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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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6년, 교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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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경의 숭의여자고등학교 교사 일동 *


                                                    36년, 교사의 길



   2002년 8월 나는 천직으로 여기던 교육의 길을 마감했다. 20대 후반 교사가 된지 35년 6개월만이다. 숭실고등학교에서 근무한 1년을 빼면 모두 숭의에서 지낸 시간들이었다. 교직을 선택하면서 나는 기독교 학교에서 교사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희망대로 미션스쿨인 숭실고등학교과 숭의여자 중고등학교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하셨다. 두 학교 모두 장로교 계통의 미션스쿨로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고, 일제 시대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서 민족의 기개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자진 폐교하였다가 해방 후 서울에서 개교한 점에서 그 설립 정신이나 역사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숭실고등학교에서의 1년은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처음이라 나름대로의 사명감과 의욕이 넘쳤고, 2학년 국어를 맡아 가르치면서 문예반 지도교사로 대천해수욕장에 있는 학교수양관에서 2박 3일 동안 문예창작 교실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교지를 편집하여 출간하는 것도 문예반 담당이었다. 경험이 없고 미숙하였지만 의욕과 열정으로 보충한 셈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날 무렵, 나는 숭의학원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그 이듬해인 1969년 숭의로 자리를 옮겼다. 숭의학교는 중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배정될 신입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실시하여 학교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해 나는 숭의여자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1학년 신입생들을 담임했다.중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였고 귀엽기 그지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만족할 만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식교육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었고, 학급에 배정된 제각기 다른 수준의 아이들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육은 만남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나는 이 아이들과 만나그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즐겁고 보람이 있었다.


                    교정에 가득한 햇살
                    재잘거리며 밀물로 몰려오고
                    시간마다 단잠을 깨우는 바람에
                    다정한 눈빛으로
                    예쁜 꽃망울이 벙근다.

                    목멱산(木覓山)  허리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 그리고 빨간 장미.......
                    철 따라 이름을 부르면
                    저마다 고운 잇속 드러내는
                    귀여운 얼굴

                    네가 꽃을 피워
                    나에겐 사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어우러지는 꽃 무리 속
                    교정 가득히
                    빠알간 석류로 터지는
                    너와 나의 악수(握手)    



  <네가 꽃을 피워>의 전문이다.  저마다 꿈을 안고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옛이름) 허리를 오르는 아이들은 남산 기슭에 피어나는 예쁜 꽃과도 같았다. 그들과 교감하며 교육하는 일은 나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후 나는 중학교에서 3년을 보내고 이들의 졸업과 동시에 고등학교로 이동했다. 따라서 그 해는 고등학교 쪽에서 보면 중학교 평준화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첫해이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제각기 자기가 희망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나는 숭의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인문 고등학교의 대명제인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아야 했다.

   모든 삶은 '경쟁'이라고 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경쟁은 필수적이었다. 모두가 '정상을 향한 질주(Race To The Top)'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학생과 교사는 늘 숨 가쁘게 달리는 생활을 해야 했다. 학업 시작 전의 아침학습을 위해 새벽시간 가파른 언덕길을 숨 가쁘게 오르기도 하고, 자율학습이나 도서관 자습을 위해 늦은 밤까지 학생들은 자기 자리를 지켰다.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했지만,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에 격려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성적 향상을 위해 애쓰는 학생들을 남산 위로 비상하는 새에 비유하여 이런 글을 썼다.

  
                    다람쥐 바람을 가르고
                    토끼 한 마리 적막을 깨뜨리는
                    상큼한 아침, 서울의 새벽을 깨우며
                    남산은 어둠 속에서 눈 뜬다.

                    아득한 하늘로 치솟고 싶어
                    온 종일 피리 부는 귀여운 넋들아      
                    길이 멀고 아득하여 끝이 없어도
                    산 너머 또 그 산 너머로 날아오르라  
                    지혜의 불씨 물고 날아오르라
                    순결의 불씨를 번뜩이는 남산 새야

                    천 년 묵묵히 검은 바위 안고
                    한강 물줄기 소용돌이 다스리며
                    침묵하는 산, 그 숨은 내력을 헤아리며
                    한 음보씩 올라가는 악보처럼
                    나무와 나무 위로 높은 하늘 아래
                    가파른 산정 오르며 커가는 마음

                    햇살이 머리 위에서 부서지며
                    빈 가슴에 오색 꽃씨를 뿌리는데
                    땀을 식히는 서늘한 바람은
                    순금(純金)의 언어로 이미를 닦는다.

                    아득한 하늘로 치솟고 싶어
                    온 종일 피리 부는 귀여운 넋들아,
                    길이 멀고 아득하여 끝이 없어도
                    산 너머 또 그 산 그 너머로 날아 오르라.
                    지혜의 불씨 물고 날아오르라

                    새벽 빛 속에서 처음의 빛으로 태어나는
                    순결의 부리를 번뜩이는 남산 새야.



   <남산에 둥지 틀고>의 전문이다. 어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산을 오르는 학생들, 그들은 분명히 지혜의 불씨 물고, 순결의 불씨 물고 날아오르는 새들과 같았다. 아무리 힘들고 험한 과정이라 해도 순금(純金)의 언어로 빛날 내일을 위하여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 교사인 나로서는 때로 애처롭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산정을 향하며 함께 달렸다. 나는 담임을 맡아 수년 동안 진학지도에 전념하다가 연구부장(2년), 교무부장(4년)을 거쳐 교감의 중책을 맡았다. 교감이라는 직책은 학교 행정과 관리를 하는 자리여서 수업하기를 좋아한 나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왜냐 하면 진정한 교육은 교실에서 학생들과의 만나 희로애락을 같이함으로서 성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교의 뜻을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교감직을 수락했고, 4년째 학교의 사정에 의하여 2년간 교장직무대리까지 맡아야 했다.  

   그 후 나는 다시 중학교 교장(1987~1994)으로 발령을 받고 8년간 재임했다. 그 때는 본격적인 행정가로서 교육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사조직을 정비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때였다. 당시 모든 중학교는 국고 지원을 받고 있어서 사립학교에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하여 고등학교의 고령자(고호봉) 교사를 대부분 중학교로 전보시켰다. 우리 학교도 형편이 마찬가지여서 나는 중학교 전체 교사의 평균 연령이나 평균 호봉면에서 중간 정도였다. 다시 말하면 나이 많은 어른들을 모셔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주변으로부터 온건하고 합리적이란 평을 받고 있던 나는 겸손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화합하며 상대적으로 처지기 쉬운 교육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힘을 기울였다. 구성원들 간의 긴밀한 소통을 통하여 교직원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사기를 진작시키고 의욕을 높이기 위해 교사의 해외연수를 시행하기도 했다.

   임기를 두 차례 연임한 나는 고등학교 교장을 맡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에 비하면 늘 그랬듯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중학교처럼 느긋하거나 여유를 부릴 시간이 별로 없었다. 대학 진학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항상 눈코 뜰 사이 없이 분주했다. 목표를 제시하고, 인재를 배치하고, 독려하고, 평가를 통해 성과를 점검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나름대로 수준에 맞는 교재를 개발하여 제작하고, 단계별수업을 실시하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조기과 운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갔다. 노력하는 만큼 학생들의 호응도 높아지고 입시 성적도 향상되었다.

   이러한 개선은 수업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학생활동에서도 획기적으로 방향을 전환해 나갔다. 수학여행과 수련회도 고정된 장소에 로 떠나는 획일적인 방법을 벗어나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서 지역을 정하고 학급별로 시행하는 소규모 테마여행으로 자율화했다. 종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특활반수련회도 신설했다. 자율화, 다양화 추세에 맞춰 능동적, 자기주도적으로 이끌어보자는 의도로 발상을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형편에서는 대수술이었고 교육의 방향을 바꾸는 일로 다른 학교들을 선도해 나가는 처지가 되었다. 학교장이 교직원과 머리를 맛대고 협의하는 대토론을 거쳐 수립했고, 계획과 진행에 있어서 학생의 참여를 필수로 하였다.  

   방학 중에 실시한 교사의 해외연수 여행은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다. 글로벌 시대에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살아가는 세계인의 역사와 삶의 모습 등을 배우고 익히는 것은 안목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근무 의욕을 높이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동질감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교과별로 나누어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여기에 희망하는 다른 교과의 선생님들이 같이 참여했다. 일본, 중국은 물론 멀리는 동남아, 인도, 호주, 터키, 유럽 지역으로 확대해 나갔다. 경비의 절반을 학교에서 지원하고 절반은 본인이 부담했지만 모두들 만족했다.  
  
   교육의 한 길에서 묵묵히 지켜온 세월이 무려 35년, 길고 긴 여정에서 나는 호흡을 같이 해준 동료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먼동이 트는 이른 새벽, 새벽 수업을 위하여 달려오는 아이들을 위하여 그들은 산정에 오르는 기분으로 남산 언덕을 올랐다. 목표를 향하여 숨 가쁘게 달려와 열정을 쏟아내던 선생님들이었기에 나는 재임기간 너무도 행복했다.    

        
                    어둠이 슬금슬금 떠나고
                    별들도 빛을 거두는 시간

                    잠에서 깨어난 목멱이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뜰 때
                    가쁜 숨 몰아쉬며
                    우린 함께 산길을 올랐지

                    산정에 올라 높은 음정으로
                    웅지의 나래 펴던 수많은 날들
                    그 기상(氣象), 그 열정으로
                    온 누리 불 밝힌 우리들 세상

                    풍상 섞어 치고
                    눈보라 살을 에는 차가운 날에도
                    다부진 얼굴은 언제나
                    눈동자 반짝이고 있었지

                    변치 않는 사랑으로
                    내일을 갈고 닦으며
                    영원히 번뜩여 살아갈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함께 있을 땐
                    무심히 보아 넘긴 한 줄기 햇빛이
                    이토록 어여쁜 그리움으로
                    노래하게 될 줄이야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목청껏 불러본다
                    우리는 정말 사랑했노라고
                    그래서 지금도 사랑하노라고.

        


     졸작 <사랑하는 나의 사람>의 전문이다. 나는 숭의를 빛낸 나의 동역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글 속에 담아보았다.
남산 중턱에 있는 숭의여고 자리는 일제 시대 경성신사가 있었던 곳이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했던 자리에 우상을 허물고 의(義)를 높이는 학교를 세웠다. 신앙과 민족정기로 무장된 선생님들은 내일을 밝히는 진정한 교사로서 학생들을 위하여 열정을 불태웠다. 이런 열정 속에서 학생들은 교육을 받았다.

   성서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시편 126편 5절)”라는 말이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교육자는 눈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함께 기뻐하며 환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둥켜안고 함께 울기도 했다. 그 눈물로 남산 기슭에는 봄철이면 유난히 많은 꽃이 피었다. 신입생이 들어오고 학년이 바뀌는 이른 봄날에는 무엇보다 먼저 노란 개나리꽃이 산천을 노랗게 바꾸어 놓는다. 이어 진달래꽃, 벚꽃, 아카시아가 피었다. 어느 것 하나 눈물 없이 핀 꽃은 없을 것이다. 엄동설한의 추위를 딛고, 가지마다 새 생명으로 피어나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나는 <개나리>를 소재로 내가 정성을 쏟았던 날들을 회고 하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靑春)이 꽃 되어  
                    아지랑이 언덕에 이처럼 피었나니    
                    그날 한 소절로 꺾이던 내 젊은 절규(絶叫)는  
                    불붙는 열정으로 뽑아낸 진액(津液)처럼
                    해마다 이 남산에
                    노랗게 노랗게 겹겹이 피기로
                    그대 위해선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이 피워낸 꽃!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 예쁜 꽃에 겹쳐져 환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어디 개나리뿐이랴! 어떤 얼굴은 진달래로, 어떤 얼굴은 벚꽃으로, 또 어떤 얼굴은 아카시아 꽃으로 보였다. 4월 중순, 꽃이 절정에 이르는 날, 우리는 수업을 제쳐두고 학생들과 함께 “남산꽃길걷기”라는 이름으로 남산꽃길을 걷는 행사를 진행했다. 1, 2학년이 서로 다른 코스로 정산에 올라 팔각정 앞 계단 뜰에 모여 복음성가와 숭의찬가를 목이 터져라 불렀다. 숭의만이 할 수 있는 멋진 행사였다.

  더욱 감사한 것은 백성학 회장이 학교법인 숭의학원을 인수, 경영하게 되면서 학원의 숙원사업이던 교육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백회장은 학원을 인수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즉시 학원의 우선 사업으로 비좁은 교육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외교구락부 자리의 땅을 매입하고, 또 대방동에 학교부지를 마련하여 중고등학교를 신축 이전하는 대사업을 진행했다. 이로써 중고등학교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고, 남산의 건물은 숭의초등학교와 숭의여자대학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강한 리더십과 미래 비전이 일구어 낸 결과물이었다.

   백성학 회장은 기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전세계 14개 생산 거점과 12개 판매법인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 영안모자를 모기업으로 하여 국내에도 큰 사업들을 추진하면서 인생에서 두 가지 신조- 자신이 번 돈의 20%는 무조건 다시 사회에 기부한다는 것과 은행돈은 결국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가급적 쓰지 않고 절대로 축내지도 않는다는 자세로 숭의학원을 인수한 것이다. 또 그는 어머니를 기리는 교회를 지어 이화여자대학에 기부하기도 하고 독립 기념관을 지을 때는 5억원을 쾌척하기도 했으며, 경인방송(OBS)의 대주주로 공익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나는 당시 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백성학 이사장을 도와 대방동 부지에 학교건물의 설계와 건축하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대역사를 이루는 일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이 일을 마지막으로 나는 현직에서 물러났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모두가 감사뿐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대로 교사의 길을 걷게 하셨고, 그것도 교육을 통하여 선교를 할 수 있도록 기독교 학교로 인도해 주셨다. 어디 그 뿐인가?  장로교 계통 학교에서 감리교 출신인 나를 학교 책임자로 일하게 하셨다. 몇 차례에 걸쳐 재단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재단의 어른들은 나를 학교의 관리 경영 책임자로서 신임했던 것이다. 편협한 교단 위주의 사고가 만연된 우리의 현실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음에도 하나님은 나를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또 몇 번의 고비를 겪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의 팔을 놓지 않으셨다. 그 동안 나를 도와 교육의 길을 함께 걸어간 동행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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