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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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서(聖書)의 땅,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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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聖書)의 땅, 터키



  터키를 가리켜 ‘인류 문명의 박물관’ 또는 ‘전국토가 야외 박물관 같은 나라’라고 한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이스탄불은 숱한 문명이 피고 진 역사의 현장이다. 1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6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한 로마, 비잔틴, 오스만 터키 등 3개 제국의 수도였으므로 여러 문명에 걸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터키에는 구역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아라랏 산, 그리고 기독교 초기의 일곱 교회가 있었던 곳이며, 300년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었던 시대에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던 땅인 동시에 한때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피신처로 사용했던 지하 동굴과 지하 교회도 터키에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라면 터키를 한 번쯤 가고 싶어 한다.


성 소피아 성당이 있는 이스탄불


  나는 기회가 되어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차낙칼레(트루바), 베르가마(버가모), 이즈미르(서머나), 에페수스(에베소), 파묵칼레, 안탈랴 등 서남부를 거쳐 콘야, 카파도키아 등 성서의 땅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중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최대의 걸작으로 꼽힌다. 최초의 건물은 36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소실되어 537년 유스티아누스 대제에 의해 중건되었다.  이 건물이 완성되자 대제는 영화의 극치를 누리며 예루살렘 대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에 빗대어 “나는 드디어 당신을 능가했소.”라는 말로 흡족해 했고, 걸작품을 만들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한다.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이 성당의 거대한 돔(56m)은 둥근 하늘을 상징하고, 이곳이 하늘에 계시는 신을 받들어 모시는 장소라는 것을 표현했다. 중앙 내부는 7,000㎡로 매우 넓으며, 비잔틴 석조 공예술을 보여주는 107개의 기둥이 있다. 중앙의 작은 돔에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자이크가 있다. 회교 사원으로 사용할 당시 성당 밖에 다시 4개의 첨탑이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면서 추가되었다. 이스람 성당으로 사용할 당시 성당 돔의 내부를 이스람 문양으로 바꾸었던 것을 최근에 와서 절반은 그대로 두고 절반은 원래의 모습으로 환원하였다. 소피아 성당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남쪽 복도 계단에 있는 모자이크 벽화다. 중앙에는 그리스도, 왼쪽은 성모 마리아, 오른쪽은 세례요한이다. 회교 사원으로 사용하던 당시 회반죽으로 덮여져 있던 것을 1932년 터키 정부의 허가를 얻어 미국인 토마스 위트모아가 벗겨냄으로써 세상에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역사의 변천에 따라 916년간은 성당으로, 481년간은 이스람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한 후에는 그리스 이름인 아야 소피아로 불리게 되었다.

  성소피아 성당을 시샘이라도 하듯 그 맞은편에는 술탄 아흐메드 사원이 있다. 이 지역이 오스만 터키에 의해 점령된 후 황제 아흐메드 1세 왕은 성소피아 성당의 기독교 문화에 대항하기 위하여 1916년에 6개의 첨탑을 가진 이스람 사원을 건립했다. 건축적인 아름다움 면에서는 성소피아 성당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건립 연대나 역사적인 의미로 볼 때 성소피아 성당을 따를 수가 없다. 이스탄불에는 이 외에도 궁전, 사원, 박물관, 기념탑, 성벽 등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짧은 일정 때문에 히포드럼, 톱카프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고고학 박물관, 로마 시대 지하 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 탐방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시장인 그랜드바자르를 구경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에 참가하여 보스포러스 연안 풍경과 멀리 언덕 위에 지은 루멜리 성을 바라보며 이스탄불만이 지닌 매력에 젖을 수 있었다.


웅장한 신전의 도시, 버가모(베르가마)


  이스탄불을 둘러보고 터키의 서부 해안지역을 살펴보기 위해 유럽 쪽에서 다다넬스 해협을 건넜다. 해협을 건너 서부 해안 지역에 들어서면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木馬)가 있는 트루바(옛 지명:트로이)에 닿는다. 트루바 유적을 지나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초대 일곱 교회와 관련된 지역을 만난다. 일곱 교회는 에게 해 연안과 터키 서부 내륙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교회는 건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개인의 집이나 동굴 등 비밀스런 장소에서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초대 일곱 교회가 있다는 곳을 방문하더라도 교회 건물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란 기독교인들이 흩어져 신앙생활을 했던 일곱 지역의 이름일 뿐이다. 따라서 성지를 순례한다는 것은 이들 지역을 돌아보며 초대 일곱 교회 성도들이 겪었을 박해를 생각하며, 성서에서 이들 교회에 대하여 언급한 메시지들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이동 경로를 따라 먼저 버가모로 향했다. 성서명 버가모의 현재 이름은 베르가마이며 고대도시명은 페르가몬이다. 시내 중심지로 들어서는 도로는 대리석 조각을 깊이 박아 만든 것으로 유서 깊은 도시임을 짐작케 했다. 천연의 요새가 될만한 조건을 갖춘 지형 때문에 이곳은 이미 기원전 로마의 속주 아시아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먼저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을 찾아갔다. 아스클레피온이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서 유래했다. 기원전 4세기 경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진 이 병원은 현대적 의미로 일반 치료 외에 음악 요법, 명상 요법, 목욕 요법, 심리 요법 등의 치료 시설을 갖춘 대형 전문병원이었다.    

  다음으로 태양의 신인 세라피스 신전을 찾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은 많이 파괴되기는 했으나 남아있는 건축물로 보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로 사용되었으나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함께 교회의 역할은 사라지고, 지금은 건물 일부를 이스람 사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갖은 핍박 속에서 순교자를 속출했던 땅을 이교도에게 넘겨주게 된 현실이 그리스인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세라피스 신전을 본 뒤 구불구불한 나선형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곳 정상의 견고한 성내에는 거대한 아크로폴리스의 왕궁이 있다. 이곳에는 제우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아데나 신전, 트라야나스 신전의 유적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 ‘사단의 위(位)가 있다’(요한계시록 2장 13절)고 말할 정도로 그만큼 황제신에 대한 숭배 사상이 극심한 도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버가모 교회가 당한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가모 교회는 끝까지 그리스도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단의 풍습과 교리를 추종하는 일부 교인들 때문에 엄중한 책망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칭찬을 받을만한 교회였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폴리갑의 순교지, 서머나(이즈미르)  
  

  초대 교회가 있던 서머나(현재명 이즈미르)는 북쪽에 있는 버가모와 함께 에게 해 연안의 주요 도시로 성장했다.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터키의 3대 도시답게 기원전 3000년경부터 에게 해안의 항구도시로 발전하였다. 또 기원전 700년경 살았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 호메로스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머나 교회 역시 종교적으로 전통주의 유대인들의 공격과 극심한 황제 숭배의 강요로 인하여 환란을 겪었고, 경제적으로 심한 빈곤 상태에 처해 있었다.(요한계시록 2장 9절) 그러나 이런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그리스도에게 죽도록 충성함으로써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았던 교회였다.

  현재 서머나 시내에는 86세 때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AD.80-165)의 기념교회가 있다. 폴리갑은 예수께서 가장 사랑하던 요한 사도의 제자로서 20대 청년 나이에 요한으로부터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 임명 받아 전도에 힘썼던 인물이다. 그는 갖은 협박과 위협에도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않아 끝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체포되어 타는 불 속에서 순교를 당했다. 폴리갑 기념교회는 17세기 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프랑스 교구에서 다시 재건했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는 폴리갑의 생애와 관련된 성화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는데, 이 성화들은 19세기 말 프랑스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폴리갑의 화형을 묘사한 성화를 바라보면서 신앙의 큰 도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방 선교의 거점, 에베소(에페스)


  또 하나의 초대 교회가 있었던 에베소는 지금의 에페스를 지칭한다. 에페스로 기기 위해서는 셀주크를 거쳐야 한다. 셀주크에는 에페스 박물관, 사도 요한 교회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다. 에페스 박물관에는 에베소 사람의 수호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있고, 사도 요한 교회에는 사도 요한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역사학자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스데반 순교 이후(A.D 37~42) 예수의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었는데, 사도 요한과 바울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에베소에 와서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초기 일곱 교회를 개척하고 요한복음을 기록했다고 한다.

  에베소는 기원전 10세기 이오니아인에 의해 건설되고, 알렉산더 대왕 이후 로마의 중요한 도시가 되면서 전성기를 맞아 에게 해안에서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크게 발돋움했다.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등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고, 예술가와 돈 많은 상인들이 몰려와 한 때 인구 25만 명을 가진 대도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에베소를 탐방하는 동안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비록 파괴되기는 했으나 도시의 규모와 대리석으로 된 시설물들이었다. 시가지는 정교한 도시 계획에 따라 수많은 대리석 건축물과 조각들이 도시 전체를 아름답고 조화 있게 꾸며주고 있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는 대로변에는 대소 공연장, 신전, 도서관, 공회소, 체육관, 운동장, 수세식 공중변소, 목욕탕, 우물, 유곽, 시장터로 꽉차있고, 홈이 패인 대리석 도로와 하수도 시설 역시 완벽했다. 사도바울은 서기 53년경 이곳에 도착하여 설교했다고 한다. 사도행전 19장에는 바울의 에배소 설교 행적을 잘 보여 준다. 그는 회당과 두란노서원(현지명:셀주스 도서관)에서 날마다 강론했다. 두란노서원은 당대 유명한 헬레니즘 철학자 두란노가 운영하던 학교 및 도서관이었는데 두란노의 강의가 없는 시간에 이곳을 빌려 강론한 것으로 보인다.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바울의 말에 흥분한 군중들이 바울을 내쫓는 바람에 그는 할 수 없이 이곳을 떠났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바울의 전도는 그리 쉽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아르테미우스 신전이 지배하던 도시도 바울의 열정적인 복음 전파로 서서히 에베소 교회를 이루어 갔다. 요한계시록(2:1~7)에 의하면 에베소 교인들은 이단을 배격한 것과 열심 있는 봉사와 수고, 고난에 대한 인내로 칭찬을 받았으나, 정통 교리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참된 사랑을 상실했다는 꾸중을 들기도 했다. 에베소에서 11㎞ 정도 거리의 산 위에는 성모 마리아의 집이 있다. 마리아는 예수의 부탁을 받은 제자 요한을 따라 에베소로 왔고, 여기서 말년을 보내다가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목화의 성,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에베소에서 출발하여 ‘목화의 성’이라고 불리는 파묵칼레로 이동했다. 파묵칼레는 에베소에서 동남쪽 내륙으로 좀 들어간 곳에 있다. 골로새서에서 언급되는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히에라볼리)가 바로 이곳이다. 히에라볼리는 휴양의 도시이자 유적의 도시이다. ‘거룩한 성읍’이란 뜻을 가진 히에라볼리는 라오디게아, 골로새와 함께 성서에 한 번 언급되었는데(골로새서 4장 13절), 기독교가 이곳에 전해진 것은 에베소에 있어서의 바울의 활동에 힘입은 것으로 볼 수 있다(사도행전 19장 10절). 후에는 전도자 빌립의 활동지이기도 했다. 이 지대는 산 위에서 흐르는 다량의 석회질이 섞인 온천물이 경사를 따라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침전되어 흰 목화송이 모양의 형상을 이루어 ‘목화의 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 온천수는 섭씨 35°의 탄산수로 여러 질병에 효험이 있어 로마 황제들도 즐겨 찾았다고 한다. 이 곳에는 2세기 경에 건축된 1만 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고, 온탕, 냉탕을 갖춘 로마 목욕탕이 있다. 현재목욕탕의 일부가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성문 밖 북쪽 1㎞ 지점 야산에는  1,200여개에 달하는 석관이 흩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 이 도시의 산기슭에는 빌립 사도 순교 기념교회가 있다. 빌립 사도가 기원 후 80년에 네 명의 딸들과 함께 순교한 곳인데,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그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히에라볼리에서 7㎞쯤 떨어진 곳에는 초대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가 있다. 라오디게아는 눈병을 고치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다. 안내인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흔적이라며 대리석 돌들이 어지럽게 흩어진 낮은 구릉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기록을 보면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해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지대가 낮고 물이 풍부하여 물질적으로 풍족함을 누리고 있어서 영적 교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책망을 받은 곳이다.(요한계시록 2장 14절~22절). 인생의 참된 가치는 육적인 안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자유와 진리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성서의 땅 터키는 이 외에도 구약성서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와 아라랏 산(현재 이름 아르르 산), 최초로 크리스찬이라고 불린 안디옥 등의 성지가 있다. 10일간의 일정으로 성지를 다 둘러본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지만 아쉽기 그지없다. 그런데 정작 아쉬운 것은 터키에 기독교 유적들이 보존은 고사하고 거의 다 파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성서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람 신자가 절대다수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여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터키는 기독교 유적을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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