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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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리교청년회(M.Y.F) 와 차현회(車顯會) 목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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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리교청년회(M.Y.F) 와 차현회(車顯會) 목사



  내가 감리교청년회(Methodist Youth Fellowship, 약칭 M.Y.F) 전국연합회 임원으로 활동한 것은 1963년 10월 젠센기념관에서 열린 제5차 감리교 청년회 전국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총무로 선출되면서부터였다. 이것은 아마도 왕십리교회 청년회가 그 어느 교회 청년회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한 것이 원인이 된 듯하다. 당시 왕십리교회 청년회는 개체교회 단위로는 실시하기 어려운 농촌봉사활동을 단독으로 실시했는가 하면, 전영택, 김경수, 임인수, 석용원 등 기독교계 문인들을 초청하여 격조 높은 <기독교 문학의 밤>을 개최함으로써 장안에 잔잔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Christ Above All)". 이것은 감리교 청년회 표어였다. 이 표어를 기치로 자립․훈련․헌신․봉사 등 네 가지에 목표를 두었다. 이는 웨슬리 선생의 신앙을 본받고 교회의 부흥과 민족과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며 이를 극복함으로서 참 신앙인으로 거듭난 삶을 지향하자는 취지였다. 감리교청년회는 교회학교와는 다른 자치기구로 청년회장이 교회내의 청년부회, 고등부회, 중등부회를 관장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각 부회는 회장을 비롯한 각 부 임원이 다로 있다. 또 개체교회 단위로 조직된 청년회는 보다 큰일을 위하여 지방 안에 있는 각 교회 청년회와 더불어 지방연합회를 구성하고, 각 지방연합회는 전국단위의 전국연합회를 만들어 활동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는 모든 청년회를 아우르는 전국 청년회의 대표기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는 회장, 총무, 서기, 회계와 신앙전도부, 사회봉사부, 문화연구부, 친목사교부 등 4개부서가 있는데 서기, 회계에는 부서기, 부회계를 두고 각 부에 차장을 두었다. 1963년도 임원은 회장에 김정길, 부회장에 허용근, 총무에 남상학, 서기에 김정태(이종임), 회계에 장병호(안정자), 신앙지도부장에 조병호, 사회봉사부장에 서희원, 문화연구부장에 장병호, 친목사교부장에 장현수 등으로 진용이 짜여졌다. 그리고 전국연합회는 자치기구이기는 하지만 총리원 교육국 청년사업부 간사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지도 목사는 차현회 목사였다.    

  청년들과 호흡이 잘 맞았던 차현회 목사는 목표 의식이 강하고 추진력이 강한 리더였다. 외모로 볼 때도 카리스마가 넘치고, 일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이 넘쳤다. 사명에 충실한 열정적인 임원들은 목사님의 지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남다른 열정과 헌신으로 전국연합회의 부흥을 일으켜 전국연합회의 전성기를 일궈냈다. 활발하게 진행된 활동 내용으로는 첫째 자립운동이었다. M.Y.F 회원이면 누구나 1구좌 1,000원을 납부하는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또 M.Y.F 뱃지를 판매하여 기금을 넓혀나갔다. 둘째는 조직의 강화였다. 당시에는 개체교회 청년회와 지방연합회가 조직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교육국 정책으로 각 교회 청년회와 지방 내 지방연합회 조직을 독려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전국연합회는 조직이 안 된 지방은 지방연합회가 조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조직된 지방연합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전국연합회 임원들로 지방 순방팀을 구성했다. 순방팀은 현지와 연락하여 아직 구성이 안 된 지방은 순방의 때에 맞춰 지방연합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이미 구성된 지방연합회는 격려하며 애로사항과 전국연합회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해결에 주력했다. 나는 충북, 강원 순방팀에 소속되어 조병호 부장, 안정자 회계와 함께 기차로 이동하며 1박 2일 동안 원주 지방, 제천 지방, 삼척지방, 강릉지방을 순회하며 지방연합회 활동을 격려했다.  

  셋째로 신앙 훈련이었다. 우선 서울에 거주하는 회원들의 신앙 훈련을 위하여 정동교회 내의 젠센기념관에서 춘계, 추계 신앙강좌를 개최했다. 1주일간 집중하여 진행된 강좌에는 연세대 김형석 교수, 감신대 홍현설 학장, 윤성범 교수, 서울대 김태길 교수, 장병림 교수 등 유명 신학자와 교수들이 강사로 초청되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는 감리교청년회 전국 임원을 대상으로 전국 임원수련회를 개최했다. 수련회의 효과를 위하여 청년부, 고등부, 중등부로 나누어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수동리에 있는 감리교 입석캠프장에서 실시했다. 처음으로 실시한 전국 단위의 수련회는 각 교회와 지방의 큰 호응을 받았고, 전국에서 몰려온 임원들은 6일 동안 예배와 기도회, 다양한 강의, 지방연합회 활동 소개, 성경퀴즈대회, 캠프 화이어, 결단의 시간 등 감리교 청년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소양을 넓히는 훈련을 받았다. 1964년에 실시된 수련회 일정과 참가인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1회 전국 청년부 임원수련회(1964. 7.20~25)  350명
           제1회 전국 고등부 임원수련회(1964. 8.3~8)    168명
           제1회 전국 중등부 임원수련회(1964. 8.10~15)  65명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임원들은 신앙의 열기가 대단했다. 참가자들 중에는 멀리 제주도연합회에서 지역 특산물인 문주란을 들고 찾아온 임원도 있었다. 새벽을 깨우는 아침기도회로부터 늦은 밤 기도회로 끝날 때까지 수련회에 참가한 임원들은 은혜의 시간을 만끽하며 감리교 청년의 자부심을 키웠다. 특히 십자가 행진을 곁들인 캠프화이어는 참회에 이어 헌신을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나는 세 차례에 걸친 수련회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은혜에 눈을 뜨는 감격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에 빠져들곤 했다.

  
             경기도 남양주군 화도면 수동리
             장대비 사정없이 두드리던 날
             물안골을 휩쓴 흙탕물이
             입석 수련장을 끼고 휘돌아 나갔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각처에서 모여
             무릎 꿇고 앉은 자리
             밤이 깊어가며 마음은 비워지고
             뜬 눈으로 밤을 밝힐 때

             어둠을 한 꺼풀씩 벗기며
             먼동 트는 새벽
             아침 안개를 거느리고
             한 다발 물기 젖은 안개꽃으로
             아아, 기적처럼 너는 왔다.

             한여름의 반란
             먼 산이 허물어지는 소리
             산 사태 혹은 개벽
             과거 일체의 어둔 기억들을 씻어 버리는
             이 엄청난 소용돌이

             초록의 숲은 더욱 푸르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더욱 빨라지고
             하늘 문이 열리는 소리
             그것이 평생 끊지 못할
             사랑일 줄이야

             뜨겁게 흐르는 은혜의 강 건너  
             초록 숲에 맑은 빗방울 소리 없이 듣는
             은총에의 감사를 /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위 글은 <추억2-젖은 안개꽃> 전문이다. 청년부수련회와 고등부수련회를 진행할 때는 날씨가 좋았으나 중등부 임원수련회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시작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그칠 줄 모르고 연일 이어져 수련회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불어난 물줄기가 캠프장 앞 수동계곡을 넘쳐흐르고, 아침에는 자욱한 물안개가 계곡 주변을 덮었다. 그런 날이면 으레  아낙네들이 물골안계곡에서 많이 자생하는 안개꽃을 가득 담은 광주리를 이고 내려왔다.

  진행은 모두 전국연합회 임원들이 도맡아 수고했다. 남자 임원들은 세 차례에 걸쳐 캠프장에 들어와 진행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중등부수련회가 넷째 날로 접어든 아침, 3주 연속 수련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어렵다며 중등부수련회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여자 임원 두 사람이 캠프장에 들어왔다. 이 아침에 물난리를 뚫고 어떻게 왔을까 궁금했다. 두 사람은 어제 오후 캠프장에 오려고 서울에서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불어난 물로 버스 운행이 도중에 중단되는 바람에 걸어오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시골 노인의 호의로 그 집에서 자고 왔다고 했다. 집에 있자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수고하는 임원들에게 미안해서 다시 합류하기로 하고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버스를 탔던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3주에 걸친 수련회를 은혜 가운데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 우리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을 돕기 위한 음악회를 배재고등학교 강당에서 개최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을 돕자는 취지에서 개최된 음악회의 수입은 피해를 입은 각 지방 교회의 복구사업에 지원한 데 사용했다.  

  1964년 10월, 나는 감리교청년회 전국연합회 제6차 정기총회(1964. 10. 24~25)를 끝으로 총무에서 퇴진했다. 대학 졸업을 하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목사님의 요청에 따라 군 입대 전까지 총리원 교육국 청년사업부에 출근하여 차 목사님을 도와 숙원사업이었던 을 간행했다. 감리교청년회원이 핸드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수첩에는 M.Y.F의 역사, 표어, 빼지 설명, 회칙, 연간 프로그램 안내, 다이어리 등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여 감리교청년들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청년회 모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만의 고유한 노래집 <새노래>를 간행했다. 새노래집에 수록할 곡들은 조돈환 선생이 맡고, 편집은 내가 맡았다. 이 일을 진행하는 동안 차현회 목사님의 나에 대한 신뢰는 더욱 깊어갔고, 나는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특히 목사님은 1965년 5월 나의 입대를 앞두고 전국연합회에서 같이 일했던 우리 교회 여학생과 나의 결혼 문제를 앞장서서 주선해 주셨다. 좋은 배필이 될 수 있는 사이라고 판단한 목사님은 우리 두 사람을 각각 불러 의사를 타진하고, 입대 전 양가 부모를 모시고 상견례까지 맡아주신 것이다. 결혼은 제대 후에 하더라도 정혼은 반드시 입대 전에 하라는 것이 목사님의 지론이었다.  

   차현회 목사님은 내 입대 후 곧바로 종교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셨다가 1969년 미국 시카고한인연합감리교회 담임으로 떠나셨지만, 귀국할 때마다 M.Y.F 전국연합회 임원들과 항상 자리를 마련하여 그 시절을 회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처지가 되었다. 이토록 차현회 목사님은 우리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소중한 분이셨고, 한 때 M.Y.F 전국연합회를 전성기로 이끌어 주신 능력 있는 목사님으로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Comments
nbc  (2012.09.17-11:13:15)  X 
차현회 목사님이 한국에 영구 귀국하시었습니다
감리교 선교국에 연락해보세요
소식을 기다립니다 . 김회창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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