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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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거룩한 성도(聖都)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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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도(聖都) 예루살렘



   두려움과 떨림이 가슴에 일었다.성지는 종교인에게는 마음 속 고향 같은 곳이다. 종교인들은 이곳에서 위안을 받고, 신앙의 자세를 새롭게 하고, 인류 평화를 기원한다. 그런 점에서 성지야 말로 인류 공통선을 이루는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예루살렘을 가리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룬 도성’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지로서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곳 예루살렘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지금도 종교와 민족과 이념의 차이로 인하여 큰 갈등 가운데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아침 햇빛을 받아 눈부셨다. 베이지색 석조의 건물이 햇빛을 받아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지형적으로 동쪽으로는 키드론 골짜기와 남쪽으로는 힌놈 골짜기의 가운데 솟은  구릉은 외부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성채를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적인 예루살렘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20번 이상 무력에 의해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파괴와 아픔을 당했다.

  현재 예루살렘은 성채로 만들어진 고도(古都) 예루살렘은 역사와 종교에서 차지하는 엄청나게 큰 비중에 비해 성의 면적이 의외로 작다. 성벽의 길이는 4㎞, 성내 면적은 1㎢(약 30만평)에 불과하다. 이 예루살렘이 역사의 무대에 처음 올라선 것은 기원전 약 1천년 경 다윗 왕이 이곳을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부터였다. 다윗이 죽은 후에는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이 도시에 왕궁과 성전을 건설하고 성전 안에 언약궤를 보관하였다. 성전은 신의 지상임재의 유일한 장소라고 생각하여 종교적인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유대교인이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곳을 성전산으로 부른다. 그 후 예루살렘은 유다왕국, 통일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지만, 서기 838년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 터에 이슬람사원을 건축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 간에 불화가 그치지 않는 원인을 상징적으로 시사해 준다.

  그 후 예루살렘은 이후 내내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다가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성채로 둘러싸인 예루살렘 성(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동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신시가지는 서예루살렘(이스라엘)으로 분리되었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동예루살렘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동예루살렘에는 통곡의 벽(유대교), 성묘교회(그리스도교), 돔으로 된 오마르사원(이슬람교) 등이 있어서 유대교도·그리스도교도·이슬람교도가 저마다 성지(聖地)로 여긴다는 점이다. 이것은 종교적 상징성을 떠나 정치적 주권과 국토의 상징으로서 국가 재건의 꿈과 희망에 결부되어 있어서 언제나 경계가 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도에는 연간 약 11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대부분이 그리스도교의 순례자들이다.

  통곡의 벽 우측 성전산으로 들어가는 문은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하고 모든 순례자들의 휴대품을 검사한다. 이곳에는 이슬람의 황금 돔의 바위사원과 엘악사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과격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공공연히 이슬람사원을 폭파시킨 뒤 성전을 다시 재건하자고 한다. 1990년 10월 통곡의 벽에서 일어났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 사이의 충돌 사건도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황금 돔의 이슬람사원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랍인들은 이 산의 바위 위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고 하여,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사원과 함께 이슬람 3대 사원의 하나라고 한다. 황금색 돔은 부와 권위를 나타내며 예루살렘의 랜드 마크처럼 서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이 사원을 황금사원이라 부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산을 성전산으로 부르고, 사원 내부에 아브라함에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 제단 바위가 있기 때문에 바위사원이라고 부른다. 이슬람교도들인 아랍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솔로몬 성전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그들 사원을 건축했으니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겠는가.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 나와 또 다른 문인 스데반 성문을 통하여 ‘통곡의 벽’으로 들어섰다. 통곡의 벽은 예루살렘 성전을 받치고 있던 서쪽편의 축대의 일부를 가리킨다. 폭 60m, 높이 18m의 석축일 뿐이다. 이 석축이 통곡의 벽이 된 이유는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기 66년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 군대는 무력으로 반란을 진압시켰고, 성전은 불에 타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전을 받치고 있던 서쪽 편 축대 일부가 화를 면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성벽은 2000년 동안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에게 귀향의 꿈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었다. 긴 유랑시대에 유대인들은 해마다 한번씩 이곳에 들어와 성전의 파괴를 한탄하고 한 많은 그들의 삶을 호소하는 것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수난과 박해를 받으며 살아온 유대인들은 이곳을 찾아와서 한 많은 그들의 삶을 눈물로써 하나님께 호소하곤 했다. 그래서 ‘통곡의 벽’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벽은 유대 민족의 신앙의 상징인 동시에 전 세계 유대인의 순례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 벽은 1967년 6월, ‘6일 전쟁’ 이전만 해도 요르단 측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군은 통곡의 벽을 탈환하기 위하여 아랍 세계의 강국인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과 상대하여 싸웠다. 이스라엘 정에 공수부대는 이들의 완강한 저항을 물리치고 스데반 문을 통과하여 마침내 통곡의 벽에 도달했다. 병사들을 이 통곡의 벽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 감회가 어떠했을까. 지금도 통곡의 벽을 찾는 사람치고 흥분의 감회를 느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 임재를 상징하는 솔로몬 성전의 일부라는 사실과 예수가 수난을 당할 때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의 고함소리와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순례객들 틈에 끼어 종이로 만든 카파라는 모자를 쓰고 이 벽에 이마를 대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십자가 승리, 예수 만세’라는 글씨를 종이에 적어 돌과 돌 사이 빈틈에 끼워 넣었다.    

  또 하나, 예루살렘에는 온 기독교인 순례자들이 걷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슬픔의 길’ ‘ 수난의 길’이란 뜻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길이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걸어가셨던 그 고난의 길을 묵상하며 걷는 것이다. 성지를 찾아온 유대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통곡의 벽이라면, 이슬람교도들이 찾는 곳은 솔로몬 성전 터 위에 세워진 황금빛 대사원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찾아온 기독교인들의 발길은 슬픔의 길, 비아 돌로로사로 향한다. '슬픔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비아돌로로사는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진 채 골고다 언덕까지 끌려가신 길을 말하며,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 받던 곳에서부터 예루살렘의 옛 도시의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예수가 묻혔던 곳에 세워진 성묘교회까지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십자가의 14처’가 있고, 저마다 의미가 부여되어 있어 그곳과 관련된 성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머리 숙여 기도한 다음 장소로 옮겨간다.

  그러나 이 길은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조용한 묵상을 불가능하게 했다. 작은 상점들로 이어진 언덕길은 길은 아랍 상인들이 물건을 내놓고 파느라 혼잡하고, 그들이 떠드는 소리에 어수선하고, 성지 순례자들이 밀려들어 밀고 밀리는 혼돈의 길이었다. 마치 예수가 걸어가신 혼돈의 세상을 암시라도 하듯 힘들고 고달픈 길이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무거운 십자기를 지고 이 길을 걸으며 기진하여 몇 번씩 쓰러지고 넘어지고, 옷을 벗기고, 채찍을 맞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던 것이다. 14처의 맨 마지막 장소는 예수가 묻히셨던 곳, 곧 성묘(聖墓)가 된다. 기독교 유적지의 중심이 되는 성묘교회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던 골고다 언덕과 시신이 묻히셨던 무덤 부분을 다 포함해서 그 위에 세운 웅대한 교회다.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명으로 건축된 교회로 역사의 변천에 따라 많은 영욕을 겪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순례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그 뒤에 오는 영광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의 제자 됨을 감사하며 사명을 다지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을 중심으로 많은 유적들이 있어 예루살렘은 성지의 중심이 된다. 예루살렘 성 서쪽문인 시온문 밖 시온산에는 마리아 영면교회, 다윗왕의 무덤, 최후의 만찬 다락방, 베드로통곡교회가 있고, 동쪽 키드론 계곡 건너편에 감람산에는 정상에 예수승천기념경당, 주기도문교회, 예수님눈물교회, 겟세마네만국교회,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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