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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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장미 / 피천득 
           <수필>

                                    장 미

                                                                                               피천득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꽃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니버려 두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그의 꽃병에 물을 갈아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중에서 두 송이를 곶아 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
           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k가 내 꽃을 탐내는듯이 보였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 하지도
         않고 받아 가지고는 달아난다.
            집에 와서 꽃 사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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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아 피천득 선생은

     1910년 5월 29일: 서울 출생
     1919년: 경성 제일고보 입학
     1929년: 중국 상하이 후장대 입학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별곡'등 발표
     1945년: 경성대 예과 교수(~46년)
     1946년: 서울대 사범대 교수(~74년)
     1947년: 시집 '서정시집(抒情詩集)'(상호출판사) 출간
     1969년: 시집 '산호와 진주'(일조각) 출간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사) 출간
     1980년: 시선집 '금아시선(琴兒詩選)'(일조각) 출간
     1991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1993년: 시집 '생명'(동학사) 출간
     1997년: '금아 피천득 문학 전집'(전 5권, 샘터) 출간
     2002년: '어린 벗에게'(여백) 출간
     2007년 5월 25일: 타계
               5월 29일: 발인,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영면


  * 2007년 5월 25일 자정이 임박한 시각.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이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97세로 최고령 현역 문인이었던 금아는 그렇게, 유언 한 마디 없이 이승과의 인연을 접었다.

  이어 유족들이 장례 일정을 논의했다. 마침 주말이 끼어있어 3일장은 어려웠고, 자연스레 5일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29일 오전 7시에 발인을 하고, 3년 전에 미리 봐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을 장지로 결정했다.

  장례 일정을 마무리하고 난 뒤,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5월 29일은 금아의 97번째 생일이었다. "20분만 늦게 세상을 놓으셨어도…". 유족 중 한 명이 말했다. 금아의 사망시간은 25일 오후 11시 40분이었다.

  금아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금아다웠다. 생전의 금아는 자신의 생일에 지인 몇몇을 불러 점심을 대접했다. 이로써 금아는 97번째 생일에도 지인을 불러 밥 한 그릇 먹인 셈이 됐다.

  금아는 열두 달 중에 5월을 가장 좋아했다. 하여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5월을 부르기도 했다(수필 '오월'). 금아는 가장 좋아하는 5월에 나와 5월에 들어갔다. 금아는 또 장미를 좋아했다.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고 끝을 맺는 '장미'란 수필을 쓴 적도 있다. 그래서였을 게다. 금아의 영정은 울긋불긋한 장미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5월 장미에 파묻혀 웃는 금아 역시 화사해 보였다.

  금아에겐 세 자녀가 있다. 장남 세영(67).차남 수영(63).딸 서영(60)씨다. 아흔이 넘은 금아가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던 것처럼, 이들 세 남매도 '아버지'보다는 '아빠'가 훨씬 편했다. 수영씨는 "우리는 아버지라는 호칭보다 아빠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금아는 서영씨를 유독 아꼈다. 날씨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금아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땐 허한 마음 채워 보려고 인형 난영이를 끔찍이 아꼈다. 서영씨가 등장하는 수필도 여러 편이다.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서영씨는 그러나 선친 영정 앞에서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심정을 묻자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고 겨우 답했을 뿐, 모든 취재를 거절했다. 현재 캐나다에서 사는 장남 세영씨는 70년대에 유명했던 DJ였다. 그러나 그 역시 인터뷰를 거절했다.

  금아의 아내 임진호(91)씨는 치매 때문에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금아를 "나에게 참 잘해주시는 분"이라고 말한 적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남편의 소식을 아내는 아직 알지 못한다.

  금아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의 조화로 가득했다. 문인 중에선 박완서.조정래씨를 비롯해 김우창.황동규.성찬경씨 등 금아의 서울대 제자들이 조문했다. 그 중 유독 오래 울고 간 여학생이 있었다. 생전의 금아에게 책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 대학생이었다. '마리아'라고 이름을 밝힌 학생은 금아에게 마지막으로 읽어준 책이 '내가 사랑하는 시'였다고 전했다. 금아가 번역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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