회, 세족식, 회개기도문 작성, 죄목 태우기, 침묵훈련, 간증시간, 관 체험 등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시간시간 주어지는 프로그램을 따라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며 나 자신을 비워나갔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새로운 마음을 다짐해 나갔다. 특히 스피리철 리더인 김종오 목사의 멘트와 렉터(Rector) 이동섭 장로, 최승집 장로의 진행은 빛났고, 정창모 장로의 신앙간증은 교회 증축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또 캔디데이트를 정성껏 섬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현관, 복도, 식당에 이르기까지 예쁘게 단장한 데코, 식탁의 차림새, 간식 테이블에 기울인 정성, 그리고 페스카도르가 이동할 때마다 복도에서 무릎 꿇은 자세로 안내하는 모습들은 천국의 모형을 연상케 해 주었다. 나는 찬양을 통해 받은 은혜와 함께 섬김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또 마지막 날 새벽시간의 마나니타는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시간인데, 전혀 믿기지 않는 깜짝쇼에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조용히 묵상하는 중에 눈을 뜨라는 말을 듣고 눈을 떠보니 아내가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아내는 어젯밤에 이곳에 와서 잠을 잤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를 만나러 새벽 먼 길을 달려왔다는 것인가?  아내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그 동안 아내를 서운하게 했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교차하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감격의 눈물, 회개의 눈물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사랑의 용광로 속에서 나는 새롭게 천국의 사람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얼마만인가. 이 해후(解逅)
              어둠 속에 앉아/ 그대 얼굴 그려보는/ 공들인 나날
              머리속 안개 걷어내고/ 이제사 보는
              두 팔 벌려/ 웃음 띠고 달려오는 당신    

              이 얼마만인가
              슬픔의 골목 빠져나와/ 한숨을 날리고
              백합 한 송이 꺾어들고/ 그대 열린 가슴으로 달려가
              뜨거운 입김에/ 봄눈처럼 스러져도 좋으리.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있음은
              실로 얼마만인가    

                                                     - 졸고 <내가 그 안에> 전문

        
    
   아주 특별한 체험 뜨레스 디아스는 감동과 감격이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한 것을 감안할 때 그 위력은 '사랑의 불꽃’을 넘어서 ‘사랑의 용광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순절적인 성령운동이라 할까.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한 바울의 고백처럼 내 안에 있는 죽은 영을 주님의 사랑으로 깨워서 주님이 내 안에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말로는 안 되네.                                                
             어디선가 발원하여
             침묵을 뚫고 들려오는 그윽한 묵시의 소리
             어느 새 마음은 비워지고,
             이 맑고 깊은 산하에서 다시 태어나는
             눈뜸의 기적을, 경이로운 신생의 감격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말로는 안 되네.
             벅찬 감격 안으로 흐르고 넘쳐
             작은 가슴 흥건히 적시고,
             일시에 나를 휩싸고 도는 엄청난 사태                                      
             형언할 길 없이 달아오르는
             뜨거운 성령의 소용돌이를
             말로는 다할 수 없네.

             차마 말문 막히는
             은총에의 감사를 어찌할까.
             눈물로 갈고 닦은 보석 가슴에 안고
             그 찬란한 광채의 눈부심으로
             사랑의 등불 높이 치켜들고,
             어둠 밝힐 그대, 그 신비스런 체험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 졸고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전문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범적인 사흘’을 체험하고 나서 재회모임인 리유니온(Reunion)에서 낭독한 글이다.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제목 그대로 체험의 내용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점차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있었다. 감상에 젖어서가 아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이웃을 섬기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3일간 말씀, 찬양, 기도를 중심으로 크리스천의 기본이 되는 생활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는 체험을 했던 것이다. 이 체험을 마친 후 나는 교회에서 영성훈련원장을 맡아 2년간 뜨레스 디아스 과정에 입소하는 대상자 선발, 훈련 과정 돕기, 환영 등을 진행하며 교회 안에 영성의 새바람을 불어넣는 일에 헌신했던 것이다.

   이 운동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가톨릭에서 모방해 왔다고 해서, 교파를 초월한 정체불명의 운동이라고 해서, 불건전한 집단에서 이기적으로 악용했다고 해서 또는 개 교회를 분열시키는 분파 활동이라 해서 비판할 일이 아니다. 신학적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특별 영성체험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바른 목적과 바른 신학을 가진 교회와 목회자들이 뜨레스 디아스라는 영성훈련의 그릇을 활용한다면 교회에 생명력과 활기를 더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대형화 되어가고 또 일부에서는 물질주의, 세속주의의 흔적을 보이고 개교회주의와 분열주의의 아픔을 안고 있는 이 때에 강력한 영적 능력을 지닌 훈련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공헌을 감당해 주리라 믿는다. 뜨레스 디아스를 선하게 사용할 것이냐, 그릇되게 사용할 것이나 하는 문제는 활용하는 사람이나 공동체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신학적 문제가 있는 단체에 이것을 맡겨놓고 교회에서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교단, 건전한 교회들이 잘 활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Comments
캔디  (2017.05.10-15:00:17)  X 
아직 참석하지 않으신 분들이 검색을 통해 이글을 보시게된다면 너무 많은 내용을 미리 알고 가시게 될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글이지만 다음분들을 위해 비공개로 바꿔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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