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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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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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타임지 기자는 성경을 톱기사로 다루면서 성서를 가리켜 “매년 가장 잘 팔리는 책”이라 규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때에, 성서가 이처럼 잘 팔리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성서만큼 가장 영향력이 있는 책이 또 있을까?”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늘날 성서는 매년 4천 4백만 권 정도가 팔린다고 한다. 미국의 모든 가정에는 평균 6.8권의 성서가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이처럼 성서가 가장 잘 팔리고 영향력이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답하려면 먼저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 4:4).”는 예수의 말씀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적으로 태어난 인간은 매일 음식물을 섭취하듯이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성서라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기독교를 가리켜 ‘말씀의 종교’ ‘계시의 종교’라고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는 말씀이 있듯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본체는 ‘로고스’ 즉 ‘말씀’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창조되어” 낮과 밤이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6일 동안에 말씀으로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성서를 통해서 자신을 인류에게 나타내셨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디모데후서 3: 16)이라고 말했다. 이 말의 원어 '데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는 ‘하나님의 숨결’로 만들어졌다는 뜻인데, 이것은 곧 성서가 100%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즉 하나님은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를 대리인(代理人)으로 삼아 자신의 존재와 존재의 뜻을 모두 문자로 기록하게 하셨는데 그 기록이 바로 성서인 것이다. (요한 17:17; 베드로 전 1:24, 25)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는 ‘책 중의 책’으로 최고의 권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믿음과 행위’의 근거인 것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것”(디모데후서 3:16)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가 원하는 뜻은 무엇인가?’ ‘예수의 십자가 고통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등 믿음에 관한 진리가 성서 속에 담겨 있다. 성서는 인간이 마땅히 쫓아야 할 길이며, 우리는 성서를 통해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말씀 속에는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다.

  또 ‘하나님의 눈에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해야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등 삶에 대한 바른 지침도 성서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성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 땅과 하늘에 들어나야 할 영원한 원리요 이치이다. 좀더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따라야 할 삶의 원리요 이치인 것이다. 십계명을 예를 들면, 십계명 안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의 ‘~하지 말라’는 말은 인간에게는 빨간 신호등이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하라’는 말은 푸른 신호등으로 알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한 사회, 한 민족, 한 나라가 건전하고 의로우며 문명화된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에 대한 뛰어난 분석이라 할 수 있다.

  또 성서는 도덕이나 생활 윤리를 담고 있는 그 어떤 지침서 혹은 그 어느 종교의 법전보다 숭고하고 차원이 높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그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양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히브리서 4:12)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스탠리 볼드윈 수상은 이렇게 말했다. “성서는 강한 폭발력을 지녔다. 그러나 성서는 신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그 책이 전 세계에 퍼져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수천의 다른 장소에서 개개인의 영혼을 울려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 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신앙으로 인도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성경은 그 무엇보다도 더 강한 능력이 있는 책인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서는 ‘행위 이전의 마음’의 상태까지 살피라고 한다. 마음으로 품는 음욕까지 죄라고 규정한다. 행동으로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 탐심을 품으면 죄가 되므로 철저한 회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어긴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바른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성서는 상처난 영과 육을 위로하고 치료하여 소망에 이르게 하는 힘이 있다. 연약한 인간은 전능하신 능력 안에 거할 때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게 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중략)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5)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험하고 위태할지라도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며,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 119:114)에서와 같이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고 피난처가 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성서의 말씀은 생명과 건강을 제공하고.(잠언 4 : 20~22절) 영적 공격에서 지켜주신다는(마태 4장 : 1~11절) 말씀은 얼마나 큰 복음인가?

  성서의 말씀은 일으키고 세우는 능력이 있다. 실제로 성서는 사업이나 결혼에 실패한 사람,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경제적으로 파산당한 사람,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사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포자기한 사람, 고독과 절망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성서의 위로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용기와 희망을 얻고 새길을 찾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성서에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복음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책 중의 책’인 것이다. 요즘 세상에는 성서를 비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베드로 후 3:3-7) ‘하나님을 볼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사람보다 우월한, 보이지 않는 창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있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도 부처도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이 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 모두가 지상의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의 처음 조상은 그 생명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즉 창조주로부터 받았음을 알려준다.(시 100:3; 이사야 12:2)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위대한 영(靈)이며,(요한 4:24; 시 90:1, 2) 여호와는 악인들을 멸하고 인간이 지상 낙원에서 살 수 있도록 구원하심으로써 그 위대한 이름을 입증한다는 것(출애굽 6:2-8; 이사야 35:1, 2)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일을 하실 능력이 있으며, 온 우주의 창조주로서 흔히 각 나라에서 섬기는 신이나 우상보다 훨씬 높음(이사야 42:5, 8; 시 115:1, 4-8)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세기 동안 사상가나 역사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위기(危機)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신(神)은 죽었다’(니체)고 말하면서, 인류종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현대 과학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장밋빛 같은 희망을 버리기 시작했다. 전기 분야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캘빈 경은 “과학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무신론적 사상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과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홀리 콤프턴도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우주는, 성경 첫머리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라는 말씀이 가장 엄숙한 진리임을 증명해 준다.”고 말했다.  과학의 결과에 한계를 느낀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가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창조의 위대함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과학자이면서 평생에 걸쳐 성서를 연구한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강대국의 통치자들은 우주 정복에 박차를 가해 왔고, 그 업적을 자랑하기도 했다, 1961년 4월 1일 최초의 우주비행사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달을 향해 날아갈 때, 전 세계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고, 그 이후 이 방면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우주위성은 지구궤도를 도는 달이나 태양주위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하찮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 은하에는 우리의 태양과 같은 별들이 수십억 개가 있으며, 여호와께서 그 모든 것들을 분류하여 우주 가운데 배치하시고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운행하고 계시지 않은가! (시 19:1, 2; 욥 26:7, 14) 여호와께서 인간을 메뚜기같이 보시며 열방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는 것도 이상한 일이 결코 아니다.(이사야 40:13-18, 22) 그래서 신이 없다고 주장한 무신론적 과학자들은 과학을 깊이 연구하다가 과학 이전에 숨어있는 위대하고 오묘한 섭리를 발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과학자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하여 신비한 약(神藥)의 개발하고 의학의 발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신약이 발명되고 의학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주어진 생명을 조금 연장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죽음의 문제는 결국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토하고 있다. 과학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있는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죽음은 인간의 죄 때문인데, 성서는 모든 죄에서 해방시켜 구원을 이루게 하는 진리는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대답할 수 있다고 증언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로마서 6 : 6~7)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 6 :22~23)



  태생적으로 죄를 타고난 인간은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켰고, 의의 종(하나님의 종)이 되어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나 철학, 그 어떤 사상도 인간의 구원, 영생의 문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성서는 다른 종교의 신(神)도 죽음의 문제 죽 구원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그리고 확실하게 말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 12) 성서만이 인간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 3:1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 11:25~26)

    "성경은 능히 어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인간은 누구나 다 죄로 죽게 되어 있지만,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쁜 소식, 곧 복음(福音)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 성경은 구원의 책,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영생의 진리, 구원의 진리가 담겨있는 성서를 통해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과의 관계를 더욱 두텁게 하는 일, 그리고 그분의 생각과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살아야 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성서를 ‘책 중의 책’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따라서 성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 이 원고는 알파를 섬길 때 ‘성경토크’를 위하여 정리한 원고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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