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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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면학(勉學)의 서(書) / 양주동(梁柱東) 

                               면학(勉學)의 서(書)

                              -양주동(梁柱東)
  


  독서(讀書)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東西) 전배(前輩)들의 무수(無數)한 언급(言及)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課長)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孟子)의 인생 삼락(人生三樂)에 무름지기 '독서(讀書), 면학(勉學)'의 제 4일락(第四一樂)을 추가(追加)할 것이다. 진부(陳腐)한 인문(引文)이나 만인(萬人) 주지(周知)의 평범(平凡)한 일화(逸話)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端的)으로 나의 실감(實感) 하나를 피력(披瀝)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論語)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운운(云云)이 대성현(大聖賢)의 글의 모두(冒頭)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孔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직하였다. 첫 줄에서의 나의 실망(실망)은 그 밑의 정자(程子)인가의 약간 현학적(衒學的)인 주석(註釋)에 의하여 다소 그 도(度)를 완화(緩和)하였으나 논어의 허두(虛頭)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인상(印象)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 배우고, 익히고, 또 무엇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생활이 어느덧 2, 30년, 그 동안에 비록 대수로운 성취(成就)는 없었으나, 몸에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평범한 그 말이 진리(眞理)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정씨(程氏)의 주(註)는 워낙 군소리요, 공자의 당초(當初) 소박(素朴)한 표현이 그대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세(現世)와 같은 명리(名利)와 허화(虛華)의 와중(渦中)을 될 수 있는 한 초탈(超脫)하여, 하루에 단 몇 시, 몇 분이라도 오로지 진리와 구도(求道)에 고요히 침잠(沈潛)하는 여유(餘裕)를 가질 수 있음이, 부생백년(浮生百年), 더구나 현대인에게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 하물며, 난후(亂後) 수복(收復)의 구차(苟且)한 생활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삼척 안두(三尺案頭)가 마련되어 있고, 일수(一穗)의 청등(靑燈)이 의미한 채로 빛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전(日前) 어느 문생(門生)이 내 저서(著書)에 제자(題字)를 청하기로, 나는 공자의 이 평범하고도 고마운 말을 실감(實感)으로 서증(書贈)하였다.

  독서란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설(持說)이다. 세상에는 실제적(實際的) 목적을 가진, 실리 실득(實利實得)을 위한 독서를 주장할 이가 많겠지마는 아무리 그것을 위한 독서라도, 기쁨 없이는 애초에 실효(實效)를 거둘 수 없다. 독서의 효과를 가지는 방법은 요컨대 그 즐거움을 양성(養成)함이다. 선천적(先天的)으로 그 즐거움에 민감(敏感)한 이야 그야말로 다생(多生)의 숙인(宿因)으로 다복(多福)한 사람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여 그 습관을 잘 길러 놓은 이도, 그만 못지 않은 행복한 족속(族屬)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현실파(現實派)에게나 이상가(理想家)에게나, 다 공통(共通)히 발견의 기쁨에 있다. 콜럼버스적인 새로운 사실(事實)과 지식의 영역(領域)의 발견도 좋고, "하늘의 무지개를 바로 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 식의 워즈워스적인 영감(靈感), 경건(敬虔)의 발견도 좋고, 더구나 나와 같이, 에머슨의 말에 따라, "천재(天才)의 작품에서 내버렸던 자아(自我)를 발견함"은 더 좋은 일이다. 요컨대, 부단(不斷)의 즐거움은 맨 처음 '경이감(驚異感)'에서 발원(發源)되어 진리의 바다에 흘러가는 것이다. 주지(周知)하는 대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에서 키츠는 이미 우리의 느끼는 바를 대변(代辯)하였다.

  그 때 나는 마치 어떤 천체(天體)의 감시자(監視者)가 시계(視界) 안에 한 새 유성(遊星)의 허엄침을 본 듯, 또는 장대(壯大)한 코르테스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태평양(太平洋)을 응시(凝視)하고―모든 그의 부하(部下)들은 미친 듯 놀라 피차에 바라보는 듯―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를.

  혹은 이미 정평(定評)있는 고전(古典)을 읽으라, 혹은 가장 새로운 세대(세대(世代)를 호흡(呼吸)한 신서(新書)를 더 읽으라, 각인(各人)에게는 각양(各樣)의 견해(見解)와 각자(各自)의 권설(勸說)이 있다. 전자는 가로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후자(後者)는 말한다.

        "생동(生動)하는 세대(世代)를 호흡(呼吸)하라."

  그러나 아무래도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인(知識人)으로서 동서(東西)의 대표적인 고전은 필경(畢竟) 섭렵(涉獵)하여야 할 터이요, 문화인(文化人)으로서 초현대적(超現代的)인 교양(敎養)에 일보(一步)라도 낙오(落伍)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의 취미와 성격과 목적과 교양에 의한 비율(比率)뿐인데, 그것 역시 강요하거나 일률(一律)로 규정(規定)할 것은 못된다. 누구는 '고칠 현삼제(古七現三制)'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中庸)이 좋다고나 할까?

  다독(多讀)이냐 정독(精讀)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對象)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博而不精)'이 그 통폐(通弊)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함'이 또한 그 약점(弱點)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畢竟) '다(多)'와 '정(精)'을 겸(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平凡)하나마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하겠다. '박(博)'과 '정(精)'은 차라리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兩者)의 개념(槪念)을 궁극적(窮極的)으로 초극(超克)하여야 할 것이다. 송인(宋人)의 다음 시구는 면학(勉學)에 대해서도 그대로 알맞은 경계(境界)이다.

             벌판 다한 곳이 청산인데, (平蕪盡處是靑山)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네. (行人更在靑山外)

  나는 이 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종시(終始) 역설(力說)하여 왔거니와, 그 즐거움의 흐름은 왕양(汪洋)한 심충(深衷)의 바다에 도달(到達)하기 전에, 우선 기구(崎嶇), 간난(艱難), 칠전팔도(七顚八倒)의 괴로움의 협곡(峽谷)을 수없이 경과(經過)함을 요함이 무론(毋論)이다. 깊디 깊은 진리의 탐구(探究)나 구도적(求道的)인 독서는 말할 것도 없겠으나, 심상(尋常)한 학습(學習)에서도 서늘한 즐거움은 항시 '애씀의 땀'을 씻은 뒤에 배가(倍加)된다. 비근(卑近)한 일례(一例)로, 요새는 그래도 스승도 많고 서적(書籍)도 흔하여 면학의 초보적(初步的)인 애로(隘路)는 적으니, 학생 제군(學生諸君)은 나의 소년 시절(少年時節)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에 그야말로 한적(漢籍) 수백 권을 모조리 남에게 빌어다가 철야(徹夜), 종일(終日) 베껴서 읽었고, 한문(漢文)은 워낙 무사독학(無師獨學), 수학(數學)조차도 혼자 애써서 깨쳤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하였을까마는, 독서 연진(硏眞)의 취미와 즐거움은 그 속에서 터득, 양성되었음을 솔직(率直)이 고백한다.

  끝으로 소화 일편(笑話一片)―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距今) 50년 전의 일이다. 영어(英語)를 독학(獨學)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日課)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new heaven and earth)'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獨學書)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三人稱單數)'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고언(古諺)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項目)만 자꾸 염독(念讀)하였으나, 종시 '의자현(義自見)'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邑內)에 들어가 보통 학교(普通學校)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新任敎員)에게 그 말뜻을 설명(說明) 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往復)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杏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끝>


* 어휘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 : 첫째, 부모와 형제가 함께 살아 있는 것, 둘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
                                       끄러움이 없는 것,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
피력(披瀝)하다 : 평소에 숨겨 둔 생각을 모두 털어 말함.
모두(冒頭) : 글의 머리말 또는 첫부분
현학적(衒學的) : 학문과 지식을 자랑하는 모양.
허두(虛頭) : 글이나 말의 첫머리.
와중(渦中) : 소용돌이 속.
초탈(超脫) : 초월하여 뛰어 넘음.
부생백년(浮生百年) : 덧없이 떠돌다 가는 일평생.
난후(亂後) : 한국전쟁 이후.
삼척안두(三尺案頭) : 작은 책상 머리. 검소하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함.
일수(一穗) : 한 가닥. 한 이삭. 여기서는 흐린 빛을 말함.
제자(題字) : 책의 제목을 쓴 글씨.
서증(書贈) : 글을 써 줌.
지설(持說) : 늘 간직하고 있는 의견. 지론(持論).
숙인(宿因) : 오래 된 인간.
다생(多生)의 숙인으로 다복한 사람 : 종교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 옛 것을 완전히 익힘으로써 새 것을 안다.
섭렵(涉獵) : 여러 가지 책을 널리 읽음.
고칠현삼제(古七現三制) : 옛 책을 7할, 새 책을 3할 읽는 것.
남아수독오거서(男兒杏讀五車書) :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의 책을 읽어야 한다.
박이부정(博而不精) : 널리 알지만 자세하지는 못함.
안광이 지배를 철함 : 눈빛이 종이를 뚫을 정도로 정독함.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함 : 작은 것(세부 사항)은 보되 큰 것(학문의 큰 흐름)은 보지 못함.
박이정(博而精) : 널리 알고 깊이 익힘.
초극(超克) : 이겨 냄.
왕양(汪洋) : 넓고 큰 물결.
심충(深衷)의 : 깊고 깊은.
기구(崎嶇) : 험난한 고갯길. 인생의 어려움을 말함.
심상(尋常) : 평범한. 예사로운.
비근(卑近)한 : 거의 같은.
무사독학(無師獨學) :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함.
거금(距今) : 지금으로부터.
독서백편의자현 : 글을 여러 번 읽다 보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
고언(古諺) : 옛날 속담.
염독(念讀) : 생각하며 외듯 읽음.
우수마발(牛杏馬勃) : 쇠오줌과 말똥. 가치 없는 모든 것.


이해와 감상


  자칭 국보라고 했다는 필자가 독서의 즐거움을 논한 글로 유장한 한자어와 길고 리드미컬한 문장이 매력을 품는 글이다. 옛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우수마발이 다 삼인칭야>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고 <체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라는 키이츠의 시 원문을 구하려고 당시 고교생들을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던 유명한 수필이다.
  다소 현학적이기조차하는 이 글에서 작자는 시종 독서의 즐거움을 논하고, 독서를 통해 느끼는 발견의 기쁨을 필자는 난해한 한자어를 적적한 곳에 구사하는 맛도 요즘 글들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고, <온고이지신>, <남아수독오거서>, <안광이 지배를 철함>, <박이정>,<독서백편의자현>들의 뜻을 음미하면서 읽으면 독서의 무궁한 즐거움과 면학의 기쁨에 빠질 수 있는 안내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양주동(梁柱東)은

  1903∼1977. 시인·국문학자·영문학자. 본관은 남해 ( 南海 ). 호는 무애(无涯). 아버지는 원장(元章)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이다.  경기도 개성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황해도 장연에서 보냈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고(1928), 같은 해 평양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 교수로 부임하였다가 일제말 이 학교의 폐쇄로 그 자리를 물러나 1940년부터 경신학교 ( 儆新學校 )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에는 동국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1947), 중간에 수년간 연세대학교 교수로 옮겨 있었던 것(1958∼1961)을 빼고는 종신토록 동국대학교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이 두 학교 이외의 다른 대학들에도 출강하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직접·간접의 영향을 입은 후학들이 많았다. 1957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4년부터 죽을 때까지 학술원 회원으로 있었다.

* 활동상황 및 업적 *

  젊었을 때에는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인 및 문학이론가로서 문단에서의 활약이 화려하였으나, 향가 해독에 몰입하면서부터는 주로 고시가(古詩歌)의 주석에 전념하는 국학자로 전신하였다. ≪금성 金星≫ 동인으로 등장하여(1923) 민족주의적 성향의 시를 주로 썼다. 시집 ≪조선의 맥박(脈搏)≫(1930)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데, 그의 시들이 가지는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염상섭 ( 廉想涉 )과 함께 ≪문예공론 文藝公論≫(1919)을 발간하며 시작된 양주동의 평론은 문학사가들에 의하여 절충론이라고 불린다. 염상섭과 박영희 ( 朴英熙 ) 사이의 문학논쟁을 이어받아 경향파(傾向派)의 기수였던 김기진(金基鎭)과의 사이에 폈던 논전은 특히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고시가에 대한 해독 및 주석에 대한 연구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이기도 한 향가 25수 전편에 대한 해독은 처음에 ≪조선고가연구 朝鮮古歌硏究≫라는 이름으로 1942년에 간행되었는데, 뒤에는 단순히 ≪고가연구≫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지금 표준으로 잡는 것은 1965년의 개정증보판이다.

  1947년에 출판되어 나온 ≪여요전주 麗謠箋注≫는 ≪고가연구≫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고려가요에 대한 주석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는 평소에 고시가연구를 3부작으로 간행할 것을 공언하였으나, 그 제3부에 해당하는 것은 끝내 간행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1965년에 출간된 ≪고가연구≫ 개정증보판에서의 증보부분에서 그 제3부의 일부를 볼 수 있다.

  광복 후에도 그의 문필활동은 중단되지 않았으나, 왕년과 같은 문학평론의 자리에는 돌아가지도 않았으며, 시작도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영문학분야에서의 그의 활동에 대하여서도 거의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영문학 강의와 영시의 번역을 하며 작품집의 편저를 보이기는 하였으나, 영문학연구의 저술을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향가의 해독과 고려가요의 주석에 대한 관심은 계속된 정정과 보충으로 지속되었다. 1962년에 나온 ≪국학연구논고 國學硏究論攷≫에 실린 논문들에 새로운 의견들을 볼 수 있거니와, ≪고가연구≫나 ≪여요전주≫의 개정판들에 그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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