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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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교조 유감(有感) 


                                                      전교조 유감(有感)

                                                 - 교육자는 노동자가 될 수 없다 -


    


  고등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 “어떤 직업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선생님과 학생들 앞에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첫째는 성직자(목사), 둘째는 교사, 셋째는 변호사, 넷째는 의사라고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말한 데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성직자는 인간의 영혼(정신을 포함하여)을 이끄는 사람이며, 둘째 교사는 영혼을 이끌지는 못해도 적어도 사람됨(인격)을 가르치고 책임지는 사람이며, 셋째 의사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 인격과는 무관하나 적어도 인간의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사람이며, 넷째 변호사는 변론을 통하여 억울한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어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한 것은 내가 받아온 교육과 자란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므로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어릴 적 나는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으며 가르침이란 중요한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은 셈이다. 자나 깨나 뛰어놀던 곳이 학교의 운동장이었고, 시작과 끝을 알리는 수업시간의 종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런가 하면 어려서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으며 그 영향권 안에서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성장했던 것이다. 교회는 사랑과 용서가 있고, 값진 희생이 있는 곳이며, 피난처인 동시에 구원의 장소였다. 그리고 미래의 꿈을 바라볼 수 있는 거룩한 장소였다. 가치관이 형성되는 소년시절에 받은 기독교 교육은 내게 인생관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신학대학으로 진학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원서를 작성하는 마지막 고비에서 담임선생님의 강력한 권고로 방향이 바뀌기는 했으나 그런 생각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다.  

누구나 직업 선택을 앞두고 고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때 제일 먼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과연 어떤 직업이 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내가 직업 선택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내가 가진 특성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내가 가진 특성이란 가치관, 흥미, 적성, 능력 등을 종합한 결정체로서의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장래성, 안정성, 직업과 관련한 수입, 지명도 등이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대학 졸업과 병역의무를 마치고 직업을 선택할 때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교직(敎職)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문과 대학을 졸업한 자로서 목사(사역자)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사의 길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전문기관을 통하여 적성검사를 실시해 본 것도 아니지만, 대학 재학 중 교직과목을 이수할 때부터 교직은 잠재적인 직업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길은 내 적성에도 맞는다고 믿고 있었다. 더구나 장자로서 선친의 직업을 계승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선친께서는 초등학교 교사로 종사하시다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젊은 나이에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순직하셨기에 그 사실이 나에게는 못내 아쉬움이었고, 따라서 의무감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교직을 성직(聖職)으로서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교직을 신성시하여 성직(聖職) 혹은 천직(天職)이라고 표현하는 일이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든가 사도(師道)를 강조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교직은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고도의 정신적 봉사활동으로서 돈, 명예, 권력 등 세속적 욕망을 절제하고 사랑과 희생, 명예와 권위를 중시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교사는 지적인 능력만을 향상시키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전문가가 아니라, 학생의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인격 향상을 주도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젊은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교직에 들어섰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의 진리 위에 세운 기독교학교로 나를 인도해 주셨다. 기독교학교는 일반적으로 교육을 통한 선교와 아울러 기독교적인 인간관, 즉 사랑과 희생과 봉사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그런데 나에게 첫 번으로 주어진 숭실고등학교는 투철한 기독교 정신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단호히 맞서서 폐교를 당한 아픈 역사를 가진 학교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근무했던 두 번째 학교인 숭의여자중․고등학교도 그랬다.

그 길에 들어서면서 나는 교직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자세, 바른 교직관을 갖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노트에 적어놓은 구체적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적 인간 육성을 위하여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하자(사명에 충실한 교사)  
  둘째, 목표 실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애정과 정열을 꽃피우자(헌신적인 교사)
  셋째, 보상을 구하기보다 먼저 학생들의 유익을 생각하자(깨끗한 교사)
  넷째, 학생 앞에 군림하지 말고,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해결하자(섬기는 교사)
  다섯째, 교사다운 인격, 고도의 윤리성,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자(실력 있는 교사)


  마치 전장에 출장하는 병사처럼 비장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교직을 수행하면서 적어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나 자신과 약속하고 싶었던 것이다. 교직의 길은 누가 뭐라 해도  ‘사람됨’의 궁극적 가치 실현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에 나의 태도는 자못 결연했다. 이 목표 앞에서 스스로 다짐한 것은 말로만의 구호가 아니라 솔선수범이었다. 모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성실해야 하고, 때로는 인내하며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절대적 신뢰와 존경심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은 교직 생활에 있어서 줄곧 나의 긍지요, 자부심이었으며, 그래서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교직 사회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교원노조(전교조)를 합법화하면서 교육이 황폐해진 것이다. 교사 자신이 이해관계에 의해 노동자를 자처한 것도 잘못이지만,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한 것 또한 정책적인 과오가 아닐 수 없다.  교사가 노동자로 전락하는 순간 교육 본연의 숭고성은 그 빛을 잃게 된 것이다. 교사는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등에 의하여 신분이 보장되고 퇴직 후에는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교원연금을 받는다. 이런 마당에 교원노조의 합법화는 왜 필요한가. 우리 사회가 교사를 특별히 우대하는 데에는 교사를 일반 노동자와 다르게 보는 전통적 가치관이 반영돼 있었다. 법률로 특별한 지위를 보장 받는 마당에 사실상 근로조건을 놓고 사용자(정부)와 크게 싸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교육은 본질상 교육적인 권위와 존경 위에서 가능한 행위요, 그렇게 될 때 교육은 본연의 빛을 발휘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상호 존중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익을 주장하는 일부 집단에 아부하여 노동자임을 자처하는 자들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 과연 바른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교원노조의 합법화를 허용한다면 전교조 교사에게 교사로서의 특별한 지위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동시에 허용하지 말았어야 옳다.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 없는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려고 해서는 더욱 안 된다. 그리고 전교조는 자기의 구미에 맞지 않는 대학입시의 개혁, 교육 개방, 교원평가, 사립학교법 개정 같은 현안에서 교육 당국의 상전 노릇을 하려는 것도 잘못이다. 나아가 전교조 교사가 노동자임을 스스로 선언했다면 소위 철밥통을 깨고 일반 노동자처럼 임용계약, 정리해고, 변형근로를 받아들여야 옳지 않은가.

  하나의 예를 들어 정부가 실시하려는 교원평가 제도만 해도 그렇다. 학생의 수업 만족도, 학부모의 자녀 학교생활 만족도 조사와 동료 교사의 평가를 통하여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정책을 전교조에서는 못 받겠다며 아우성인 것이다. 남을 평가하면서 나는 평가 받지 않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교육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단 말인가. 교원에게 지급하는 성과급도 차등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그 철폐를 주장한다. 그것은 치열한 연구 의욕을 배제하고 안이하게 교직을 수행하겠다는 발상에 불과하다. “고인 물은 썪는다”는 말이 있듯이 교사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더욱 우려하는 것은 전교조의 일부 강성 그룹에서 실시하는 교육 내용이다. 사리분별이 분명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편행적인 이념을 가르치고, 그 이념의 프리즘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전교조의 일부 강성 그룹은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변혁 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는다. 많은 학부모가 일부 교사의 친북 좌편향 교육 내용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만약 이런 교육이 뭐가 잘못이냐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념적 편향교육을 통하여 사회를 변혁하려 한다는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 전교조 가담자는 교사인지, 노동자인지, 사회변혁 운동가인지 그 정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자녀를 맡긴 학부모의 권리다. 학부모는 누가 진정한 교육자이며,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지 자기 자녀를 위하여, 또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그 진위를 가려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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