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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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혜강(惠江)’이라는 호를 주신 장기천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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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무하시는 장기천 감독님 *



‘혜강(惠江)’이라는 호를 주신 장기천 감독님
                    


   1991년 나는 평소 존경하는 장기천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당시 목사님은 대한감리회 감독회장을 지내시고 동대문교회에서 시무하시고 계실 때였다. 편지는 내가 두 번째 시집인 「하늘을 꿈꾸는 새」를 출판하여 보내드린 것에 대한 답신이었다.


                남상학 시인에게
                나는 당신이 말하는 ‘나는’에서 다시 나 자신을 찾게 됩니다.
                나는 당신이 번뇌하는 ‘빌라도의 기도’에서
                오늘의 가야바들을 보게 됩니다.
                장로님, 시인으로서, 교사로서
                계속 나를 깨우쳐 주시고 나를 즐겁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리교도들 속에 당신이 있다는 것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목사님이 친필로 편지를 보내 주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해주신 것을 보면 작품을 하나하나 읽어보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다 분에 넘치는 격려를 주셨다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나는 이미 죄인이었네  

               서른세 살 당신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던 날
               나는 당신과 함께 죽었네
  
               그 날
               나의 죄는 죽고

               당신이 무덤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살았네
          
               내가 산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산 것

               주여, 이 몸은 영원히
               당신의 것이옵니다.


    
   <나는>이라는 시였다.  태어날 대부터 죄인이었던 나, 그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에 힘입어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을 신앙적으로 고백하는 글이었다. 그리고 <빌라도의 기도>은 빌라도가 군중의 동요를 두려워하여 아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대하여 사형선고를 내려 죽게 한 사건을 바탕으로 자신의 내적 고민을 적은 것이었다.  


               주여, 벌하지 마시옵소서.
               대야에 담긴 물에 손은 씻을 수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이 흐르는 핏속의 죄는
               끝내 씻을 수 없었나이다.
               광명한 대낮의 잘못된 판결이
               이 밤 악몽이 되어 눈앞을 맴돕니다.

               생명을 버리어
               생명 안에 참 생명을 가꾸시는 이
               당신의 크신 사랑 알지 못한 무지(無知)를
               가슴앓이 밤 새워 한탄하지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름 끼치는 아우성 소리 귓전에 맴돌 뿐

               타오르는 분노를 불 지르던 저들의 외침
               내 가슴에 번뇌의 불덩이로 타오르고
               소금밭보다 더 쓰리게 졸아드는 아픔으로
               곤고(困苦)한 영혼이
               어둠 속에 흐느끼는 촛불처럼 어지러이 흔들립니다.

               진실로 나 이대로 영원한 어둠 속에
               벌 받고 죽어야 옳음일 것을 마땅히 알건마는
               한 생명이라도 구원함이 당신 뜻이라면
               피 흘리는 어진 손길로 어루만져 주옵소서.

               아무 말씀 없이
               애련히 살피시는 주의 눈길
               아니 머무시면 차라리 이 목숨
               불살라 한 줌 재 되게 하옵소서
               다만 죄 없는 한 줌 재 되게 하옵소서

               하오나 주(主)여, 마지막 긍휼을 베푸시어
               제발 벌하지 마옵소서.

  

   장기천 목사님은 반독재 투쟁으로 사회 전체가 소용돌이쳤던 80년대 후반 대한감리회 17대 감독회장을 역임하시며 교단을 이끌었던 실천적 지도자였다. 그는 250만 신자를 이끄는 최고지도자로서 감리교 전성시대를 일궜던 분으로 언제나 예언자적 설교와 양심적 행보로 개혁적 목사들로부터 존경받았다.

  나는 언젠가 그 분이 쓰신 책을 읽다가 자신이 20대 후반 군목시절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군 시찰을 나왔을 때 3·15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예수의 복음을 사회 정의와 구원과 관련지은 설교로서 시대를 고민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큰 감화를 주곤 했다. 또 목사님은 세미나가 열린 자리에서 “전직감독에 대하여 어떻게 호칭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조금도 서슴지 않고 “목사로 호칭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빌라도의 기도>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목사님은 그 작품에서 ‘오늘의 가야바’를 보았던 것이다.  유대의 대제사장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대표적인 인물 가야바. 성서의 여러 곳을 종합하면 그는 종교 지도자이면서도 복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도리어 예수와 사도들을 핍박한 것으로 보아 권력에 대한 집착력이 매우 큰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기득권 유지를 위해 지위를 남용한 비양심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또 그는 군중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 한 것으로 보아 정치적 처세술에 밝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목사님의 눈에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부정을 일삼는 ‘오늘의 가야바’들이야말로 한심한 존재들로 보였을 것이다. 오늘의 종교계에도 가야바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답신을 주신 데 대해 전화로 감사의 말씀을 드렸더니 “언제 차 한 잔 하자”며 자신이 시무하는 동대문교회로 오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교계 어른에 대한 내 처신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데 나는 전화로 인사를 드리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잘못을 깨닫고 곧바로 목사님을 방문했다. 평소의 언행으로 보아 근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목사님은 퍽 인자한 분이셨다.

  미소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신 목사님은 왕십리교회에 대한 안부와 내 신상에 대해 물으시더니, 자신이 인상 깊게 읽었던 시 <나는>과 <벌하지 마시옵소서> 두 편을 화두로 올리셨다. 목사님은 <나는>이라는 작품 하나에 기독교적인 인간관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빌라도의 기도’라고 부제를 단 <벌하지 마시옵소서>에서는 빌라도의 참회와 그의 애절한 고백을 보면서, 정치적 계산을 앞세워 진리를 호도하는 가야바의 후예들이 오늘의 한국 종교계를 어지럽히고 있음을 개탄하셨다. 그러더니 목사님은 갑자기 “아호(雅號)가 있느냐?” 물으셨다.  “없다”고 대답했더니, 의아하게 생각하시고, '내가 아호를 지어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그 때까지 나는 아호를 가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호는 주로 이름 대신 사용하는 ‘별호’로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거나 예능에 능한 분들이 상호간 품격을 높여주면서 풍류를 즐기는 멋으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아호는 자기가 짓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요, 따라서 아랫사람이 그 사람의 아호를 부를 때는 그분을 높여서 혹은 멋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호를 가질만한 처지가 못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요즘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아호, 별호를 지어 남발하는 한심스런 세태를 보면서 속물(俗物들이나 하는 짓으로 여겨왔던 터였다.

  다만 딱 한 번, 대학 시절 고대신문 졸업특집호(제367호, 1964. 2. 22)「졸업유감(卒業有感)」코너에「<피날레의 지점에서>라는 수필을 발표하면서  불가피하게 ‘지심(池深)’이라는 필명을 임시로 사용한 것 외에는 없었다. 그 이유는 같은 호에 내 이름으로 평론을 게재하게 되었는데, 마침 청탁한 수필 원고가 펑크가 나서 긴급히 필요하다는 기자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급조된 것이었을 뿐 아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목사님이 지어주시겠다는 것이다. 교계 어른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목사님은 내 시집을 펴 보이시며 <종소리>라는 시를 읽어내려가셨다.



               눈을 뜨면
               맑은 빛으로
               이슬을 굴리는 바람

               밤새도록 산을 넘어와서
               새벽안개를 걷어내고
               온 누리 오색 꽃씨를 뿌리네

               주린 영혼의 창가에
               파도로 출렁이는
               당신의 음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어둠의 골방에
               나를 깨우며
               하얀 고독을 닦아내는
               은혜(恩惠)의 강이여!

               눈부신 아침마다
               가슴 속에 속삭이네.

                                                        -  <종소리> 전문




   여기서  ‘종소리’는 잠자는 영혼과 시대를 깨우는 상징어로 선택된 시어인데, 새벽마다  "어둠의 골방에 나를 깨우며 하얀 고독을 닦아내는 은혜(恩惠)의 강"으로 표현한 것이 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구절 가운데의 "은혜(恩惠)의 강"을 줄인 '혜강(惠江)'을 호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졸지에 큰 어른으로부터
'혜강(惠江)’이라는 아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후로도 나는 어느 누구에게 아호 ‘혜강(惠江)’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믿음이 부족한 나에게는 과분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07년 5월 7일,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자 나는 생각을 수정했다. 갑자기 그분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자전에세이 <아름다운 동행>을 엮으면서 비로소 아호를 얻게 된 과정과 함께 처음으로 '혜강'이라는 이름을  활자화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큰 별이셨던 장기천 감독님이 주신 아호 ‘혜강(惠江)’. 특별한 이름을 주신 분을 존경하는 의미에서라도 나는 살아가는 동안 ‘혜강(惠江)’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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