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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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은행나무 그늘 / 백기만 
은행나무 그늘

- 백기만



훌륭한 그이가 우리집을 찾아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뺨이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에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무가리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아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시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이를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가 드리운 성자 같은 그리운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도 은헹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리 옆에서 어제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 바람처럼 괴롭습니다.

                                                                           - <금성>3호(1924)
* 이해와 감상 *

   '어머니'를 조국으로, 또 '그이'를 조국광복으로 풀이한다면 이 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또 이 시가 베일에 싸인 것처럼 섬세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은 타고르의 영향 때문인 듯. 백기만의 대표작이다.

작자 백기만 (白基萬 1902∼1967)은

  시인. 호는 목우(牧牛), 필명 백웅(白熊)·흰곰. 대구 출생. 대구고등보통학교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조도전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양주동(梁柱東)·이장희(李章熙) 등과 문예지 《금성(金星)》 동인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24년 1월 《금성》 창간호에 <청개고리>를 발표하고 《개벽(開闢)》 등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상화(李相和)와 함께 대구에서 3·1운동 당시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저항활동을 하였다. 이상화가 죽은 뒤 상화시비(尙火詩碑) 건립에 앞장섰고, 이상화와 이장희의 시를 정리하여 《상화(尙火)와 고월(古月)》 《씨뿌린 사람들》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신선한 감각과 신비주의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산문적 호흡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은 《은행나무 그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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