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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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서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파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짝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끝>



시어ㆍ시구 풀이

*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 이런 의성어는 이전의 시가에서는 보이지 않던 표현으로 독자로 하여금 바다의 웅대한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 나파륜(拿破崙) :  나폴레옹의 한자어식 표기법으로써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개화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 구시대와 구질서를 벗어나지 못한 조건의 현실이 싫다는 작자의 심리적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  새 시대 새 문화의 주역이 될 소년들이 문명 개화를 의미하는 바다에 와 안기고 입맞춘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개화, 근대화를 의미한다.


작품개괄

- 갈래 : 계몽적 성격을 띤 신체시 (新體詩)
- 주제 : 바다(새로운 문명 )를 제재로 소년의 시대적 각성과 의지를 표현함
- 구성 : 전6연, 각 연 7행
- 표현 : 직유법, 반복법
- 출전 : <소년(少年)> 창간호 (1908)

작품 해제

  이 시는 신체시의 효시라 일컬어진다. 신체시는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시가→개화가사→창가→신체시→근대적 자유시'의 흐름을 밑바탕에 깔고서 이해해야만 근대적 자유시의 전단계로서 그 문학사적인 의의가 돋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시를 비롯한 신체시가 전통적인 정형적 율격을 탈피하고, 자연스런 호흡으로 새로운 형식을 갖추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 시도 한 연만을 독립적으로 살핀다면 자유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연을 함께 살펴보면, 특정한 형식을 공통적으로 지니는 일종의 정형시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가 비록 자유시로서 한계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전통적인 율격에서 벗어나 형식적 실험을 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편 이 시에서 주장하고 있는 '계몽'이나 '근대'는 자기가 서 있는 토대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기에 문제가 된다. 계몽이나 근대화는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나 민족을 발전시킨다는 의도로 출발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서는 '조따위 세상'이라고 현실 사회를 비아냥거리며, 오직 바다와 하늘과 같은 순수한 미래를 예찬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이분법적인 것으로 현실적인 세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극단적이고 과잉된 의식의 산물이다.
  또 그러나 새로운 시대로서 당시 소년 앞에 놓여진 '근대'라는 바다가 과연 소년과 지속적으로 화해의 관계에 있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바다가 권유하는 무조건적이고 순수하다시피한 새로움은 무엇을 위한 새로움이며, 바다가 가진 힘이 어떻게 사용되기 위한 힘인지 드러나지 않는 이상, 이 시는 당시 계몽이나 근대에 대해 가졌던 맹목적인 믿음과 낙관주의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작자 프로필>

최남선 (崔南善 1890∼1957)

문화운동가·작가·사학자. 호는 육당(六堂). 서울 출생.
10세 이전에 한문과 한글을 익혀 1901년 황성신문·제국신문·독립신문 등에 논문을 투고하였다. 1902년 경성학당(京城學堂)에 입학하였고 1904년 황실유학생으로 뽑혀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개월 만에 귀국하였다. 1906년 다시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조도전대학)] 고등사범부 지리역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모의국회사건으로 자퇴하고 귀국하였다.

1907년 출판기관인 신문관(新文館)을 세우고 1908년 종합월간지 《소년》을 창간하여 창간호에 한국 최초의 신체시(新體詩)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다. 1909년 안창호(安昌浩)와 함께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설립위원이 되고 다음해 조선광문회를 창립하여 고전을 정리, 출간하였으며 《붉은 저고리(1902)》 《아이들 보이(1913)》 《샛별(1913)》 《청춘(1914)》 등을 계속 간행하여 신문학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책임자로 체포되었다가 다음해 출옥하였다. 그 뒤 1922년 출판사 동명사(東明社)를 세우고 《동명》을 발간하면서 국사연구에 전념하였다. 1924년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창간, 사장으로 취임하였으나 곧 사임하고 《동아일보》 객원으로 논설을 썼다. 1927년 총독부가 식민정책의 하나로 만든 조선사편수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강사를 지냈으며, 1938년 만주 신징[新京(신경);長春(장춘)]으로 가서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으로 있다가 재만일본관동군(在滿日本關東軍)이 세운 건국대학교 교수를 지낸 뒤 1942년 귀국하였다.

8·15 뒤 1949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다. 6·25 때는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위원, 서울시사 편찬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그 뒤 국학 분야 저술생활을 하였다. 한국 신문학운동의 선구자로서 출판을 통하여 자주독립과 신교육 등을 주창·계몽하였고 국사의 대중화에도 공헌하였으나 친일행위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저서로 《백팔번뇌(1926)》 《심춘순례(尋春巡禮, 1926)》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 1927)》 《시조유취(時調類聚, 1928)》 《조선불교(1930)》 《조선독립운동사(1946)》 《고사통(故事通, 1939)》 《조선역사(194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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