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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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화답시(和答詩), ‘진정 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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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답시(和答詩), ‘진정 아름다운 사람’



  시를 공부할 때 우리는 가끔 화답시를 발견한다. 일찍이 중국 송대 시인들은 정규적으로 모임을 갖고 한 주제나 글자를 미리 정해 놓고 번갈아 가며 화답하는 형식으로 시를 지어 불렀고, 우리 시에도 화답하는 형태의 시를 가끔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말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대한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시를 통하여 화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뜻을 전했다. 정도전과 함께 아버지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왕조를 열고자 한 이방원은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 세우고자 고려 말의 학자요 충신인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하여 <하여가>를 불렀다. 그러자 정몽주는 그에 화답하여 <단심가(丹心歌)>를 불러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화답시는 남녀간의 애정 표현에 있어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조선조의 임제(林梯)의 <한우가(寒雨歌)>에 대한 한우(寒雨)라는 기생의 시는 화답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서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 시의 작자인 임제는 조선시대 풍류시인으로 양반사대부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살았다. 호방한 성격과 속박을 싫어한 그는 평안부사로 부임하는 도중 기녀였던 황진이의 무덤 앞에 술 한 잔을 부어 놓고 시조 한 수를 지어 생전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한 감회를 읊어 파직 당한 일화도 있다. 그런 그가 한우(寒雨)라는 기녀와 주고받은 시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의 ‘찬비’는 표면적인 뜻 외에 기생 ‘한우’를 지칭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한우라는 기녀와 술을 마시던 임제는 이 시조를 지어 그녀의 마음을 은근히 떠보았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 어이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이 노래를 들은 한우 역시 한 편의 시로써 임제의 시에 화답하였다. 기생 한우는 곱디고운 손으로 열두 줄 가야금을 퉁기며 뜨겁고도 은근한 열정단심을 노래했던 것이다. 이만한 멋과 연심을 은근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시가가 동서고금에 또 있을까.  한편, 청록파 조지훈과 박목월도 화답시를 썼다. 조지훈이 <완화삼(玩花衫)>이란 작품을 박목월에게 지어 보낸 적이 있는데, 박목월은 이에 화답하여 <나그네>라는 시를 지어 조지훈에게 보냈다.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들리며 가노니 …    
            


   위의 시에서 '완화삼'은 본디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이지만, ‘꽃을 보고 즐기는(玩賞) 선비’ 로 보면 될 듯하다. 조지훈은 일제 말기의 어두운 현실에서 달랠 길 없는 민족의 정한을 나그네의 정서에 의탁하여 아름다운 시를 썼다. 이에 박목월은 <나그네>라는 시로 화답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은 이 시에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것은 <완화삼>의 "나그네 긴 소매 / 꽃잎에 젖어 / 술 익는 강마을의 / 저녁노을이여"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목월은 <완화삼>의 시어인 ‘나그네’와 ‘구름’과 ‘달’과 ‘강마을’과 ‘저녁노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다만 <완화삼>이 나그네의 구슬픈 우수를 더 드러내면서 가야 할 앞길의 정서적 거리를 '물길은 칠백 리'로 표현했다면, <나그네>에서는 표표히 '남도 삼백 리'의 길을 가는 나그네의 심사를 부각시켰다. 이처럼 이 두 시는 정서를 교류하면서 시인의 우정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정년을 앞두고 시집을 내면서 <마침표를 찍으며>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는 교직 생활을 돌아보며 후회스런 감회를 적은 것이었다.
  
      
          내 어설픈 35년 길
          고마운 손길들, 얼굴들 있어
          마냥 행복하였더니라.

          환한 내일 꿈꾸는 영혼을 위해  
          꽃망울 틔우는 아픔의 길이었지만  
          나의 ‘가갸거겨고교’는
          빈 하늘처럼 걸려 있는데

          새는 새소리로 노래하고
          바위는 침묵으로 말한다지만
          나는 무엇으로 노래하고
          무엇을 말해 왔는가.

          돌아보면
          내 노래는 산을 넘는 구름처럼
          한 때의 무슨 잠꼬대 같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의 가슴 후비는
          비수(匕首) 같기도 했는데

          내 숲은 여전히
          새 한 마리 깃들 그늘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먼지뿐 물 없는 모래밭 길

          그래도 이 길 쓸고 닦아
          꽃길로 장식하는 예쁜 마음들
          티끌 한 점 없는 사랑하는
          그대들아 용서하라

          그대들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 더 이상 욕되지 않기 위해서
          쉼표 아닌 마침표를 찍나니,

          그대 고운 이름 불러보며  
          내 마지막 말은 '감사합니다' 한 마디뿐

          그대들 있어
          나는 행복하였더니라.



   못다 이룬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 그러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정년을 코앞에 두고 국어과 선생님들이 주축을 이룬 터키 여행 중에 나는 뜻밖에도 여행팀이 베풀어준 정년퇴임 축하를 받게 되었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휴양지인 안탈랴 호텔 식당에 축하 현수막이 걸리고 오색 풍선을 매단 가운데 나와 내 아내의 머리에 고깔모자를 씌우고, 목에는 색종이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이것은 모두 서울에서 준비해온 것으로 호텔 측의 양해 아래 이루어진 것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박수를 보내는 가운데 나는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축배를 들고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그리고 나서 국어과 부장인 장경희 선생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축하시 <진정 아름다운 사람>을 낭독해 주었다. 그런데 그 시는 놀랍게도 <마침표를 찍으며>라는 내 시에 대한 화답시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비우는 일입니다.
           조그마한 씨앗을 틔워 꽃 피게 하는 것은
           더더구나 눈물겹고 고귀한 일입니다.

           고개만 들면 늘
           뭉클한 깨우침의 목멱(木覓) 교정에서
           영랑(永朗)의 마음으로 지훈(芝薰)의 서정으로
           힘차게 나는 날갯짓을 가르치던
           아름다운 사람

           종이배를 띄우는 섬마을 소년에서
           세상을 밝히는 등대지기 한결같은 선생님으로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행정가로
           만사를 기도로 시작하는 주님의 신실한 청지기로
           석우․경우의 든든한 아버지로
           묵묵히 걸어온 진정 아름다운 사람

           계단 하나 풀 한 포기도
           눈 감고 이내 그려낼 수 있는데
           당신의 ‘가갸거겨고교’는
           더욱 넓어지고 따뜻해져 가는데

           이제 그리움으로 불러봅니다.
           당신은 언제나
           숭의(崇義)의 자랑이라고.



   이 시의 “조그마한 씨앗을 틔워 꽃 피게 하는 것은 / 더더구나 눈물겹고 고귀한 일입니다.”는 구절은 “환한 내일 꿈꾸는 영혼을 위해 / 꽃망울 틔우는 아픔의 길이었지만”에 화답하는 구절이었고, “당신의 ‘가갸거겨고교’는 / 더욱 넓어지고 따뜻해져 가는데”라는 표현은 “나의 ‘가갸거겨고교’는 / 빈 하늘처럼 걸려 있는데”라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서 썼다. 선생님은 축하연에서 낭독하기 위하여 내 시에 대한 화답시를 손수 쓰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문단에 등단할 수 있는 시적 재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면서도 ‘나는 부족하다’는 말로 늘 겸손했던 분인데 보잘 것 없는 나의 삶에 과분한 평가를 해 주셨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한 권의 귀중한 사진첩을 선물로 받았다. 여행 중 우리 내외의 동정을 찍은 사진을 일정별로 정리하여 편집한 앨범이었다. 80쪽 사진첩 맨 앞장에는 이 시가 붙어 있다. 그리고 맨 뒤에는 내 독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을 잘 길러주시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으로 말이오. 사람 냄새가 그리운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오. 메마른 이 세상, 우린 사람으로 남읍시다.”

   내가 부탁하는 형식으로 된 이 말은 실은 부탁의 형식을 빌어 자신들이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가끔 이 사진첩을 꺼내들고 여행의 추억을 더듬어 보곤 한다. 여행에 함께 했던 선생님들, 특히 극진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던 국어과 선생님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국어과 교사이면서도 학교 살림살이를 맡았다는 이유로 오랜 동안 외도(?)를 해왔기 때문에 국어과 선생님들과 더 깊은 정을 나누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늘 국어과 선생님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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