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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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 충만은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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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은 어떻게 가능할까?


      
   성령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있다.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내 안에 거하기 시작하며,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실 때 비로소 새로운 생명의 삶, 즉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성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라고 하였다. 성령은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내주(內住)하여 끊임없이 역사하신다. 따라서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다. 일본의 성서학자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성령의 하시는 일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은 지금, 땅 위에 있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나타내셔서 그의 위로를 전하시고, 그가 훗날에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의 소망을 양육하고, 지금 이 땅 위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고, 가르치고, 길러주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은 오늘날 땅 위에 있는 우리들의 지도자요, 위로자요, 동시에 구주시다. 그러므로 성령을 믿고 받아들이면 우리의 신앙은 현재적으로 굳세어 질 것이며, 지금 현실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느끼는 행복을 맛볼 것이다.” <內村鑑三 全集 四卷:성령에 관한 연구>

  이 말을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 받기를 간구한다. 나는 어느 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성령의 임재를 확인하고 한 동안 말할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혀 한 편의 시를 쓴 적이 있다.  


             속삭이지 않으나
             내 속에 여울지는 소리

             번쩍이지 않으나
             내 속에 아롱지는 빛깔

             바람으로 나의 옷깃을 스치다가
             파도로 나를 설레게 하다가
             아침으로 나에게 빛을 주다가
             햇빛으로 나를 꽃 피우게 하다가  
             이토록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게 하는가.

             그 어디에도 없으면서
             그 어디에나 가득차는 충만
          
             그 속에
             흔들리는 나의 영혼

             해맑은 눈물로 닦아
             잠들게 하소서.



   <내재율(內在律)>이란 제목의 글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령 경험이 가능하지만 성령을 직접 묘사할 수는 없다. 음악가들에게 음악경험이 가능하지만 음악 자체를 실증적으로 밝힐 수 없는 비슷한 것이다. 나는 성령의 임재를 시 속에 내재하는 운율, 즉 내재율에 비유하여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성령을 받으면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기쁨이 차오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안식과 평안이 깃들게 되고,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목표가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고민은 그러한 성령이 변함없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성령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기뻐하기도 하고 근심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성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고 말한다. 세상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 새 성령은 사라져 버리고 육의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 유혹과 이기적인 욕망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성서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한다.”(갈 5:17)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사단의 죄인 교만한 마음이 고개를 들어 불순종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면 성령은 저절로 소멸되는 것이다. 성령이 소멸되면 아무리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계속해도 성령은 내 마음에 임하지 않는다. 따라서 믿음은 식어가고, 소망도 꺼지고, 회의와 절망 속에서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살아나게 하소서.”(시편 119:25)

  그래서 성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가르친다. 이 말은 아무리 인격을 갖춘 인간이라 하더라도 다른 영향과 다른 세력에 의해 조종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령을 거스르는 악령의 세력에 우리를 맡기지 말고 성령이 우리를 조종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술기운으로 살지 말고, 성령의 기운으로 살라” 술에 취하면 성령의 충만은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공존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이 사귈 수 없고 그리스도와 벨리알(무가치, 사악을 뜻하는 말-필자 주)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후 6:14~15) 다시 말하면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을 멈추고 마귀를 대적하여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무엇이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을 때 충만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무엇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내 마음을 채웠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 온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순종함으로써 매 순간 그분의 지배와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는 먼저 내 속에 있는 죄의 잔재와 습관들에 대항하여 싸울 필요가 있다. 이것은 육적인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치열한 영적 싸움이며, 이 영적 싸움에 승리할 때,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인식하게 되고 비로소 우리는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성령의 충만을 가리켜 감정적인 황홀경에 빠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오해에 불과하다. 왜냐 하면 성령의 충만은 단순히 우리의 감정적인 변화가 아니고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그 진리의 말씀에 지배되는 영적인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기는 하지만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기다림만으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성령의 충만을 계속 받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을 받고자 하는 사람의 소관인 것이다. 일회적 감정의 상태가 아닌, 지속적인 간구와 꾸준한 노력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자 하는 이의 의지적 결단과 끊임없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지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고민해 왔고, 또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간구할 필요가 있다. 즉 성령은 초청해야 오신다. 누가복음 11:11~13에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고 말이다. 예수님은 그 바쁜 공생애 사역기간 동안 물러가 기도하시며 그 본(本)을 보이셨다. 사도행전은 대표적인 성령 충만 사건이 모두 간절한 기도 중에 이루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행2:4; 4:31) 또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중요한 사역을 감당했던 대표적인 인물 베드로, 스데반, 사도 바울 등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매일 치러지는 영적 전투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우리는 성령 충만의 힘을 얻게 된다.

  그렇다고 성령의 충만은 기도만으로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기도는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성령이 무엇인가를 깊이 알지 않고는 제대로 기도할 수가 없다. 우리의 기도에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막연하게 성령을 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성령을 주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 받을 준비로서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달라고 하다가 나쁜 영에 휩쓸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은 누구이며,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이러한 문제를 명확하게 가르쳐주는 것은 성서만이 가능하다. 또 성서는 진리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는 바른 방법까지 가르쳐준다.  

  나아가 성령의 충만은 행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묵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좇아 거룩하게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 5:16), “만일 너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라고 촉구한다. 이 말은 성령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 22)라고 말한다. 이 말은 성령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것을 촉구하는 말이다. 나는 앞에서 성령을 가리켜 ‘살아계신 인격’이라고 했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답게 생활 속에서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군인이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 지속적인 훈련과 무기 점검을 통해서 군기를 바로 세우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통하여 매순간 계속되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신앙생활의 동력임을 알려준다. 진정한 성령의 충만은 시와 찬미의 생활로 나타난다.(엡 15 5:19) 또 감사와 복종의 생활로 나타난다.(엡 15:21)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고 난 후 마음이 즐거운 상태를 맛보는 것은 보통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이것은 병 고칠 능력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충만이다. 주님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이것은 창조의 원래 의도에 맞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 지속적으로 순종함으로써 ‘생수의 강’(눅7:38)에서 솟는 강물처럼 넘치는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며, 이러한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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