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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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벌거숭이의 노래 / 김형원(金炯元) 
벌거숭이의 노래

- 김형원(金炯元)


1
나는 벌거숭이다.
옷같은 것은 나에게 쓸 데 없다.
나는 벌거숭이다.
제도 인습은 고인의 옷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시비도 모르는, 선악도 모르는.

2
나는 벌거숭이다. 그러나 나는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은
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
썩은 내가 몰씬몰씬 나는 구도덕에 코를 박은,
본능의 폭풍 앞에 힘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3
나는 어린 풀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나에게는 오직 생명이 있을 뿐이다.
태양과 모든 성신이 운명하기까지,
나에게는 생명의 감로가 내릴 뿐이다.
온 누리의 모든 생물들로 더불어,
나는 영원히 생장의 축배를 올리련다.

4
그리하여 나는 노래하려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감투를 쓴 사람으로부터
똥통을 우주로 아는 구더기까지.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그대들에게 이러한 노래를
(모순되는 듯한 나의 노래를)
서슴지 않고 보내는 것을 기뻐하라.
새로운 종족아! 나의 형제들아!
그대들은 떨어진 옷을 벗어던지자.
절망의 어둔 함정을 벗어나고자 힘을 쓰자.

5
강장한 새로운 종족들아!
아침 해는 금 노을을 친다.
생장의 발은 아직도 처녀이다.
개척의 괭이를 들었느냐?
핏기 있는 알몸으로 춤을 추며,
굳세인 목소리로 합창을 하자-

6
나는 벌거숭이다.
우리는 벌거숭이다.
개성은 우리가 뿌릴 <생명의 씨>이다.
우리의 밭에는 천재지변도 없다.
우리는 오직 어린 풀과 함께
햇빛을 먹고 마시고 입고,
벌길이길이 노래만 하려 한다.


* 이해와 감상 *

  미국 시인 휘트먼의 영향을 받아 민중적 요소가 짙은 작품으로 인습을 부정하고 새 시대를 바라보는 자각과 개척 정신이 담겨 있다. 이 시에서 '벌거숭이'는 제도 인습을 처탈한 사람을 뜻하며, '고인의 옷'은 낡은 형식적 겉치레를 두고 하는 말이다.

* 작자 <김형원 (金炯元 1900∼?)은

  시인·언론인. 호는 석송(石松). 충청남도 강경(江景) 출생.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0년대 문단에 등장하였다. 매일신보·중외일보(中外日報) 및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중앙일보·조선일보·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9년 공보처 차장을 역임하였으며 6·25발발 후에 납북되었다.

  《개벽(開闢)》 창간 2주년 기념호에서 그는 미국의 민중 시인 W. 휘트먼을 소개하여 시의 주제 방향이 민중 쪽에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광복 전 문예지 《생장(生長)》을 주재하기도 하였으나 시인보다는 신문인으로서의 활약이 더 컸다. 작품으로 《불순한 피》 《내가 조물주이면》 《생장(生長)의 균등》 등이 알려져있으며, 1924년 《개벽》에 발표한 《아! 지금은 새벽 4시》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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