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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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조선의 맥박(脈搏) / 양주동(梁柱東) 
조선의 맥박(脈搏)

- 양주동(梁柱東)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 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 이해와 감상 *

  일제치하였던 1930년에 쓰여진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이 말하는 `맥박'을 느껴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의 운율과 정서를 살리는 데 관심을 기울인 양주동이었지만 이 시에서는 `조선의 맥박'이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시를 구성하고 있다. 이 시의 의미 중심인 `맥박'이란 무엇인가. 맥박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심장 소리이며 그 움직임으로서 생명의 역동적인 상징이 아닌가. `한밤에 불꺼진 재와 같이' 어두운 시대에 화자가 짚어 보는 조선의 맥박은 비록 `힘없는' 것이지만 조선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조선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희망의 징표이다.

   `모세관'처럼 가는 혈관 속에 `힘없이' 뛰던 맥박은 `이윽고 새벽'이 되면 `희망'과 `용기'로 살아난다. `희망'과 `용기'로 가득찬 맥박이란 힘찬 심장의 고동으로 태어나는 `갱생(更生)'이며 터져나오는 민족의 `숨결'일 것이다. `새벽'이란 민족과 민족정기가 분출되는 때, 즉 해방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제 학정기의 한 가운데인 이 때에 `새벽'으로 광복을 소망하고 열망하는 화자에게, 겨울 아침에 힘찬 숨결을 뿜으며 `책보를 끼고' 힘있게 두 팔을 저으며 가는 어린 학생들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의 희망으로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닐 수 없다. 민족의 미래를 약속하는 듯이 `빛나는' 어린 학생의 `얼굴'과 `갓난아기'의 힘찬 울음과 아이의 `웃는 입술', `또렷한 눈동자'에서 시인은 조선의 `대동맥'과 `폐'를 발견한다.

`대동맥'과 `폐'란 맥박을 일으키고 숨결을 토해내게하는 생명의 원동력이 아닌가. 민족의 희망을 잉태하고 성장시키고 발현시킬 민족의 `대동맥'과 민족의 `폐'가 오직 `너에게만' 있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해방된 민족과 조국의 미래가 다음 세대에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확인할 수 있다. [해설: 이상숙]


* 작자 양주동 (梁柱東 1903∼1977)은

  시인·국문학자·영문학자. 개성(開城) 출생.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조도전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 1940년부터 경신학교 교사를 지냈다. 광복 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고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에 선임되었으며, 1957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연세대학교 교수에 취임하였다가 1962년 다시 동국대학교로 옮겨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젊었을 때에는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시인 및 문학이론가로서 활약하였다.

  《금성(金星)》 동인으로서 민족주의적 성향의 시를 썼으며, 염상섭(廉想涉)과 함께 《문예공론》을 발간하여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벌였는데, 특히 경향파의 기수였던 김기진(金基鎭)과의 문단논쟁은 유명하다. 한편 신라향가에 대한 연구가 일본인 학자에 의해 주도된 데 비분, 1937년부터 고증학적인 향가의 해독에 몰입하면서 고시가(古詩歌)의 주석에 전렴하는 국학자로 전신하였다. 1942년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향가 25수 전편을 해독한 《조선고가연구》를 출간하였고, 1947년에는 고려가요에 대한 주석을 집대성한 《여요전주(麗謠箋注)》를 출간하였다.

   광복 후에는 문학평론·시는 거의 발표하지 않았고 영문학분야에 있어서도 활동이 드물었으나 향가의 해독과 고려가요의 주석에 대한 정정과 보충을 지속하면서 문필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저서로 《조선고가연구》 《여요전주》 《국학연구논고》 《국문학고전독본》 등이 있고, 시집 《조선의 맥박》, 수필집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 《인생잡기》, 번역서 《T.S. 엘리엇 시선집》 《영시백선(英詩百選)》 《세계기문선(世界奇文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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