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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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연이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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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감나무



  어느 가을, 제법 큰 상자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묵직한 정도가 아니라 내가 쉽게 들 수 없는 무게였다. 수신인을 살펴보니 김문현 장로님이 태안에서 보내주신 것이었다. 상자 안에는 어른 주먹만한 감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순간 얼마 전 “금년에는 제대로 열렸다”고 하셨던 장로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김 장로님과 나는 같은 교회를 섬기는 동료 장로 사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관계를 떠나서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적으로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장로님과 나는 성격적으로 너무 대조적이어서 누가 보아도 그리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상이한 성격이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데 서로 배우고 보완하는 면에서 유리하고 좋았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개인의 취미생활, 가정문제, 신앙생활의 문제들을 터놓고 얘기하며 조언하며 필요한 지혜를 구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를테면 멘토로서의 관계하고나 할까.

  나는 김 장로님을 좋아한다. 내가 갖지 못한 요소들을 고스란히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평소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생각이 깊고 철학이 심오해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할 때에는 정연한 논리에 내가 항상 밀렸다. 더욱이 신앙생활에서 나는 장로님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산다. 매일매일 성경을 읽는 것과 철두철미한 기도 생활이 그것이다. 또 남을 위해 베풀고 나누어 주는 것도 그렇다. 나는 장로님이 벽촌이나 외딴 섬에서 고생하는 교역자들을 위하여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큼 사랑과 인정이 깊다.

  교회일을 하는 데도 장로님은 남과는 아주 달랐다. 덕현리에 있는 교회수양관의 식당이 좁아 증축하게 되었을 때도 그 일을 전문 업체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해냈다. 토목공사, 자재 구입, 인부를 사서 건축하는 전 과정을 현지에 상주하며 스스로 일꾼을 부려 그 일을 손수 해냈다. 교인들의 헌금을 귀하게 여겨 절약하겠다는 의도였다. 또 충주시 소해면 주치리에 개척교회를 세우는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책임자로 임명된 장로님은 개인의 일은 다 접어두고 서울의 가정을 떠나서 두 달 가까이 현지에 머물면서 그 일에 매달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신의 교통비, 식대는 물론 인부들을 격려하는 등 웬만한 경비는 자비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만큼 나누고 베푸는 생활에 익숙하다.      

  더구나 장로님은 자의식이 누구보다도 강하여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고, 사리분별이 명확하고, 결단력이 있다. 그리고 강한 추진력과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무언가 성취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 철두철미하고 단호하여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셨다. 허리가 좋지 않으면서도 한지에 먹을 갈아 붓으로 성경을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세상일에 어두워 어리숙하게 살아가는 나는 그런 장로님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장로님이 서울을 떠나 충청남도 태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은 바다가 빤히 바라보이는 곳으로 텃밭이 있는 농가였다. 구옥을 사서 깔끔하게 단장하고 앞뜰에는 잔디를 심고 울타리와 주변 공터를 일궈 사과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등 유실수를 심었다. 유실수는 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열매가 맺기 때문에 선호했다. 열매는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에게 주고,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텃밭에는 식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채소와 필요한 작물을 심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는 감, 자두, 고구마, 김장배추를 몇 차례나 실어온 적이 있다. 금년 봄에도 부인되는 황 권사님은 교회에서 쇼핑백 하나를 주고 가셨다. 쇼핑백 속에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들판이나 야산에서 손수 채취한 냉이, 더덕과 두릅이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했던가 장로님 부부가 다 그랬다.

  그것뿐이 아니다. 원래 바다를 좋아해서 거처도 바닷가로 정한 장로님은 소형 고깃배를 구입하여 심심하면 인근 바다로 나가 그물도 던졌다. 어려서 섬 생활을 10여 년간 했던 나로서는 장로님의 생활이 부러웠다. 장로님은 내가 부러워하는 것을 눈치 채고 가끔 백수가 되어 놀고 있는 나를 불러내려 배에 태워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게 했다. 잡은 생선은 이미 당신이 잡아놓은 것까지 포함하여 손수 손질하여 소금까지 쳐서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주셨다. 나는 그 동안 여러 차례 꽃게, 소라, 말린 생선 등 귀한 선물을 받았다. 안 가져가면 서울 오는 길에 무작정 실어다 주셨다. 나는 이렇게 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갚지를 못해 미안하다.  

  어느 해 봄, 장로님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공터가 남았으니, 몇 가지 유실수 묘목을 사 가지고 내려오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종로5가에 가서 어떤 묘목을 살 것인가 잠시 망설이다가 포도와 대추, 그리고 대봉 감나무 묘목을 골랐다. 그 중에서 감나무는 내가 좋아하는 나무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기차를 타고 풍기에 있는 희방사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희방사역 주변 마을은 노랗게 익은 감나무로 뒤덮여 있어서 이 색다른 풍경에 나는 발길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 때 단독으로 주택을 갖게 되면 뜰에 꼭 감나무를 심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감나무의 독특한 꽃과 윤기 나는 넓은 잎, 가을이면 가지에 주렁주렁 노랗게 익은 감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감나무는 일곱 가지 덕이 있다 하여 예로부터 예찬을 받아온 나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감나무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그늘이 짙으며,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다섯째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맛이 있으며, 일곱째 낙엽이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버릴 것이 하나 없이 좋은 나무라는 뜻이다. 또한 감나무는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을 하기에 좋으므로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 재료가 되기 때문에 무(武)가 있으며,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표리가 동일하므로 충(忠)이 있고, 노인이 치아가 없어도 홍시를 먹을 수 있어서 효(孝)가 있으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어서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5절을 갖춘 나무라고 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가을이면 남의 집 마당에 탐스럽게 익은 감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감나무의 여러 품종 중에서 이왕이면 알이 굵은 대봉을 골랐던 것이다. 나는 묘목을 사서 승용차에 실고 태안 김 장로님 댁으로 내려갔다. 장로님은 포도와 대추는 울타리 근처에 심고 감나무는 집 뒤 텃밭 모퉁이에 심어 주셨다. 그리고 장로님은 그 감나무를 ‘서연이 감나무’라 명명했다. 서연이는 내 첫 손녀딸 이름인데, ‘서연이의 출생을 기념하여 심은 나무’라는 뜻으로 붙여 주신 것이다. 참 아이디어도 기발하지만 우리 가정에 대한 각별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감나무를 심은 지 3년이 지나 장로님 댁을 방문해 보니 감나무는 제법 튼실하게 자라 있었다. 장로님은 그 동안 서연이 감나무에 회를 뜨고 남은 생선의 뼈와 내장 등 남은 찌꺼기들을 걸음이 된다며 서연이 감나무 주변에 땅을 파고 묻어주셨던 것이다. 감나무는 이렇게 장로님의 사랑과 정성을 먹으며 자랐다.  

  보내주신 감은 바로 서연이 감나무에서 딴 것이었다. 택배를 받고 전화를 드렸더니, 한 나무에 모양 좋은 감이 80여개나 열렸다는 것이다. 그 감을 모두 갈무리해서 보내신 것이다. 내가 가서 직접 실어와도 되는데 비싼 택배비까지 물면서 보낸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왜  잡수실 것을 남기지 않고 다 보냈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집을 비울 때가 많아 언제 손을 탈지도 모르고, 탐스럽게 익은 것이 너무 뿌듯해서 급한 마음에 택배 까지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잡수실 감은 다른 나무에서 충분히 수확하였다고 했다. 암튼 저토록 보기 좋고 맛이 있는 감은 장로님의 사랑과 정성으로 맺힌 것이다.
      
                          
                  택배로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와
                  따뜻한 정(情) 일깨우는
                  과육(果肉)에 배인 사랑의 무게
                  입 안 가득 스미는 단맛이  
                  내 혈관 깊숙이 따스한 온정으로 살아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네.

  

  나는 박스를 개봉하여 절반을 덜어 서연이 집으로 가져갔다. 서연이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듬뿍 사랑을 준 결과가 탐스런 감으로 열매 맺듯이, 서연이도 장로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날 서연이 가족은 한 자리에 앉아 김 장로님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감을 깎았다. 서연이는 ‘서연이감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두고두고 장로님의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서연이가 장성한 뒤에도 마음속에 사랑의 바이러스가 되어 훈훈하게 이웃에게 알게 모르게 전파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장로님 내외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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