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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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사 / 임옥인 


                                                            감사


                                                                                                                       임옥인



  오늘은 우리가 새 집을 짓기 시작하는 날이다. 평생 '임시'와 '방랑'을 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안주하고 싶은 것이다. 기쁘다.

     "얼마나 더 살려고 그래?"

     "누구에게 물려주려고?"

  내가 집을 짓겠다고 할 때, 이렇게 말하는 벗들도 있었다. 내가 늙은 탓이고 나에게 아들딸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이 말들 속에는 물론 내가 고생할 것을 염려하는 따뜻한 우정도 들어 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 집이 누구에게 돌아간들 어떠랴. 누구라도 들어와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로써 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말할 수 없이 신선한 오전이었다. 아름답게 흐르는 오월의 맑은 햇빛, 뜰 안에 가득한 새 소리, 풀 향기, 나무 냄새..., 모든 것이 거룩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벗들이 올 것 같아 약간의 음식을 마련하기로 했다. 손이 없어서 나 혼자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산 색시가 왔다. 갑산 색시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내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에는 젊었지만, 지금은 손자와 손녀들이 국민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다. 그는 젊었을 때 나와 함께 살면서, 때로는 쑥을 뜯어다 쑥떡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우리 고향 식으로 된장을 담가 나의 향수를 달래 주기도 했었다. 갑산 색시, 아니 갑산 할머닌 곧 시장으로 달려가 도라지, 오이, 호박, 생선 등을 사 오고, 단골집에서 빈대떡도 부쳐 왔다. 그리고 열심히 도마질도 했다. 내가 어려울 때면 언제나 달려오는 갑산 할머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도마질에 여념이 없는 갑산 할머니의 주름살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조금 뒤에 서 목사님이 오셨다. 그리고 벗들도 몰려 왔다. 목사님은 곧 기도를 드리셨다. 완공까지도 무사를 비시고 우리 내외에게 감사로 충만한 영혼의 안거를 허락해 주십사고 간구 하셨다. 신앙의 길에 들지 않은 벗들도, 신앙의 길이 다른 벗들도 모두 머리를 숙였다. 나를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분들, 얼마나 고마운가.

  세상은 차다지만 나는 찬 줄을 모른다. 세상은 거칠다지만 나는 거친 줄을 모른다. 나의 이웃이 고맙다. 내가 사는 사회와 나라, 그리고 하나님이 고맙다. 아무것도 이룩한 게 없는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은총인 것 같아 죄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한 사람의 가냘픈 여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성에겐 그 특유의 모성애가 있는 법이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개인적인 보호 본능으로 끝나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웃을 향해, 사회를 향해, 겨레를 향해, 할 수 있으면 전 인류를 향해 확산, 심화시키고 싶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느끼는 경건한 태도를 가지고, 나의 사랑을 확산, 심화하는 데 나의 남은 삶을 바쳐야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에게 과분하게 내려진 은총을, 그 억만 분지 일도 보답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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