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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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대 이집트, 인간 숭배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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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인간 숭배의 극치



이집트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다. 오랜 세월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집트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은 옛 문명의 흔적을 엿보려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를 찾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이집트’라고 하면 발음에서는 무언가 견고한 것이 느껴진다. 오래되고 고집스럽고 위엄이 서린 곳, 이집트에 가보면 그것이 죽음과의 대면을 통해 형성된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라오의 사후 세계를 상상하면서 만들어진 이집트 유적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얼마나 엄숙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성지순례의 일환으로 이집트에 입국하였으나 다행히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나일 강과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순례코스에 포함되어 있어서 고대 이집트의 인간숭배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피라미드, 그 찬란한 위용

수도 카이로에서는 고대 문명의 중심지답게 이집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피라미드는 물론 다양한 유적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집트에는 90여기가 넘는 피라미드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기자(Gizh) 고원의 3대 피라미드다. 이 피라미드는 한 시대의 권력과 기술의 총아로서 파라오들에 대한 인간 숭배와 그들의 우상 숭배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며, 또 죽어서도 영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욕심을 엿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가장 전성기였던 제4왕조의 파라오들은 엄청난 규모의 피라미드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로 이어지는 3대는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 단지를 남겼다. 이 시기는 이집트 왕조의 황금시기로 인류 문명의 한 정점이었다. 카이로 시내에서 13km 떨어진 곳이어서 차로 30여 분 정도 이동하면 기자고원이 나타난다. 멀리서 바라볼 때에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으나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 크기와 규모에 놀라게 된다. 사각뿔의 조형물인 피라미드는 황량한 사막 벌판에 우뚝 서 있어서 밋밋하지만 단순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3개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중후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쿠푸왕(Haram Khuufuu)의 피라미드로 흔히 '대피라미드'라 부른다. 이것은 14세기 말까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꼽혔던 거대한 조형물이다. 쿠푸 피라미드의 경우 밑변의 길이 233m, 높이가 146m로 260만개의 벽돌을 사면 경사 51°52'로 쌓아올렸다. 각 면에 평균 2.5t의 돌을 230만 개나 쌓아올렸다는데 한 면이 90cm보다 작은 돌이 하나도 없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는 원래 210계단이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203계단이다. 겉 표면에 있었던 돌의 17만여 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 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하느라 벗겨졌다고 한다. 당시 석공들은 기자 부근의 돌과 카이로 남쪽 850km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통하여 배로 운반하여 온 화강암을 이용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이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B.C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서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루 10만 명이 동원되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한다.

50년간 통치한 쿠푸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절대 왕권을 쥐고 행사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랬듯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기에 그 삶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죽은 자가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덤을 건설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라미드 안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각종 생활 용품들과 때로는 왕비와 하인들을 같이 매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미이라와 함께 물건들을 넣어두고 언젠가는 살아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20불을 내고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살피기 위해 좁은 진입로(구멍)를 통해 지하로 들어갔다. 좁은 내부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일 뿐이었다. 원래의 입구는 이보다 위쪽 10m 지점에 있다.

현대 과학으로 볼 때 피라미드의 건축은 불가사의한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5천년 동안 1.25㎝밖에 침하하지 않은 지반을 선정한 기술, 청동기 시대에 1.5톤에서 15톤짜리 돌을 오차 없이 깎을 수 있었던 능력, 헤로도토스 방식이라면 750년이 걸린다는 시간, 250만 개의 돌을 기간 내에 운반하고 쌓는데 동원된 인원이 동시에 일할 수 있는 작업 공간 확보, 주 식량원인 대추야자 밖에 없는 이집트에서 돌을 운반하는데 소요된 나무를 확보한 방법 등은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한다.

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는 데는 주로 노예와 전쟁 포로들이 동원되었는데, 최근에는 나일 강 범람기에 농업에 종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돕기 위하여 국가에서 행한 공공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 근거로 피라미드를 쌓을 당시의 낙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 ‘일을 주신 파라오에게 감사를 드린다' 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엄청난 노역으로 이룩된 불가사의한 문화유산은 4,500년이 지난 지금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처럼 국가의 귀중한 관광자원으로 국가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코 떨어지고 수염 잘린 스핑크스

쿠푸 왕의 피라미드 아래로 200~300m 정도 내려가면 BC 2600년경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스핑크스(Sphinx)가 있다. 높이 20m, 몸체 길이 70m, 얼굴 너비가 약 4m 되는 거대한 석상의 스핑크스는 몸통은 사자를 닮았고, 얼굴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움과 사자의 용맹스러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사자의 앞발 부분, 뒤 꼬리부분 등은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조금씩 손상되어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렵고, 왕관이 씌어 있었다는 머리 부분도 많이 파손되어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다.

또 스핑크스는 이집트 곳곳의 다른 조각이나 스핑크스에서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듯이 슬프게도 코가 부서지고 턱수염이 떨어져 나간 치욕의 모습이다. 왜 이집트 유물은 코가 많이 부서졌을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독교 전파나 이슬람 침공 이후, 이교도들이 태양신과 교감하는 주요 부위인 코를 부숴 최후의 심판 날에 부활할 수 있다는 이집트인의 믿음을 깨기 위한 시도였다는 설명이다. 아랍인들은 코나 귀로 영혼이 드나든다고 생각하여서 죄 지은 자는 코를 잘랐던 것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규모와 위용만큼은 변함없다. 스핑크스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다른 곳의 돌을 옮겨다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자연 암석을 조각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정말 가까이 가서 보면 보는 이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만든다. 그런데도 앞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의 거창한 모습에 비하면 오히려 왜소한 느낌이 들었다. 아랍인들은 기자의 스핑크스를 아부 알 하울의 이름 또는 '공포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살아있는 형상'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내며 태양신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에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나오는데 여기에도 신화가 하나 있다. 스핑크스에 가까이 가서 보면 앞발 사이에 화강암으로 작게 만든 직사각형의 비석이 보인다. 비석에는 스핑크스의 신이 투트모스 왕자의 꿈에 나타나 자신을 덮은 모래를 걷어주면 왕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따라 왕자가 모래를 치워주자 늦은 서열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꿈의 비석’으로 불리는 이 돌에 새겨진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의 인물인 왕의 상징물 앞에 신화를 기록한 유물을 만들어 놓은 이집트인들의 시대관이 이채롭기만 하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은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집트 문화의 시원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왕가의 계곡, 아부심벨과 룩소르의 신전,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현대인이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데 비해 고대 이집트인에게 죽음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한 축이었다. 파라오들이 건축한 피라미드들은 거대한 장례 신전의 집합체로써 이집트의 신전 건축 개발에 굉장한 역할을 하였다. 이 모든 것들은 죽어서도 영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욕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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