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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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교육, 어렵지만 보석을 캐는 작업 
                                               

                                      교육, 어렵지만 보석을 캐는 작업



              
                                            * 학생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는 장면 *



  김정환의 『한국교육이야기 백 가지』라는 책에는 교직에는 네 가지 슬픔이 있다고 했다. 첫째, 전문적인 건 맞는데 전문직 대우를 받지 못한다. 둘째, 받는 돈은 겨우 집 살림을 꾸려갈 정도다. 셋째, 노력한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아 성취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넷째, 열심히 가르쳐 봐야 입신출세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교직은 그리 선호할 직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교직을 내 적성에도 맞고, 그만큼 보람과 가치가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주저하지 않고 평생의 직업으로 선택했다. 큰 포부를 안고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지 5년째 되는 해, 나는 한 동안 무기력증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의욕이 떨어지면서 교직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적인 대우를 받지 못해서도 아니고 월급이 적어서도 아니었다. 더구나 출세를 못해서도 아니었다. 이런 것은 이미 교직에 들어오면서 각오했던 터라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네 가지 ‘교직의 슬픔’ 중에서 세 번째인 “노력한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아 성취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었던 것이다.

  직접적인 발단은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발생한 사건에 있었다.  나는 다른 반 수업을 끝내고 종례를 위해 교실에 들어가 보니 학생들이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누군가 마지막 시간이 휴강이라고 거짓 유포한 말을 듣고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무단으로 하교하고 남은 학생들만 수업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일시에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정성과 애정을 쏟았던 아이들에게 여지없이 배반당한 느낌이었다. 설령 마지막 시간이 휴강이라 하더라도 별도의 지시를 받고 돌아가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나는 무단으로 조퇴한 학생의 명단을 확인하고, 다음날 잘못한 학생들이 찾아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사과하면 잘못을 꾸짖는 정도에서 해결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다음날 한 사람도 찾아와 사과하는 학생이 없었다. 아마도 혼날 것이 분명하므로 감히 찾아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드디어 종례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굳은 얼굴로 무단 조퇴한 이이들을 크게 꾸짖고 조퇴로 처리하겠다는 내용을 선포했다. 얼굴을 들지 못하는 녀석들은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았으나, 어떤 녀석들은 고개를 곧게 세우고 꾸짖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교사로서의 허탈감,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최초의 사건으로 “이 길을 계속 가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의 심경을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동인지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었다.


  “교단에 선 지 어느덧 5년이 되었다. 그야말로 초년생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님이 그러했듯이, 황폐한 밭을 가는, 그래서 씨를 뿌리는 소박하고 성실한 농부이고자 했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로서가 아니라, 남과 함께 울고 웃을 줄 아는, 향기 짙은 마음들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거친 마음의 밭에 예쁘게 피어나는 꽃을 반기고 싶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내 마음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낙관도 비관도 아니면서 나는 그저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 내부에 독버섯처럼 돋고 있는 타성과 불신과 개인주의와 그리고 고발과 ……  이 거대한 세력 앞에서 나는 초라하고 무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같으면서 허물어져 내리는 저 내부. 가르침의 어휘 같은 건 한낱 오발탄이 되는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증발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은 자포자기요, 좌절감이요, 허탈감이었다.” (『紀元』4호「가을날의 산책」중에서)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이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왔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는 내 얘기를 듣고 “내가 낳은 자식 교육도 힘든데, 남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렇게 쉬울 줄 알았느냐?”며 더 인내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내 마은에 깃들기 시작한 허탈감과 좌절감은 그리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제자가 보내준 한 통의 편지였다. 스승의 날을 맞아 감사의 뜻과 함께 한 편의 시를 적고 자신도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다짐을 담은 것이었다. 그 시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분 계셨으면 / 객지의 어느 쓸쓸한 길모퉁이 돌다가 / 생업에, 낯선 사람들에 시달리다가 / 문득 가슴 넘치는 안온함으로 / 떠올릴 수 있는 선생님 // 시외버스로 두어 시간이면 / 달려갈 수 있는 동네 / 사립문 활짝 열려 있고 / 늦도록 남폿불 내걸려 있는 집 / 그리운 흙냄새와 낯익은 풀꽃들 / 서리서리 벌레 울음도 / 가슴가득 품고 계신 분 / 내게 그런 선생님 한분 계셨으면 // 또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 그런 선생님이 되었으면”

  이 시는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배움의 길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좋은 인연을 맺기를 원하고, 교사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할 때 진정한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그래야만 살만한 세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시였다.

  나는 번적 정신이 들었다. 교육이라는 것이 당장 눈앞에 성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너무나 안이했고, 낙관적이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져 헤아나질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가리켜 ‘바람직한 인간 형성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인격과 품성이 변화하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엄청난 수고의 땀과 인내, 그리고 눈물까지도 지불해야 하는데,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르고 난 뒤에, 나는 진정한 교사라면 김춘수(金春洙) 시인의 <꽃>이란 시를 삶의 철학으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바람직한 교육의 행위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을 의미를 갖춘 ‘꽃’으로 변형시키는 오묘한 행위와 다름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시에는 애매모호한 몸짓으로부터 의미 있는 존재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그 누가 그 이름을 명명(命名)해 줄 때에라야 가능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여시서  ‘그’를 학생으로, ‘나’를 교사로 대치시킨다면, 교사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학생들을 ‘빛깔과 향기’를 갖춘 ‘꽃’으로 만들기 위하여 학생들을 호명(呼名)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꽃이 피는 개화의 과정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서 보듯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울고, 젊은 날 뒤안길의 방황을 거쳐야 하고, 꽃이 피는 순간에는 무서리가 내리는 불면(不眠)의 밤을 겪어야 하는, 번뇌와 시련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것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생명의 교감(交感)에서 겪는 내적 고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사와 학생은 궁극적으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로 관계를 맺게 될 때 바람직한 교육의 성과는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교육의 과정은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사업(?)일지라도 그것은 빛나는 보석을 캐는 작업이라는 사실 하나만은 끝까지 부인할 수 없었다. 이 변하지 않은 믿음으로 나는 교육의 길을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오월 햇살처럼 / 여울져 흐르는 세월의 강물에
        반짝이며 떠오르는 고운 이름 / 하나 있습니다.
  
        꿈으로 출렁이며 비상하다 / 환희의 절정에서 환호하기도 하고
        때로 가슴 가득 와락 눈물 솟구쳐 / 가슴에 묻은 바위 같은 절망에
        흐느끼기도 하고

        지난 세월 아름아름 / 헤아려 보는 내 눈가에
        출렁이는 강물 따라 은파(銀波)처럼 / 밀려오는 얼굴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 때로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했지만
        그 이름 새삼스레 부르지 않아도 / 내 가슴에 오롯이 뜨는 별 하나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못 다한 손길 부끄러워 / 온몸을 휘감아 도는 아픔이
        자욱한 한숨이 되어 / 내 가슴에 저려오지만

        세월이 지난 먼 훗날 / 아련한 꿈속의 그 이름
        내 가슴에 눈부신 보석이 되어 / 오월 햇살처럼 빛날 것입니다



<그 이름 보석이 되어>의 전문이다. 그렇다. 교육의 길은 “온몸을 휘감아 도는 아픔이 / 자욱한 한숨이 되어 / 내 가슴에 저려오는” 과정이지만 그것은 분명 보석을 캐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세월이 지난 먼 훗날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서 반짝일 보석을 위하여 지불한 내 인생, 그 보석으로 하여 나는 늘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카고동문회 임원들과 박현숙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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