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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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대이작도(大伊作島)에서의 봉사 활동 
     
       
                    
                                대이작도(大伊作島)에서의 봉사 활동



            



  우리나라 농촌 계몽운동은 한말 계몽운동에 역사적 배경을 두고 있다. 미개한 농민의 의식과 지식․기술 등을 계몽하거나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 통치에 항거, 독립 기반을 형성하기 위한 민족운동의 한 형태로 추진되었다. 이 시기의 농촌 계몽운동은 주로 식민교육의 내용에 대항하여 민족교육을 심화시키고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의한 교육 기회의 통제에 맞서 농촌의 교육적 환경을 확산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학교교육을 대신하는 야학운영, 문맹퇴치를 위한 성인교육 및 여성교육이 그 주요 활동이 되었고, 주로 밤 시간을 이용한 강연회·토론회·독서활동·야학활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때 전개된 농촌 계몽운동은 억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심훈의 소설《상록수(常綠樹)》의 작중 여주인공의 모델이었던 최용신은 1930년대 일제하 기독교 농촌 계몽운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광복 후에는 주로 학생 단체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농촌사회의 근대화를 목표로 추진되었는데, 학생단체는 농촌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농촌의 근대화를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동시에 농촌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였고, 종교단체는 선교와 봉사를 목적으로 진행하였다.

  왕십리감리교회 청년회가 농촌봉사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다소 뒤늦은 1962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자체 신앙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수련회로 진행하며 그와 병행하여 봉사활동을 하는 정도였다.  당시 청년회(회장 김동헌)에는 인천직할시 옹진군 자월면 이작리를 대상 지역으로 선정하고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7일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대이작도를 농촌 봉사 대상지로 선정된 이유는 우선 그곳이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딴섬였기 때문이다. 인천으로부터 44㎞, 면적 2.57㎢, 해안선길이 18㎞, 인구는 1백명 남짓한 작은 섬으로, 농토가 없어 생계를 바다에 의지하는 형편으로 겨울에는 인근 해안에서 굴을 따고 여름에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리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청년회 총무를 맡았던 내가 이 섬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연고 때문에 추천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나는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므로 학교 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현실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마을 이장과 학교로부터 동의를 받고 바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대원 모집과 프로그램 짜기, 각종 준비물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단원은 총 18명으로 결성되었고, 박인석 장로님(현 박용주 장로 조부)을 단장으로 모셨다. 남자로는 김동헌 회장을 비롯하여 방석종, 김수현, 김종세, 손영수, 송영우 , 남상학,  지석환, 박태남, 이주훈, 남상범 등 13명, 여자는 신승애, 김영주, 이종임, 이희자 등 5명이었다. 1주일 동안 진행할 프로그램은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확정했다. 그 내용은 여름성경학교를 비롯하여, 마을 공회당 개축, 도로 정비, 의료봉사, 어린이 머리깎기, 서적보급, 산아제한 강연, 세태풍자극, 영화상영 등을 진행하기로 하고 필요한 준비에 착수했다. 대원 중에는 신학대학생 지석환(지유), 의과대학생의 김수현, 약학대학생 이종임, 공과대학생 김종세, 사범학교( 현 교육대학)생 이희자, 남상범 등 전문적인 분야의 재학생이 분포되어 있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꾸밀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단원들에게 담당 임무를 부여하고, 각각 맡은 일을 준비하게 했다. 연극 공연은 각본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현지 주민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고 식사 당번도 짰다.  

  그리고 각종 준비물을 챙겼다. 교회의 보조 없이 자력으로 진행하는 일이므로 경비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자급자족을 해야 하므로 우선 먹을 식량과 부식을 마련하는 일, 여비 조달은 물론, 하기 성경학교 운영을 위한 용품과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학용품을 마련, 의료봉사에 사용할 약품 등을 최대한 충분히 확보하기 위하여 힘썼다. 약품 마련을 위하여 약품회사를 방문하고,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서적들을 구하려고  기독교서회와 그 밖의 출판사를 방문하여 어린이잡지 「학원」「새벗」「새가정」등 월간잡지를 비롯한 각종 서적 700여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준비과정에서 보여준 단원들은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인천으로 이동하여 여객선을 탔다. 각종 기자재를 비롯하여 서적, 용품, 쌀과 부식거리 등 짐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쾌속선으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에는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대부분의 대원은 처음으로 섬에 가보는 처지라 가는 동안 내내 지루한 줄도 모르고 갑판에 나와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봉사 활동을 하러 간다는 목적을 잃은 듯 배를 타는 것 자체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나와 동생은 누구보다도 벅찬 감격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나는 10년을 살아온 곳이고 동생은 태어나 자란 곳이어서 온갖 추억이 서린 곳이었다.  

  경적을 울리며 배가 닿은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코흘리개 어린애가 청년으로 성장하여 나타난 우리 형제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는 숙소로 사용할 학교로 향했다. 마을 앞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학교는 내가 다닐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교실은 모두 두 개, 남녀 숙소로 구별하여 짐을 풀고 도착예배를 드렸다. 이곳까지 오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한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했다. 미리 준비된 취사 시설을 이용하여 간단히 점심을 마련하여 해결하고 오후에는 마을을 돌며 우리가 할 일을 홍보하는 일로 보내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여름성경학교는 두 반으로 나누어 오전 중에 진행했다. 이미 이곳에는 10여 년 전에 복음이 전해져 믿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교회가 세워지지 못해 교회학교에서 공부하지 못한 어린들이라 호응이 아주 좋았다. 전체적인 모임이 끝나면 분반으로 나누어 공부하며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료식을 하는 날, 푸짐한 상품을 받은 아이들은 무척 기뻐했다. 노력 봉사를 하는 팀들은 도로를 정비하고 마을 앞 해변에 있는 마을회관을 보수했다. 흙을 이겨 무너진 벽을 바르는 일은 평소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의료 봉사팀은 매일 일정 시간을 정해 진료를 하고 약품을 나눠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했다. 의료 시설이 전무한 섬이어서 주민들이 매우 좋아했다. 산아제한을 주제로 한 세태를 풍자기도 했다. 그러나 준비해간 낡은 기자재가 말썽을 일으키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런데 닷새째 되는 날 오후였다. 수영을 좋아하는 김수현이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점심을 마치고 자유시간에 수영을 하겠다는 말을 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1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고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단원들은 물론 섬마을 주민들이 모여 걱정했다. 대이작도 앞에 있는 소이작도까지는 300여m가 넘는데 물살이 급해서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마을 사람들도 건너가지 못한다며 혹시 건너가다 변을 당했는지도 모른다면 염려했다. 더구나 지금은 밀물 때여서 급물살이 흐르는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소이작도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선착장 끝에 가서 목청껏 이름을 불러 봐도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러기를 3시간, 우리 단원들은 거의 절망한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런데 소이작도에서 작은 전마선이 물살을 가르며 다가왔다. 거의 20여m 거리까지 접근했는데 노 젓는 사람 외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절망이 엄습했다. 시체라도 싣고 온다는 것인가.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데, 배 밑바닥에 누웠던 수현이가 벌떡 일어서며 한 마디 던졌다.  “오늘 비가 오지 않을까?” 그날 밤에 자기가 맡아 영화상영을 할 판인데, 구름이 낮게 깔려 비가 올 것을 염려한 말이었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우리는 원망 대신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했다. 워낙 수영을 좋아한 터라 물갈퀴 하나만을 믿고 건너는데 물살은 빨라져 돌아올 수도 없어 그대롤 헤엄쳐 나갔고, 소이작도에 닿았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하여 의식을 잃는 상태에서 그곳 주민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체험 하나. 밤낮으로 연일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개인적인 시간이 없었지만, 밤 행사가 끝난 어느 날 밤 몇 사람이 손전등을 들고 숙소 앞 갯벌에 나갔다. 마침 썰물 때여서 드러나 있는 갯벌에서 게를 잡기 위해서였다. 게는 야맹성이어서 야간에 불빛을 받으면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양동이에 가득 찰 정도로  잡을 수 있었다. 잡는 것도 재미지만, 다음날 그것은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 날 오전 모든 활동을 끝내고 점심 때 고개 넘어 동네에 있는 작은풀안 해수욕장으로 초대되었다. 마를 사람들이 우리의 노고를 치하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하여 특별히 마련한 환송연이었다. 유난히 모래가 곱고 물이 맑은 해변에서 감자, 옥수수, 떡과 밥으로 융숭하게 차린 음식은 며칠간의 피로를 단숨에 날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일이 참으로 즐거운 일임을 다시금 새롭게 새기며 우리는 보람을 안고 인천으로 향하는 여객선 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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