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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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박해의 현장, 카타콤베와 카파도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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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의 현장, 카타콤베와 카파도키아



   기독교에 대한 박해의 흔적을 찾는다면 대표적인 것이 로마 인근의 카타콤베(Catacombe)와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를 들 수 있다. 내가 카타콤베를 방문한 것은 1994년 10월이었다. 유럽지역 교육시찰 연수단의 일원으로 유럽 5개국 순방 때, 로마를 둘러보는 중에 카타콤베를 방문했다. 카타콤베는 로마인의 지하 무덤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던 지하 교회나 무덤을 가리킨다. 반면 카파도키아는 2002년 8월 교사연수단과 함께 터키 여행 중에 탐방했는데, 카파도키아에는 기암괴석의 동굴 교회와 거대한 지하 도시가 있다.


로마의 카타콤베 - 성 칼리스토의 지하묘지


  지하묘지로 일컬어지는 그리스어 ‘카타콤베’는 ‘낮은 지대의 모퉁이’라는 뜻으로, 로마 시대에 박해를 받던 초기 기독교도들의 집회장소를 겸한 지하묘지 30여 곳이 산재해 있어 성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방문한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순교자 교황 성 칼리스토스(217-222)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이곳은 3세기경부터 기독교인들의 공식적인 묘지가 되었으며 현재 보존이 가장 잘된 곳이기도 하다.

  초대교회 초기의 선교활동은 로마 근교에 살던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주로 행해졌으며, 그들이 살던 지역은 주로 테베레 강 어귀와 아피아 가도 주변이었다. 그런데 네로황제를 비롯하여 10명의 황제가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탄압함으로써 250년간 잔인한 피의 복수가 자행되었다. 박해가 심해지자 신자들은 주위의 눈을 피해 로마의 성 밖에서 은밀히 모였는데 그 중에서도 아피아 가도 주변에 많이 있던 지하 무덤이 가장 안전한 은신처가 되었다. 그런데 박해가 계속되자 이 은신처는 기독교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급기야는 신자들의 무덤도 그 안에 마련되면서 지하 무덤, 즉 카타콤베의 면적이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성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로마의 가장 크고 비중 있는 카타콤베 중의 하나이다. 이 카타콤베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하다. 지하에 소재하는 묘역만도 4만 5천 평에 달한다. 그물처럼 얽혀져 있는 갱도들은 여러 층으로 파여 있어 깊숙하게 들어간 곳은 지하 20m가 넘을 정도이다. 이곳에는 순교자가 10여명 묻혔고, 교황이 16명이 묻혔으며, 또 이곳에 묻힌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대략 10만여 명이 된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의 토양은 응회질이어서 부드러워 맨손으로도 얼마든지 파낼 수 있고, 일단 공기가 닿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특수한 토양이기 때문에 토양이 공기와 맞닿아 응회암으로 응고되는 과정에서 시체의 썩는 냄새와 썩은 물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로처럼 얽힌 조그마한 통로 양쪽 벽에 시신 하나가 들어 갈만한 정도의 구멍이 층층이 패여 있었는데, 넓은 방처럼 되어 있는 곳은 지도자급 성인들의 묘실이며 유리 상자 안에 뼈만 남은 전시물도 있었다. 지하 묘지는 깊이 내려 갈수록 묻힌 사람들의 연대가 가깝다. 교황들의 경당이 있는 곳은 이 카타콤베에서 가장 성스럽고 가장 중요한 장소이며, 여러 명의 교황과 교회의 고위성직자들도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되므로 일명 "작은 바티칸"이라고도 불린다. 교황들의 경당 바로 곁에 성 체칠리아 경당이 있는데 이 성녀는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있다. 로마 귀족 가문 출신으로 3세기에 순교하였다. 이곳의 사방벽은 벽화와 모자이크로 치장되어 있었고, 석상 가까운 벽에는 성 체칠리아의 고대 화상이 있는데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로 카타콤베 속으로 들어가 옛날 시체가 안치되어 있던 층층의 벽감들 사이 지하도를 걸으면서 필자는 그 웅대한 규모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무덤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불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신앙적인 경건함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기독교도들이 숨어 지냈던 지하무덤 카타콤베. 이 카타콤베야말로 기독교 초기의 교회가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사랑을 실천하고 증언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교회였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거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카타콤베 관광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로마제국의 박해를 무릅쓰고 종교적 신앙을 수호하며 살았던 그들의 확신에 찼던 신앙열정과 아름다운 순교정신을 배우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 기암괴석의 동굴 교회와 지하도시


   이탈리아 로마에 카타콤베가 있다면 터키의 카파도키아에는 기암괴석의 동굴 교회와 거대한 지하 도시가 있다. 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카파도키아란 지명은 기원 전 이곳에 있던 카파도키아 왕국의 이름을 딴 것인데, 이곳의 특징은 기암괴석의 동굴교회와 땅속에 펼쳐진 거대한 지하도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괴한 요정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곳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드넓은 계곡지대에 펼쳐져 있다. 황량하고 황폐한 지형에 원추형과 버섯모양의 기괴한 암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그 속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교회가 형성되어 있어 자연과 인간의 능력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카파도키아는 아주 오래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활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는 세월이 지나면서 응회암으로 굳어졌고,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이 암석은 부드럽고 쉽게 깎이는 습성 때문에 마치 거대한 버섯 같은 기이한 모양으로 변하게 되었다.  특히 젤베 계곡에 있는 돌기둥은 그 모습이 괴기하여 요정의 굴뚝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의 돌기둥은 아래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 지면서 한 덩어리의 현무암이 모자를 씌워놓은 것과 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어 현무암이 얹혀 있는 돌기둥의 모습은 남근을 연상하게 한다.  
  
  원추형의 돌기둥은 평균 30m의 높이로 늘어서 있는데 이런 돌기둥에는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다. 이 특이한 지형은 거주지로서 편리한 점이 많았다. 지형을 이루고 있는 응회암은 쉽게 깎이는 탓에 거주공간이 좁다 생각될 경우 주변의 돌을 더 파내기만 하면 되었을 뿐 아니라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할 수 있고, 여름에는 더위로부터 그리고 겨울에는 한파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구멍을 통하여 돌기둥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오래전부터 마련한 삶의 터전의 흔적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로마의 카타콤베와 같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면서 기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이들의 거주 공간은 쉽게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종교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훌륭한 피난처가 되었다. 많은 그리스인들은 이곳에 자신들의 거주지 이외에도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있고, 암굴 속 교회에는 프레스코와 성화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지역에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사람 손이 닿는 부분의 성화는 아예 없어졌거나 훼손된 것이 많으나, 토칼르 교회 같은 곳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사과교회, 집시교회, 성바르바르 교회 등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공생애의 기적들,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반, 십자기의 죽음과 부활 등이 그려져 있다. 천정 모퉁이에는 성경 기록자들의 성화도 그려져 있다. 카파도키아 동굴 교회의 내부의 이들 회화들은 비잔틴 예술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유산이다.  
  
  카파도키아를 더욱 경이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데린쿠유와 카이막클르에 있는 지하도시이다. 최대 3만 명까지도 수용이 가능하다고 하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출정하는 군대의 위협이 있을 때에는 이곳 자연 동굴은 그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지만, 로마의 기독교 탄압을 피해 쫓겨 온 기독교도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교육기관과 교회, 와인 저장고 등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거대한 지하 도시를 건설되었다. 작은 규모의 마을부터 거대한 도시에 이르기까지 총 40여개에 달하는 거주지가 발굴되었으나 오늘날 일반인에게는 소수만이 공개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중 하나가 데린쿠유 지하도시이다. 이 지하 도시는 용암재가 굳어진 약한 사암을 일일이 쪼아가며 파들어 간 인공 동굴이다. 피난민들이 늘어날수록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했다. 지하 120m까지 내려가는 지하 도시는 12층이나 관광객의 안전을 위하여 8층까지만 공개하고 있는데, 무려 1,200여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인 데린쿠유는 1965년에 처음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나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은 총 면적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지하 도시의 통로 입구는 연자방아 모양의 커다란 둥근 돌로 막혀 있다. 이 돌은 내부에서는 쉽게 열리지만 외부에서는 열려고 해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외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돌들은 통로 중간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허리를 굽히고 땅 속으로 난 좁은 통로를 들어서자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지하 1층과 2층에는 돌로 만든 두개의 긴 탁자가 놓여져 있는 식당을 비롯하여 부엌, 우물, 축사, 곡물 창고, 포도주 저장실 등이 위치하고 있다. 3, 4층에는 거주지와 교회, 신학교, 병기고 등 완전히 도시 기능을 갖춘 것이다. 교회는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인들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곳이며, 신학교는 피난 생활이 장기화할 것에 대비하여 장차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려고 했음을 보여준다.  

  또 이 지하도시에는 긴급히 다른 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 뚫어져 있다. 그런데 이 지하도시에는 괴뢰메 계곡과는 달리 일체의 성화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리고 지하 감옥 및 묘지는 더 아래층에 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지하 도시로 쫓겨 살다 여기서 죽어갔던 사람들의 무덤 앞에 서니 가슴이 떨려온다. 순교를 당한 건 아니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환난과 핍박을 견디다 죽은 영혼들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부터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비롯해서 교회 역사에 끊임없이 크고 작은 핍박이 있어 왔다.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는 주후 64년에 네로 황제에 의하여 처음 일어났다. 이처럼 기독교는 처음부터 핍박을 받았고, 그 핍박 속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 1세기와 2세기의 박해 그리고 수세기 동안 세계를 돌면서 복음은 수많은 순교자를 만들었다. 많은 핍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어 교회는 꾸준하게 성장하였다. 핍박이라는 기독교 장애물이 오히려 기독교를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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