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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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인(古人)과의 대화(對話) / 이병주(李丙疇) 



                                          고인(古人)과의 대화(對話)


                                                                                             이병주(李丙疇)




  고인(古人)과의 대화(對話)를 하며 생각에 잠긴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그 문향(聞香)의 동안이 얼마나 소담스러운가는 저 국보(國寶) ‘금동 미륵보살 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짐작이 갈 것이다.

  나는 고서(古書)와 고화(古畵)를 통해 고인과 더불어 대화하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 손때로 결은 먹 너머에 서린 생각의 보금자리 속에 고이 깃들이고 싶어서다. 사실, 해묵은 서화(書畵)에 담긴 사연을 더듬는다는 그 마련부터가 대단히 즐겁고 값진 일이니, 비록 서화에 손방인 나라 할지라도 적쟎은 반기가 끼쳐짐에서다.

  이런 뜻에서 지난 달은 정말 푸짐한 한 달이었다. 성북동(城北洞) 간송 박물관(澗松博物館)에서 단원(檀園)을 보며 꿈을 되새겼고, 국립 박물관(國立博物館)에서 ‘한국 예술 이천년전(韓國藝術二千年展)’으로 가멸찬 눈요기를 했다. 게다가 뜻밖에 ‘중국 전람회(中國展覽會)’가 왔으니, 실로 안복(眼福)의 연속(連續)이었다. 눈을 모아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며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시공(時空)을 초월한 고인의 멋과 그 맛에 함초롬히 취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국립 박물관에서의 완당(阮堂) 김 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는 오래간만에 대하는 기쁨에 가슴이 설레어 개관(開館) 첫날 일착(一着)을 했다. 중턱이 부러진 노송(老松)의 정정(亭亭)은 그믐달의 광채(光彩) 그대로다. 앙상하게 드리워진 한 가지는 아직 예전의 창창(蒼蒼)을 과(誇)하고도 남는 자신의 표상(表象)이요, 거기에 어울려 그려진 세 그루의 소나무, 안마당에 서 있는 한 그루는 시봉(侍奉)의 구실을 도맡은 듯 자못 의젓하고, 바깥의 두 그루도 주위 환경(周圍環境)에 아랑곳없이 당당하다. 하늘과 땅이 백설(白雪)로 한 빛이건만, 싱싱한 솔잎에는 절조(節操)가 드뫂다. 맞추어 세상을 잊은 토담집, 인기척조차 감감한 그 지붕 위에는 눈이 하얗다. 이 모두가 완당의 강직(剛直)한 삶이요, 그의 오롯한 으름장이다. 읽을수록 격조(格調) 높은 고졸(古拙)의 울림장이라 사못 옷깃을 여미게 한다.

  완당의 작품은 대상(對象)을 다잡는 자부(自負)가 값지다. 그 독창적(獨創的)인 글씨야 말할 것도 없지만, 묵란도(墨蘭圖)에서도 그렇듯이, 이 우람스런 붓은 대하는 이의 손까지 꿈틀거리게 한다. 게다가 ‘세한도’에 덧붙인 전아(典雅)한 제발(題跋)은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눈이 와도 하냥 푸른 소나무로 하여금 인간(人間)의 비정(非正)을 돌아보게 한다. “날씨가 차가와진 뒤에야 송백(松栢)의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고 한 공자(孔子)의 말보다도, “권세(權勢)와 이해(利害)로 야합(野合)하면 그 권세와 이해가 다하면 교분(交分)이 성겨진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疏).”고 한 사마 천(司馬遷)의 말보다도, 그 의태(意態)를 승화(昇華)시킨, 그 떳떳한 내재(內在)에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진다. 권세와 이해에 좌우되는 간사한 무리를 그 서릿발 같은 붓매로 사정 없이 꾸짖는다. 토담집 속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완당이


                   “너는 또 뭐길래!”


  하며 불호령을 내릴 것만 같다. 이 그림은 제주도 귀양살이 때 그려서, 당시 북경(北京)에 드나드는 행수 역관(行首譯官)이자 시인인 우선(藕船) 이 상적(李尙迪)에게 준 절품(絶品)인데, 우선이 북경에 지니고 가서 사귄 문사(文士) 18가(家)의 기림을 받아 다시 가지고 돌아와 오늘에 전한 우리 나라 문인화(文人畵)의 대표작인 국보(國寶) 제 180호다.

   ‘중국 전람회’는 첫날부터 붐볐다. 나는 동파(東坡)가 보고 싶어서 확대경(擴大鏡)까지 지니고 갔었다. 감상(鑑賞)의 낙관(落款)이 50여개나 직힌 신품(神品)을 직접 대한다는 조바심으로 발걸음마저 바빴다. 고희천자(古稀天子)를 비롯한 호고(好古)들의 둥그런 눈이 반사경(反射鏡)처럼 어리비치고 있는 짤막한 한 틀의 편지다. 그 곡진(曲盡)한 사연이야 굳이 옮길 나위도 없거니와, 그 호(毫)의 궤적(軌跡)이 하도 억세어 간지(簡紙)에 창이 나지 않은 것이 도리어 신기했다. 그 서권기(書卷氣), 문자향에 지질려 좀처럼 자리를 뜨기가 어려웠다. 그 옆에는 동 기창(董其昌)이 나란하고, 문 징명(文徵明)과 축 윤명(祝允明)도 시간과 공간이 다른 채 한 자리에 걸렸으니, 예술(藝術)의 구원성(久遠性)이 새삼 우러러졌다.

  고인과의 대화, 가 보고 또 가 보아 고인의 유유자적(悠悠自適)을 눈에 담고 마음에 심느라, 즐거운 다리품으로 한 달을 보낸 셈이다. 일찌기 퇴계(退溪)가, 사랑하는 정사 제생(精舍諸生)의 지학(志學)을 북돋우기 위해,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예던 길 앞에 있네.
                      예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예고 어이리



   라고 읊은 ‘도산곡(陶山曲)’의 여운(餘韻)이 귀에 와 닿는다. 고인의 길, 그것은 바로 현대(現代)를 벼리는 슬기의 도가니다. 율곡(栗谷)도 ‘고산곡(高山曲)’ 마무리에서


                      구곡(九曲)은 어디메오, 문산(文山)에 세모(歲暮)ㅎ거다.
                      기암 괴석(奇岩怪石)이 눈 속에 묻혔에라.
                      유인(遊人)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라고 성현(聖賢)의 도를 허술히 다루는 시조(時潮)를 나무랐다. 비단 도학(道學)뿐이랴. 서화도 그렇고 문학도 그렇다. 아니, 매사(每事)가 다 그러하니, 보람찬 내일을 꾸미기 위해 고인과의 대화로써 환부작신(換腐作新)하는 작업, 그것은 바로 온고지신(溫故之新)에의 지름길이다.

  고인과의 대화에는 사특(邪慝)이 없고, 이른바 관조(觀照)와 동화(同化)를 자아내게 한다. 고인과 더불어 생각하는 곳에서 현대는 살이 찐다. 현대란, 고인의 울력으로 아로새겨지는 미래(未來)의 산실(産室)이요 창조(創造)의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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