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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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알몸 불고기 파티, 남이섬에서의 하룻밤 
                                           

                                          알몸 불고기 파티  

                         
                                 - 낭만의 꿈은 빗줄기에 사라지고 -


           
                              


  1972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방학 중이라 해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방과 후 학교처럼 보충수업이 있을 때였다. 찌는 듯한 더위, 냉방 시설도 없는 교실에서 50여 명의 학생들과 수업을 한다는 것은 고역 중의 고역이었다. 이 때 기발한 발상을 하기로 정평이 난, 같은 교과의 김희보 선생이 나에게 제의를 해왔다. 보충수업이 끝나는 날, 남이섬으로 단 둘이 낭만 여행을 가자는 것이었다. 모든 준비는 자신이 다 하겠다는 것이다. 마침 보름날이고 하니 달 밝은 밤, 남이섬의 푸른 잔디밭에 앉아 숯불에 불고기를 구우며 파티를 하자는 제법 낭만적(?)인 계획이었다. 나는 여름 더위에 지친 피로도 풀 겸 멋진 하룻밤의 낭만을 연상하며 흔쾌히 승락했다.   

  해방감이랄까, 호방함이랄까, 아니면 멋진 낭만에 대한 기대감이었을까? 집을 떠나 낯선 장소에서 그것도 호젓한 밤에 펼칠 파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며칠 전부터 흥분이 되었다. 유명 관광지에서 그것도 밤하늘엔 휘영청 달이 뜰 것이고, 보석처럼 박힌 수많은 별들이 수놓을 하늘을 상상하면 그만한 풍류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중국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소동파(蘇東坡)도 ‘적벽부(赤壁賦)’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풍류를 즐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떠나기 하루 전날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장대비가 쏟아진 것이다. 이 비는 하루 종일 계속되더니 떠나기로 한 날 아침까지도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니, 바람까지 불어 기세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계획을 수정할 것인가에 대해 의론하다가 오기가 발동하여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상봉버스터미널에서 가평행 버스를 탔다.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변했다. 가평에서 남이섬으로 향하는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선장에는 남이섬을 빠져나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남이섬으로 들어가는 배에는 선장 외에 고작 승객이 세 사람뿐이었다. 우리 두 사람 외에 한 사람은 남이섬에서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선장이 이상하다는 듯 우리를 쳐다보며  “물난리를 피해 모두 빠져나갔는데, 무엇하러 들어가느냐?”고 물었다. “낭만을 즐기러 갑니다.”했더니, 선장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김 선생과 나는 배에서 내려서 섬에 하나뿐인 숙소(여관)로 향했다. 거센 바람과 함께 쏟아 붓는 빗줄기에는 우산도 무용지물이었다. 한 손은 우산을 받쳐 얼굴만 가리고, 다른 한 손은 물에 빠진 신발을 벗어들고 양말발로 질퍽한 잔디밭을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때 잔디밭을 걸으며 마치 양탄자를 밟는 느낌처럼 감촉이 폭신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미친 녀석들’이라고 비웃었을 것이 분명했다.  

  방 배정을 받은 우리는 젖은 옷을 말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상하의를 모두 벗어 물기를 짜서 방안 옷걸이에 널었다. 둘이는 웃통도 벗은 채 팬티 차림으로 방 안에 자리 잡고 앉은 뒤에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참동안 웃었다. 이 무슨 꼴이람!  꿈꾸었던 낭만은 허망하게 날아갔지만, 급한 대로 시장기를 해결하기로 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한 우리는 몹시 배가 고팠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방안에서 화덕에 숯불을 피웠다. 굳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웬만한 것은 양해되는 형국이니까. 숯불을 피웠으나 물에 젖은 숯은 쉽게 타오르지 않았다. 간신히 불을 붙여 그 위에 양념을 한 불고기를 얹었다. 자욱한 연기와 냄새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떼의 여자들이 열린 창문으로 방안의 광경을 들여다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들은 근처의 별장식 오두막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들은 빗줄기를 피해 추녀 밑으로 지나가다 희한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중년의 사내들이 방안에서 팬티만 입고 앉아 고기를 굽고 있으니 어찌 가관이 아니었겠는가. 나중에 알았지만 이들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 전공 학생들로 지도교수와 함께 휴양차 이곳에 온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식사를 끝내고 숙소인 오두막으로 가는 길에도 고개를 들이밀고 마치 동물원의 동물 구경하듯 우리를 보고 낄낄거렸다. 어쩌다가 우리가 동물원의 동물 처지가 되었는지 한심스러웠다.  

  밤이 되었지만 빗줄기는 가라앉지 않고 더욱 강하고 거칠게 쏟아졌다. 마치 하늘이 뚫리고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형국이라 할까. 어설픈 불고기파티를 끝내고 내일 이 섬을 떠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는데, 조금 전 비를 피해 여관으로 대피해 온 고등학생 몇 명이 우리 방 앞에서 기웃거리며 “아저씨, 먹을 것 좀 얻을 수 있어요?”하고 물어왔다. 그들은 5일 전부터 남이섬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는데 물이 바닥까지 차올라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여관으로 긴급 대피한 학생들이었다. 가져온 양식은 이미 바닥이 났고, 남이섬 내 매점에도 식재료나 빵, 라면 등이 동나 살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 우리가 먹을 최소의 분량만 남기고 빵과 과일을 모두 내주었다. 그들은 연거푸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밤이 깊어지면서 우리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뉴스에 의하면 계속 쏟아지는 비로 한강 수위가 높아져 잠수교는 침수된 지 오래고, 서울의 저지대 여러 곳이 침수되어 많은 주택들이 잠겼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내일 아침 이곳을 빠져나갈 일도 급하지만 서울 저지대인 응봉동에 있는 우리 집이 무사할까 걱정이 되었다. 응봉동으로 이사 오기 전 행당동에 살 때에도 비가 좀 심하게 오면 개천물이 하수도로 역류하여 방에 침수되어 가구들이 물에 잠기곤 했는데, 응봉동마저 침수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청해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이 가까워 겨우 잠이 들었는데 난데없는 고함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여관 주인이 노발대발 화를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밤사이 집 앞마당의 토끼장의 토끼들이 온데간데없이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어제 찾아왔던 학생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어젯밤 빵을 얻어먹고 난 뒤 우리에게 찾아와서 밤사이 거사(?)를 하자고 은근히 타진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거절했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고자질할 수도 없어 침묵했다. 결국 이 일은 여관집 주인의 호통에 학생들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실토하면서 나중에 배상을 하기로 하고 마무리되었다. 극한상황에 이르면 인간의 상식과 윤리 도덕도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끝낸 뒤 남이섬에서의 탈출을 위해 뭍으로 나가는 배가 뜰 수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했다. 남이섬이 물에 많이 잠겼다며 호들갑을 떨던 주인이 오후에야  그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심란한 생각에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오후에 들어서서 빗줄기가 약해지고 2시경 배를 운행한다는 연락이 왔다. 남이섬에 남아 있던 관광객들이 모두 배에 올랐다. 그들은 모두 마지막 피란민처럼 추레한 모습이었다. 엊저녁 우리의 알몸 불고기 파티를 목격했던 여대생들도, 토끼사냥으로 말썽을 일으킨 학생들도 끼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예상했던 대로 집 앞 낮은 지대는 완전히 침수되어 늘 다니던 아래쪽 길은 통행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뒤로 난 언덕길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와 보니 남이섬을 넘보던 흙탕물이 내 집 축대까지 와 있었다. 이 여행의 추억으로 나는 지금도 남이섬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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