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학의 시솔길
 
 

   시적 화자(詩的話者)

시 속에서 말하는(노래하는) 주체이다. 작품의 효과를 위해서라면, 시인은 그의 시 속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되어서 노래할 수 있다. 한 사내 어린이가 될 수도 있고,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장군도 될 수 있다. 곧,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시적 상황에 맞게 설정된 허구적 대리인(persona)일 경우도 있다. 이것은 마치 소설가가 그의 소설에서 여러 모습의 화자(話者)가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허용(詩的許容, poetic licence)

예술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용인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정으로서 문법, 어법, 리듬, 운, 역사적 사실 등에서 이탈의 구실로 종종 인용된다. 드라이든은 이를 '모든 시대를 통하여   들이 스스로 가지고잇다고 생각하는, 엄격한 산문으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운문으로서는 말할 수 있는 자유'라고 정의했다. 시적파격(詩的破格)이라고도 한다.


 
   시의 비개성화(非個性化)

시인의 개성을 시에 나타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엘리어트는 개성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낭만주의를 비판하여 비개성화를 주장하였다. 시는 시인의 정서, 감정과는 다른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어(詩語, poetic diction)

18세기의 서양의 시인들은 시어는 저급하거나 전문적이거나 범속한 용어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우회적이고 더욱 고상한 대용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워즈워스는 산문의 언어와 운문의 언어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타당성 있는 시어의 판단 기준은 그것이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유출이냐 아니냐에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시에 쓰이는 용어와 일반 문장에 쓰이는 용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의미 사용의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구별된다. 즉, 시적 언어는 함축적 의미로 사용되고, 과학적 언어는 지시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순수시(純粹詩, pure poetry)

좁은 뜻으로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자들이 말하는 '의미가 완전히 배제된 채 순수한 소리의 음악적 암시적 효과만이 있는 시'를 가리킨다. 그러나 시란 언어의 예술이고 언어란 의미를 온전히 버릴 수 없는 것이므로 상징주의자들의 주장은 하나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넓은 의미의 순수시란 '일체의 사회적 현실적 도덕적 종교적 목적 의식을 배제하고 오직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시'를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30년대 김영랑, 박용철 등의 시문학파의 시가 이에 속한다.


 
   세기말 사조(世紀末思潮)

19세기 말에, 환멸과 퇴폐적 기분에 싸였던 예술과 문학의 사조이다.


 
   서정주의(抒情主義, lyricism)

시, 소설 등에서 작자의 주관적 체험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 경향, 주로 사랑, 죽음, 자연 등을 제재로 내적 감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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