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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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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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의 회복



   2010년 6월, 나는 3부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다. 헵시바 찬양단이 인도하는 찬양을 더듬거리며 따라 부르고 있을 때,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나는 전율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지나 전율은 이어 내 무디어진 마음을 일깨우며 진한 감동으로 몰아갔다. 예배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도다.
       천사들이 모여서 서로 창화하여 외치니/ 그 소리는 성전에 가득하도다.
       거룩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거룩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예배의 강단은 마치 이사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의 성전에서 본 거룩한 환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찬양단의 찬양은 천사들이 모여 창화(唱和)하는 노래요, 강단에는 높이 들린 거룩한 보좌에 만군의 여호와가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 재현되는 것 같았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령의 임재 가운데 충만한 것을 느꼈다. 나는 이 광경 속에서 이사야처럼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던 것이다.(이사야 6:3)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극한 위엄으로 모든 피조물(사40:12-14)과 인간사(사40:15-20)와 각 민족의 삶(사40:21-26)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장엄하게 선포하시는 존재로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사야가 본 환상은 하나님의 주권이 장엄하게 선포되는 소리로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하였고(이사야 4장 6절), 이러한 장면 속에서 이사야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서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정 5절)라고 고백했다. ‘높은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이 충만하였고, 그 순간 인간은 창조주 앞에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죄의 고백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 속에 경건함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감동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 나를 비롯해서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사야가 본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비전 상실일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불행하게도 예배자로서의 경외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예배는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경스럽게도 예배를 드리는 참된 자세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예배의 감격과 기쁨을 상실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에서 온 결과였다. 이런 자신에 놀라 침체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기도의 시간을 늘리면서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지만, 그 일은 늘 영적 투쟁의 과정을 겪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성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느 신학자는 오랜 기간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에 빠지기 쉬운 위험은 신앙의 매너리즘(mannerism)이라고 했다. 신앙의 행위가 타성에 젖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인 신앙 행위로 전락되기 쉽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앙생활은 형식에 빠지고 영적 활력을 잃게 된다. 주일예배만 해도 그저 주일이니까 늘 하던 대로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보는 관람자가 되기 쉽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너무 ‘가벼운 하나님’으로 여겨온 탓이다. 여기서 ‘가볍다’는 말은 하나님을 중요한 존재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데이비드 웰스는 현대의 신앙인들을 가리켜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보다 TV에 더 흥미를 느끼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부와 권력에 더 가치를 부여하고, 하나님의 심판보다 저녁 뉴스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진리보다 아부와 거짓이 난무하는 광고의 감미로움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신앙의 가벼움이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런 의 신앙인으로 전락되는 것 같았다. 설교를 들어도 그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게 되고 입을 벌려 찬양을 해도 감동 없이 하게 되고, 이런 기간이 길어지면 예외 없이 영적 생활은 침체의 늪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져서 영적으로 치명적인 병이 될 수 있다.

  이런 절박한 위기의 상황으로 치닫던 순간에 나는 찬양 속에서 잊고 있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에 대한 경외심을 섬광처럼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깨달음은 전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거룩과 경외심은 예배의 핵심(lifeblood)이다.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경외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인데 나는 그 사실을 철저히 망각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해 압도될 때,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며 진정한 경배와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생생한 이상(vision)에 의해서 특징되는 예배는 결코 가벼이 대하거나, 경박하거나 또는 피상적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사야가 보았던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비전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웰스는 이렇게 경고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거룩함이 복음주의 신앙의 가장 깊은 내면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그 예리함을, 우리의 실천이 도덕적인 강렬함을, 우리의 예배가 기쁨에 찬 열정을, 우리의 설교가 은혜의 신랄함을 갖지 못할 것이며, 교회는 경쟁 단체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발언권을 얻는 일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공동체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사야 시대에 엄청난 영적인 무감각이 있었듯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도 영적인 무관심과 가벼움이 팽배해 있다. 예배에 있어서 경외심이 없는 것이 이제는 현대 교회의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경외심이란 경건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마다 압도되며, 충격적으로 경험하는 두려움과 놀라움을 가리킨다. 경외심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져갈 수 있거나, 또는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외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뵙기 시작할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신령한 은혜인 것이다. 경외심은 우리의 마음속에 성경에 나타난 그대로의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해주고,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 합당한 자리를 내어드리도록 해준다. 경외심을 가진 예배자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더욱 깨닫게 되며, 경건한 두려움 가운데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요즘 교회마다 각종 비전 선언문과 구호가 넘쳐난다. 그런데 우리 시대 모든 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비전은 이사야가 보았던 ‘높이 들린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비전이 아닐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라고 외친 천사들의 찬송이 우리가 동일하게 외쳐야 할 진정한 구호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믿음답게, 행동을 행동답게, 예배를 예배답게, 설교를 설교답게,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유일한 원천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오늘 우리 모든 교회, 우리 모든 성도들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예배자는 예배시간에 10-15분 늦게 와서 슬며시 자리에 앉거나, 개인적인 사담을 나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배에 참석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로 충만한 마음이 없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없다면 진정한 예배자라 할 수 있겠는가? 경배의 영으로 충만한 예배는 오르간 연주자의 아름다운 선율이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합창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리스도를 구주로 맞아들일 때의 감격, 처음 사랑일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여호와께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편29:2)  우리는 이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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